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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종과 나비 (The Diving Bell and the Butterfly, 2007)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08.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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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에게 남은 것은 왼쪽 눈 뿐이 아니다. 기억과 상상력이 남았다. 그거면 충분할까? 돈과 명예와 여자를 모두 가졌던 세상에서 가장 화려했던 남자에게? 놀랍게도 그렇다. 어느날 갑자기 전신이 마비된 장 도미니크 보비에게 내려진 판정은 감금 증후군(locked-in syndrome). 의식도 멀쩡하고 뇌와 장기도 변함없이 작동한다. 하지만 잠수종에 갇힌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는 병이다. 그런 장 도미니크를 화자로 세우기 위한 이 작품의 사투는 가히 예술적이다. 멍멍하고 침침하게 흔들리는 일정 각도의 공간 안으로 모든 인물을 불러 들이고, 그의 의식에서 나오는 소리와 타인의 소리를 공존케한다. 때문에 들을 수 밖에 없는 장 도미니크와 말할 수 밖에 없는 작품 속 타인들 사이의 불완전한 소통은 불완전을 전제로 완전하게 전달된다. 왼쪽 눈 깜빡임 하나로 양자 간의 간격을 메워보려는 눈물겨운 시도는 지루하고 식상한 최루성 도식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농후함에도 결코 중심을 잃지 않는다. 장 도미니크가 '엘르'의 편집장이었다는 화제성 사안조차 별 관심의 대상이 아니라는 듯 묵묵한 태도다. 과연 '비포 나잇 폴스(2000)'의 쥴리앙 슈나벨 다운 선택이다. 여기에 스필버그가 사랑하는 촬영감독 야누즈 카민스키의 힘이 더해졌으니, 말 그대로 금상첨화 - 장 도미니크의 시선과 타인들이 그를 내려다 보는 시선, 그리고 자연 속에 일부로 존재하는 그를 롱 쇼트로 잡아내는 시선은 마법의 레서피로 배합되어 구속과 자유의 경계를 자유로이 누빈다. 절묘하면서도 평범하고 답답하면서도 결코 불편하지가 않다.

  장 도미니크는 누구보다 풍부한 유머로 사람들과 소통할 줄 알았고 누구보다 세련된 언어로 저널리스트의 명성을 써내려간 사람이다. 허나 아이러니하게도 잠수종에 유폐된 그에게 물리적으로 허락된 것은 왼쪽 눈을 깜빡이는 일 뿐이다. 혀를 움직일 수 없으니 말을 할 수 없고 팔을 움직일 수 없으니 글을 쓸 수 없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대로 과일이나 채소가 되어 죽음을 기다리길 거부한다. 정신만은 자유로운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 오른다. 시간을 넘나들고 공간을 극복한다. 현실과 환상을 자유로이 넘나들면서도 저널리스트의 자존심과 유머감각을 잃지 않는다. ("내가 만일 나의 지적 잠재력이 시금치나 당근의 지적 능력보다 월등하게 우수함을 증명하고자 한다면 의지할 데라고는 나 자신밖에 없을 것이다.", 잠수복과 나비, 동문선, 양영란 옮김, 1997) 끝내 그는 왼쪽 눈 깜빡임 하나로 알파벳을 선택하여 단어를 만들었고, 다시 문장을 이어냈으며, 새로운 눈으로 관찰하고 받아들인 그 소중한 깨달음을 세상 모두에게 남겨주었다. 

(2008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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