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를 사랑한 남자 (2014) B평

쇼를 사랑한 남자 (Behind the Candelabra, 2013)

감독: 스티븐 소더버그

출연: 마이클 더글라스, 맷 데이먼, 로브 로우, 댄 애크로이드, 데비 레이놀즈, 스콧 바큘라



  크리스마스 이브. 빈 방에서 홀로 저녁을 먹으며 함께하기에 적절치 못한 영화들이 많겠지만 스티븐 소더버그의 '비하인드 더 캔들라브라(한국 개봉명: 쇼를 사랑한 남자)'만한 것도 드물지 않을까 싶다. 고든 게코[각주:1]와 제이슨 본이 사랑을 속삭이는 것보다 크리스마스에 더 보고 싶지 않은 정도라면 아마 '님그강' 정도 밖에 없지 않을까?


  이쯤해서 리버라치의 화려한 쇼맨쉽이 크리스마스 이브의 공기를 달궈주길 소망했던 것이 참으로 순진한 생각이었음을 고백해야 하겠다. 아마도 나는 무슨 NBC에서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방송하는 '마이클 부블레의 크리스마스 인 뉴욕' 같은 분위기를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작품은 무대 위의 리버라치가 아니라 무대 뒤의 리버라치를 조명한다. 널리 알려졌던 그의 모습 대신에 숨겨진 감춰진 연인의 회고를 따라간다. 맷 데이먼이 연기한 리버라치의 젊은 연인 - 스콧 토슨이라는 남자가 바로 이 작품의 원작이 된 <Behind the Candelabra>의 작자. 그렇다보니 아무래도 무게 중심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숨겨야 했던 시대적 제약으로 인해 이중 생활을 영위했어야 했다는 부분에 실린다. 극적 흥미를 돋우는 소재인 것은 사실이지만 리버라치와 스콧의 러브씬[각주:2]은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고든 게코와 제이슨 본의 컴비네이션이다!) 암시만으로도 충격이 상당하다. 사실, 뭐라 표현해야 할지 적당한 단어를 찾기도 힘들다.


  전반적으로 스티븐 소더버그의 영화답게 정교하고 단단하다. 그리고 역시 가장 놀라운 것은 두 배우의 연기다. 강인한 이미지가 강했던 70세 노배우가 화려한 쇼 엔터테이먼트의 황제로 분한 것은 놀랍고 또 놀랍다. 마이클 더글라스가 션 헤이즈[각주:3]처럼 웃고 떠들고 노래할 수 있을 거라고 어느 누가 예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싶다. 그림자처럼 끈질기게 맴도는 맷 데이먼의 연기도 훌륭하다. 이 작품에서 맷 데이먼은 소년에서 청년을 거쳐 중년까지 연기하며 얼굴이나 몸매가 크게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방부 상태라고 해도 좋을만큼 내내 그 모습인 슈퍼스타 리버라치의 모습과 극적인 대비가 된다. 흡사 젊은 스콧에게만 자연의 섭리가 작용하는 것처럼 보이는 연출은 많은 의미를 함축한다. 하지만 극적인 변화가 결코 시각적이고 피지컬한 요소에 한정되는 것만은 아니다. 관계의 변천과 그 과정에 수반되는 감정의 기복 역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발산하거나 서서히 감쇠한다. 셀러브리티의 가쉽과 이중생활이라는 밝고 소란스럽고 화려한 요소에 작품이 함몰되어 버리기 쉬운 순간마다 그들의 연기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준다. 결국은 이 또한 시간이 사랑을 좀먹어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들과 본질적으로는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2014/12/24)

 

 

  1. 올리버 스톤의 1987년작 '월스트리트'서 마이클 더글라스가 연기했던 주인공. 이 작품으로 그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본문으로]
  2. 마이클 더글라스와 맷 데이먼은 스물 여섯살 차이지만 실제 리버라치와 스콧 토슨은 마흔 살차이였다고 한다. [본문으로]
  3. NBC의 히트작 'Will & Grace'의 캐릭터 중 하나인 잭 맥파랜드를 연기한 배우. 동성애자의 스트레오타입과 같은 잭 역할로 큰 인기를 끌었고 에미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하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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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컴퍼니 맨 (2010) B평

