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수면의 과학 (La Science des Reves, 2006)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09. 1. 13.

본문

  영화란 반드시 모든 사람들에게 이해받을 수 있는 형태로 완성되어야 하는 것일까? 이는 소위 예술영화라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벌이는 논쟁과는 조금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순수하게 말 그대로이다. 즉, 누군가가 어떤 이야기에 대하여 갖고 있는, 형체를 갖추기 이전의 거대한 상념 덩어리만으로는 그 영화가 성립할 수 없는 것인가. 미셸 공드리의 ‘수면의 과학’은 이 우문에 현답을 내어놓는 독특한 작품이다.

  물론 이전에도 공구리, 아니 공드리의 영화는 (뮤직비디오와 광고를 포함하여)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휴먼 네이쳐(2001)’와 ‘이터널 선샤인(2004)’이 입증하듯 그는 독특하고 창의적인 언어로 일상을 해체 및 재구성하는데 빼어난 재주를 지닌 사람이다. 허나 그땐 '아내의 유혹'도 두 손 들고 도망갈 괴물 각본가 찰리 카우프만이 늘 함께였다. (존 말코비치 되기, 1999; 휴먼 네이쳐, 2001; 컨페션, 2002; 어댑테이션, 2002; 이터널 션사인, 2004)이 함께였다. 그리고 ‘수면의 과학’은 그가 처음으로 혼자 각본과 감독을 모두 해낸 영화다. 과거 뮤직비디오라기엔 너무 환상적이고 상업광고라기엔 너무 아름다운 그의 영상 이력들은 물론 온전히 그만의 것이겠으나, 그것만으로 호흡이 월등히 긴 장편 영화로의 성공적인 이식을 담보하긴 어려울 것이었다. 

  그렇다면 찰리 카우프만 없는 공드리가 내놓는 작품은 어떻게 완성되었는가. 뜻밖에도 그는 빈 자리를 그대로 비워두는데 주력한다. 개연성에 집착하지 않는다. 따라서 덜 영화같으면서도 더 공드리스럽다. 호박죽, 참치죽, 전복죽이 아니고 뒤죽박죽이다. 일반적으로 영화를 보고 뒤죽박죽이라 표현하면 그건 욕일 가능성이 크지만 이렇듯 원체 뒤죽박죽인 영화를 두고 뒤죽박죽이라고 표현하는 건 결코 욕이 아니다. 전혀 세공하지 않은 날 것의 이미지가 만화경처럼 논리 없이 연결되고 반사되고 중첩되고 산란되고 교차되고 공명한다. 그 현란한 야바위의 중심에서 소심한 남자의 덧없는 짝사랑은 자폐적 세계에서 회전목마처럼 반짝반짝 돌아간다.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서부터가 현실임을 가늠하는 기준의 모호함은 예전보다 더 심한 것(혹은 심각한 것) 같다. 과장없이 기술하자면 이 작품은 '공드리 종합선물세트'이고, 살짝 과장을 첨하자면 '공드리의 측두엽 들여다보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테마파크에 하나쯤 이런 아이템이 있어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종이 침대(아시다시피 침대는 과학이다)를 타고 컴컴한 동굴 속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 골든 포니가 뛰어 노니는 셀로판과 마분지의 별천지를 탐험하는 거다. 어떤가. 활주로를 3도 틀어야 비로소 각이 나온다는 '제 2 롯데월드'보다는 성공할 것 같지 않은가. 

(2009년 1월)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