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프로스트/닉슨 (Frost/Nixon, 2008)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09. 5. 7.

본문

  이 정도면 신들린 연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1분, 1초, 10분의 1초, 100분의 1초. 순간 순간 변하는 근육 하나 하나의 미세한 떨림이 가히 예술의 경지다. 게다가 그 변화를 카메라는 집착하듯 잡는다. 사실 이 작품에 그처럼 1분, 1초, 10분의 1초, 100분의 1초 단위의 변화가 필요한 이유가 있다. 다름 아닌 독특한 구성 때문이다. 노장 론 하워드와 각본을 맡은 피터 모건은 이 또 다른 닉슨 이야기에서 자잘한 가지를 최소한만 남겨두고 말끔하게 쳐냈다. 두 남자 간에 4라운드에 걸쳐 펼쳐지는 네 번의 인터뷰가 얼개의 전부다. 올인이다. 묻고, 답하고, 치고, 빠지고, 반격하고, 역공하는 두 남자의 일대일 게임이 전부다. 흡사 권투 영화를 연상케한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이들의 인터뷰 쇼는 정말 권투 경기보다 더한 숨 막히는 긴장감을 지녔다. 비단 은유만도 아니다. 방송인 프로스트(마이클 쉰)가 닉슨(프랜크 란젤라)에게 카운터 펀치를 맞고 비틀거리는 그 순간, 프로듀서 존 버트(매튜 맥퍼딘)은 잠깐 쉬었다가 하자며 흐름을 끊고 나선다. 이후 프로스트의 결정적 반격에 닉슨이 실언을 하는 그 순간, 닉슨의 참모 잭 브레넌(케빈 베이컨) 역시 타임을 외치며 개입하고 나선다. 이에 닉슨은 "왜 지레 겁을 먹고 수건을 던지느냐"며 불쾌해한다. 노골적으로 권투를 연상케하는 대사다. 과연 권투는 오락이다. 두말할 것 없이 철저한 오락이다. 그렇다면 권투적 속성을 지닌 이 문제적 인터뷰 또한 오락으로 봐야 할 것인가? 아마 많은 사람들이 선뜻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워터게이트는 결코 오락이라고 할 수 없는 사건이겠으나 토크 쇼 진행자 출신이란 프로스트의 가벼운 존재는 이 오락 아닌 사건을 오락에 가깝게 만들기 때문이다. 관록의 노장 론 하워드는 그 미묘한 계면을 쉽사리 망가뜨리지 않는 수준에서 이 이야기를 완성시켰다. 깊진 않으나 너무 얕지도 않은 프로스트와 무겁진 않으나 너무 가볍지도 않은 리처드 닉슨의 어처구니 없는 만남이 끝내 의외의 신념 대결과 같은 성격을 띠는 순간, 이 작품은 이루 형언할 수 없이 빛난다. 함부로 감탄하기도 어렵다. 교과서적 연기와 교과서적 연출이 만나 완성된 교과서적 수준작이다.

 

(2009년 05월)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