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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 페이즐리 <American Saturday Night> B평

불규칙 바운드/음악과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09.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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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외적 불확실성이 제거되면서 원달러 환율이 차츰 하향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는 시점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비(非) 라이센스 음반을 구매하기란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 틀림없다. 꼭 라이센스반이 아니라도 어지간한 앨범은 수입반이라도 들어오던데, 여전히 몇몇 아티스트의 앨범만은 예외다. 국내에 수요가 많지 않은 포크, 컨트리 쪽이 특히 더 그런 것 같다. 그럼 방법은 구매 대행 사이트 등을 통해 직접 길을 뚫는 것 밖에 없는데, 그 결과 겨우 9.9 달러짜리 앨범이 태평양을 건너면서 배송비 포함 우습게 3~4만원이 넘어가는 사태가 벌어진다. 월급쟁이 입장에선 짜장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정말 이러다간 누구 말마따나 나라경제와 민생경제가 동반으로 파탄나는 수가 있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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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태초에 '장르'가 있고 그에 기준하여 음악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떤 종류의 음악들이 인기를 얻다보니 수요가 발생하고 자연히 공급도 늘어나게 되어 끝내 일개의 집단군을 이룬 것이 소위 말하는 '장르'인 것이다. 따라서 일단 굵직한 흐름이 이루어지면 리딩 히터 역할을 하는 스타가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것 또한 당연한 이치다. 당대 장르군 전반에 활기를 불어놓으며 인기를 주도하는 동시에, 시장을 압도적으로 점유하고 나아가 파이를 키우는 데도 기여하는 슈퍼 스타 말이다. 가령 남성 컨트리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80년대 초반은 조지 존스와 '앨라배마'의 시대였다. 80년대 중반의 리딩 히터는 조지 스트레이트와 행크 윌리엄스 주니어, 그리고 랜디 트래비스였다. 90년대로 넘어오자 앨런 잭슨과 빈스 질, 가스 브룩스가 바통을 넘겨받았다. 금세기 초에는 케니 체스니와 팀 맥그로우가 뒤늦게 신바람을 냈다. 그리고 지금, 가장 최전선에서 활약하고 있는 카우보이는 과연 누구인가? 재론의 여지 없이 브래드 페이즐리일 것이다.

  1972년 웨스트 버지니아에서 태어난 브래드 페이즐리는 1999년 신인상을 휩쓸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석 장 앨범 연속으로 플래티넘을 기록하며 한 곡씩은 꼭 빌보드 컨트리 싱글 1위에 올려놓던 그는 2005년작 'Time Well Wasted'에서 화끈한 쐐기를 박으며 격이 다른 슈퍼 스타로 본격 자리 매김을 시작했다. 컨트리 싱글 차트 정상에 세 곡을 올려놓은 것은 물론, 빌보드 종합 앨범 차트에서도 2위까지 올라갔다. 상복이 터진 것 또한 이 즈음부터의 일이다. 5집 '5th Gear'을 통해 컨트리 시상식에 가장 많이 불려다니는 가수 중 하나가 되었고, 드디어 작년에는 그래미와 AMA에서도 영광을 맛보았다. 브래드 페이즐리의 매력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곡을 셋만 꼽으라면 역시 'Whiskey Lullaby (2004)', 'Alcohol (2005)', 'All I Wanted Was a Car (2007)'이 아닐까. 컨트리 본연의 아기자기한 흥겨움에 팝/록의 패기가 절묘하게 용해된 것이 대중과 평단을 아우르는 인기의 비결이다.

  6집 'American Saturday Night'은 그런 페이즐리의 진가가 발휘된 앨범이다. 뿐만 아니다. 아직 정점을 찍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앨범이다. 원래 리딩 히터의 위치에 오른 가수들은 스스로 좋은 흐름을 만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안 되는 집은 뭘 해도 안 풀리고 되는 집은 뭘 해도 잘 되는 것처럼, 이미 8부 능선을 넘어서 정상으로 향하는 도정에 있는 스타들은 앨범의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 뭔가 되는 분위기다. 이번 앨범이 그렇다. 첫 트랙 'American Saturday Night'부터 미드템포 발라드 'Then'을 거쳐서, 비장의 킬러 타이틀 'Welcome to the Future'에 이르기까지 짜임새가 워낙 좋다. 가장 떨어지는 트랙조차도 만듦새가 과히 나쁘지 않다. 전반적으로 유쾌하고 사랑스럽다. 그에게 기대하는 모든 에너지를 보여주는 앨범이라고, 김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한계에 다다른 기색 역시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기세가 당분간은 이어질 거란 긍정도 가능한 것이다. 이 역시 대표적인 되는 집만의 분위기다. 평단은 브래드 페이즐리에게 항상 호의적이었다. 심지어 재능이 답보 상태에 머무르던 순간에도 믿음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리고 그 믿음은 이제 현실이 되었다. 당분간 이 유쾌한 남자의 고공비행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당분간 이 물 오른 재담꾼의 두 어깨에 남성 컨트리계의 명운이 달려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은 아닐 것이다.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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