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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No Country for Old Men, 2007)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08.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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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경사회의 노인은 공동체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였다. 그들은 살아온 세월만큼의 풍부한 경험과 지혜를 가지고 있었고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일에 대처할 능력이 있었다. 또한 그들의 말은 세상의 시비곡절을 판단하는 기준이기도 했다. 하지만 산업혁명과 세계대전을 거친 이후의 세계에서 노인은 더이상 그들의 공동체에서 절대적 가치관을 체화한 정신적 지주가 되지 못했다. 그들은 느렸고, 무기력했으며,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계에서 모든 해답을 가지고 있지도 못했다. 이 작품은 묻는다. '노인이란 어떤 존재인가?' 우리는 누구나 끝내 노인이 된다. 때문에 그 의문은 '세상이란 어떻게 변해가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로 확장되고, 나아가 종래에는 그 의문이 '인간이란 무엇인가?'와 다름이 아니게 된다.

  에드(토미 리 존스)는 대를 이어 마을의 보안관을 맡고 있는 노련한 노인으로 어떤 것이 옳고 그름에 대한 분명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돈가방을 둘러 싸고 서로 죽고 죽이는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조용히 승부를 지켜보는 것 밖에는 없다. 그들이 에드의 세계에서 벗어난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점점 빠르게 변하고 젊은이들은 점점 빠르게 기존의 세계와 가치관으로부터 이탈한다. 마약밀매단의 돈 2백만불을 우연히 손에 넣은 카우보이 롤르린 모스(조쉬 브롤린)는 죽을 힘을 다해 도망친다. 2백만불을 얻을 수 있다면, 까짓거 목숨, 걸어 볼 수도 있다는 것이 물질 욕망에 사로잡힌 그의 태도다. 돈 때문에 목숨까지 거는 것은 에드의 가치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혼란스러운 일이다. 한편 2백만불을 찾기 위해 사이코패스 살인마 안톤 시거(하비에르 바르뎀)는 모스를 쫓는다. 안톤은 결정론을 가볍게 무시한다. 그에게 모든 것은 동전 던지기처럼 우연이고 선택의 여하에 달린 문제다. "꼭 그럴 필요가 있나요?" 라는 질문에 "꼭 그러지 않을 필요란 무엇인가?" 라고 답하는 그는 스스로 완성된 존재다. 절대 누구도 믿지 않고 남의 도움을 빌리지 않으며 절대 어느 시스템에도 안착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알아서 해결하고 모든 것을 알아서 손에 넣는다. 세월의 무게로 퇴적된 노인과 경험과 지혜를, 그 존재 자체로 부정하는 이 인간 백정은 노인의 나라에서 가장 멀리 있는 인물이다. 때문에 에드는 안톤의 흔적을 쫓으면서도 혼란에 빠진다. 스스로 납득할 수도 납득시킬 수도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이들 '뉴 타입' 인류를 대하며 보안관 에드가 느끼는 무기력감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농경사회 이전의 수렵시대로 (수렵과 채집으로 공동체를 유지했던 당시에는 사냥을 할 수 없을만큼 쇠약해진 노인들은 더 이상 필요가 없는 존재였다) 돌려보내진 듯한 노인들의 허탈감이다. 에드의 꿈 이야기 (친구와, 또 아내와 쓸쓸히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으로 그 공허함은 전면에 드러난다. 코맥 매카시의 원작을 충실하게 스크린으로 옮긴 이 잘 짜여진 작품은 다분히 코엔 형제 다운 블랙 유머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들의 전작들에 비해 중 전에 없이 비관적이고 염세적이기도 하다.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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