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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콥 딜런 <Seeing Things> B평

불규칙 바운드/음악과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09.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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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연 음악적 재능은 유전인가? 종종 마주하는 난제다. 스탠더드 팝의 검은 황제 냇 킹 콜의 딸이 나탈리 콜인 것을 보면, (끄덕끄덕) 수긍이 간다. 밥 말리의 다섯 아들은 말할 것도 없다. 레너드 코헨의 아들 아담 코헨도 있다. 라비 샹카라의 딸은 노라 존스다. 스페인과 중남미의 맹주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아들 엔리케 이글레시아스는 아버지의 느끼함을 백이십퍼센트 초월 이식 받았다. 팀 버클리의 아들이 다름 아닌 제프 버클리라는 사실은 놀랍다 못해 소름마저 돋는다. 헌데 또 한편으로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줄리안 레논이 존 레논의 아들이라는 사실이나, 니콜 리치가 라이오넬 리치의 딸이라는 사실을 보면, 음…… 꼭 유전이라고 보긴 어려운 사례도 분명 있군요.


  피를 물려 받는다는 것은 결코 본인의 의지에 달린 일은 아니다. 물려받은 피에서 염색체가 발현되게 하는 것 역시도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한 일이다. 더러는 영웅 아버지의 존재 아래서 비참해하고, 더러는 주위의 기대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나가 떨어진다. 그래서 제이콥 딜런의 경우가 흥미롭다. 피를 물려받았음은 물론 엄연히 재능까지 발현되었음에도, 그는 아버지의 존재에 무심하여 자유롭다. 그냥 뭐 그런 양반 있든 말든, 신경 안 쓰는 태도랄까. 제이콥의 아버지는 전설 그 자체라고 해도 좋을 밥 딜런. 어쩌면 이제까지 위에서 언급한 아버지들 중에 가장 큰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고 해도 절대 과장이 아닐 인물이다 (저런! 적어도 학교 다닐 때 누가 건드리는 일은 없었겠군). 제이콥이 69년생이니 아버지의 그 유명한 명작 <Nashville Skyline>만큼의 나이를 먹은 셈이다. 아버지가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 직후 태어났고, 아버지의 전성기에 유년을 보냈던 그다. 그가 밴드 '월 플라워스'로 정식 데뷔하던 1992년에도 아버지는 왕성하게 활동하는 중이었다. 그럼에도 제이콥은 단 한번도 “밥 딜런의 아들”이란 마케팅을 시도한 적이 없다. 아버지의 찬란한 후광 속에 등장한 적도 없다. 그런 아버지를 두었다는 사실은 '월 플라워스'의 성공 후에도 한참 뒤에나 밝혀졌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아버지에게 존경이나 감사를 표한 적이 있었나? 기억나지 않는다. 정말로 그냥 뭐 그런 양반 있든 말든, 신경 안 쓰는 태도다. 나란히 방송 3사의 토크쇼와 예능프로그램을 섭렵하고 돌아다니는 우리나라의 부자 가수들과는 사뭇 다른 광경 - 사이가 과히 좋은 편은 아니라던 소문이 사실이라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롤링 스톤지는 제이콥 딜런의 음악을 두고 “엘비스 코스텔로와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온화하고 부드러운 버전” 이라는 평을 내렸다. 엘비스 코스텔로는 워낙 카멜레온처럼 변신하는 양반이라 연도와 작품을 전제하지 않고 함부로 정의하기가 어려우므로 일단 접어두더라도, 과연 그의 음악은 외관상 아버지 밥 딜런보다는 브루스 스프링스틴 쪽에 가깝게 들린다. 다만 미묘한 차이가 느껴진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음악이 서민과 노동자의 무리 안으로 들어가 주체적으로 그들을 이끄는 아우라를 뿜어내는데 반하여, 제이콥 딜런의 음악은 단지 멀찍이서 그들을 응시하고 관조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1인칭의 순간에도 꼭 3인칭처럼 느껴진다. 가령 2교대 노동자의 애환을 묘사하는 이번 앨범의 ‘All Day All Night’은 전형적인 브루스 스프링스틴 소재에 가까움에도 뜨거운 독려나 날 선 비판과는 거리가 멀다. 차라리 세밀하고 담담한 스케치다. 롤링스톤지의 “온화하고 부드러운 버전”이란 표현은 바로 이런 차이를 가리킨 것임이 틀림없으리라. 재미있는 것은 이 차이가 한편으로는 제이콥 딜런의 핏줄을 입증한다는 사실이다. 대부, 대모는 스프링스틴, 엘비스 코스텔로일지언정 생물학적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밥 딜런이랄까. 가장 단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역시 가사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가사는 직설이나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쉽고 가볍고 간단한 비유로 구성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제이콥 딜런은 비교적 상세한 묘사와 시적인 은유를 구사한다. ‘우리 시대의 음유시인’으로 통하는 밥 딜런의 뿌리를 숨길 수가 없는 부분이다. 


  사실 이 작품에는 이렇다 할 기술적 구성이 없다. 제이콥 딜런이 어쿠스틱 기타는 물론 약간의 베이스까지 도맡아 연주했고 그 이외의 악기는 일체 배제되었다. 코러스도 최소한만 삽입하려고 노력한 모양이다. 곡을 쓰고 부르는 이외의 모든 것을 조타 능력이 뛰어난 프로듀서 릭 루빈에게 일임했다는 얘기가 있다. 이 작품의 남다른 응집력의 비결을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다. 온화하고 부드럽게 세상의 어두운 절반을 노래하는 영웅의 아들. 거칠되 체온을 품은 그의 목소리는 엄연히 실재하는 모든 비인간적인 것들을 넘어 ‘Something Good This Way Comes’의 보다 나은 세계를 희망하고 있다. 누군가는 여전히 그를 전설적 아버지와 비교할런지 모른다. 허나 그는 이제 겨우 서른아홉이다. 또한 솔로 커리어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드러내어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09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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