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시대: 테일러 스위프트

Taylor Swift 의 첫번째 앨범 <Taylor Swift>
2006년 10월 (Big Machine)

  대망의 1990년을 불과 보름 남짓 남겨두고 태어난(‘데뷔한’이 아님) 테일러 스위프트는 오페라 가수였던 할머니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노래에 관심이 많았단다. 주로 컨트리에, 특히 리앤 라임즈나 샤니아 트웨인쪽의 컨트리-팝에. 이후 십대가 되자 직접 곡을 쓰고 공연을 하기 시작했는데 레이블에 데모 테잎을 보내기 시작한 것이 그녀의 나이 열한살때의 일. 숱하게 떨어지고 좌절하던 와중에 (십몇년을 무명으로 보내다가 가까스로 빛을 보는 가수도 널렸는데 열몇살짜리가 떨어져봐야 몇 번을 떨어지고 좌절해봐야 얼마나 오래 좌절했겠느냐 싶지만은) 신생 독립 레이블 ‘빅 머신 레코드’과 전격적으로 계약을 맺게 된다. 열여섯살 때의 일이다. 그렇게 발표하게 된 것이 셀프 타이틀 데뷔작인 이 앨범 <Taylor Swift>. 헌데 놀랍게도 이 앨범은 해를 넘기며 서서히 인기를 몰아 미국에서 350만장, 캐나다에서 200만장이 팔리는 기염을 토한다. 빌보드 앨범차트 6위, 빌보드 컨트리 앨범차트 1위, ‘빌보드 핫 컨트리 송 Top 10’ 안에 한 앨범에서 무려 다섯 곡을 밀어넣을만큼(‘Tim McGraw’, 6위, 골드 싱글/‘Teardrops on My Guitar’, 2위, 골드 싱글/ ‘Our Song’, 6주간 1위, 플래티넘 싱글/ ‘Picture to Burn’, 3위, 골드 싱글/ ‘Should've Said No’, 1위, 골드 싱글) - 이건 리앤 라임즈도 샤니아 트웨인도 불가능했던 기록적인 성공이다. 그것도 나이 열여덟, 열아홉에 이런 커리어를 찍으며 아버지뻘인 앨런 잭슨, 케니 체스니, 가스 부룩스, 조지 스트레이트, 브래드 페이즐리, 랜디 트래비스 등 슈퍼스타들과 차트 경쟁을 벌인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닌가. 관록의 아저씨들이 그녀에게 도전장을 내밀고 몇십합 겨루다가 차트 밖으로 밀려나고 다음 아저씨와 교대하는 쪽팔리는 일이 반복되는 와중에 이 앨범은 어느새 발매된지 2년여가 지나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차트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다. 2008년 11월 15일자 빌보드 컨트리 차트에서 아직도 5위. 무려 106주째 이 부근을 서성거리는 중이다. 바로 그 아래 8위에 여전히 랭크되어 있는 그래미가 사랑하는 소녀, 캐리 언더우드의 54주도 징하기 짝이 없는 좀비적 기록 행진인데 106주면 그 두 배에 해당하니, 아무리 관성이 유난한 컨트리 차트임을 감안하더라도 열아홉 그녀의 폭발적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는 말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테일러 스위프트 신드롬이지만 그 안에는 대단하거나 유난한 비밀이 없다. 입이 딱 벌어지는 기적도 없고 유별난 마케팅도 없다. 좋은 곡이 입소문을 타고 라디오를 타서 서서히 전국으로 번져나가는 대중음악의 근원적 성공 매커니즘만이 있을 뿐이다. 물론 여기엔 3곡을 단독, 7곡을 공동으로 작곡할만큼 기본기를 갖춘 테일러의 송라이팅 재능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그녀는 컨트리 특유의 흥겨움을 싱그러운 발랄함으로 갈음해내는데 일견 빼어난 재주를 지녔다. 이는 다시 십대적 감수성의 풋내나는 가사와 맞물려 묘한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테일러가 열여섯살 되던 해 여름에 겪었다는 첫사랑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든 ‘Tim McGraw’에서 그녀는 “나를 떠나도 내가 좋아하는 팀 맥그로우(컨트리 가수)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를 기억해줘”라고 기억속의 소년에게 말을 건낸다. ‘Our Song’에서 그녀는 우리 노래를 왜 쓰게되었는지 설명한다. (“우리가 전화 통화할 때 넌 진짜 천천히 말하잖아. 밤늦은 시간인데다가 우리 통화하는지 너희 엄마가 모르시니까”) 이게 먹혔다. 틴에이져들만이 아니라 어른들이 여기에 더 공감했다. 어른들 또한 한 번은 겪었을 세대 보편의 십대 시절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건 컨트리라는 장르 고유의 힘이다. 올해 발표한 앨범에서 브래드 페이즐리가 뭐라고 노래했는지를 복기해보라. "(열여섯 때) 오직 내가 원했던 건 자동차뿐이었어요." 지들 마음대로 대충 찌끄려놓고 그게 바로 어른들과는 다른 쿨한 세대의 '신인류의 사랑'인 척 개 폼 재는게 아니다. 어른들이 과거를 추억하며 판을 집어들게 만드는 힘 - 이게 진짜 무서운거고 기록적 롱런이 가능하게 한 원천이다. 물론 어떤 측면에서는 그게 촌티일 수도 있는 것이긴한데, 그런 면에서 테일러 스위프트는 전략적으로 조금 다듬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부정하기가 어렵다. 예컨대 늦어도 이십년전에는 나왔어야할 촌스런 헤어스타일의 앨범 자켓이나 영상 기술의 발전을 무색하게끔 만드는 양수경, 김완선도 이렇게는 찍을 수 있었겠다 싶은 뮤직비디오 - 도대체 누구 머리에서 나온 전략인지 아연할 지경이다. 요즘 애들말을 빌자면 코디가 안틴가? 올해 11월 11일. 그녀는 두번째 앨범 'Fearless'를 발표한다. 이미 싱글로 발표되어 좋은 반응을 얻은 'Love Story'를 최전방에 내세운 앨범이다. 며칠 전 공개된 자켓을 확인하니 다행히 일단 팔십년대는 탈피하여 구십년대 초중반까지는 따라온 듯 보인다. 앨범 몇 장만 기다리면 촌티를 벗어버리고 현실 세계를 따라잡을 수도 있겠다. 뭐, 이제 겨우 스물이고 앞 날이 창창하니. (2008/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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