더 컴퍼니 맨 (The Company Men, 2010)

감독: 존 웰즈

출연: 벤 에플렉, 크리스 쿠퍼, 토미 리 존스, 케빈 코스트너, 마리아 벨로, 로즈마리 드윗, 크레이그 T. 넬슨



  언뜻 '더 컴패니 맨'은 주주자본주의에 어두운 이면에 대한 설득력있는 우화를 완성한 것처럼 보인다. 주주들을 더 큰 부자로 만들기 위해 회사 구성원을 제물로 바치는 거대 기업의 이야기 - 금세기 들어 이보다 더 무서운 괴담이 또 있을까? 해직당한 후 막다른 골목에 몰린 남자는 그 잘난 MBA 출신이다. 그럼에도 재취업의 길은 요원하다. 심지어 그의 가계가 흔들리는데 걸리는 시간은 퇴직 연금이 짤리는 시간보다 짧다. 그러고 보면 90년대 백인 중산 가정의 신화는 더 이상은 유효하지 않아 보인다. 위기감은 세대를 소급하여 올라간다. 30대 중반의 세일즈 맨(로버트 워커, 벤 에플렉), 50대 6두품 시니어 매니져(필 우드워드, 크리스 쿠퍼), 50대 진골 임원(진 맥클러리, 토미 리 존스)로 나누어 교차 접근하는 방식은 좋은 선택이었다. 절망의 근원을 입체적으로 탐색할 여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다만 선을 정해놓은 듯한 밋밋함이나 대책없는 낙관주의는 조금 아쉽다. 치열해져야 하는 순간 머뭇거리는 태도가 작품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들었다는 느낌이다. 휴먼 드라마도 아니고 블랙 코미디도 아니고 블록 버스터도 아닌 '새마을 금고'적 영역에 머물며 장르 또한 모호해졌다. 연출 및 각본을 맡은 이가 다름 아닌 존 웰즈임을 상기하자면 아쉬움은 더 커진다. 그 다운 문제의식을 가지고 그 답지 않은 결과물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결국 브레이크스루가 없는 결말은 해피 엔딩이라기보단 아마겟돈을 간신히 며칠 뒤로 미룬 것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준다. 관대한 부자 몇 명의 사적인 자비 실현은 미봉책에 불과할 뿐이고, 지식 정보 중심으로 재편된 세상에서 다시 무조건 노동의 가치를 강조하는 건 결코 해법이 될 수 없다. 그 지점에서 멈춰버린 것이 이 작품의 한계다. 논픽션처럼 철저한 분석과 고발을 행할 수도 없음은 이해하지만 픽션 답게 변칙적 반격 또한 시도해보지 못했다는 부분이 아쉽다. (2014/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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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긴 어게인 (Begin Again, Can A Song Save Your Life?, 2013)

감독: 존 카니

출연: 마크 러팔로, 키이라 나이틀리, 애덤 리바인, 헤일리 스테인펠드, 제임스 코든, 캐서린 키너, 씨 로 그린


 

  가장 먼저 들었던 의문은 존 카니라는 작자의 나이다. 음악과 비즈니스를 막연한 대립항으로 몰고가는 설익은 치기와 지뢰처럼 배열된 오글거리는 대사들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중학교 2학년 아니면 3학년이 분명한데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헌데 다시 생각해보니 뭔가 이상하다. 이 아일랜드 남자가 8년 전에 '원스(Once, 2006)' 신드롬을 일으킨 장본인이 아니었냐는 말이다. 그럼 그때는 일곱 살 아니면 여덟 살이었다는 얘긴데, 사실이라면 조금 무서운 일이다.


  썩 잘 만든 작품은 아니다. 보통 뻔하면 이상하지는 않기 마련이나 이 작품은 뻔한데 이상하기까지 하다. 생각보다 좋은 부분을 찾아내기가 훨씬 힘들다. 처음 30여분 동안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와 댄(마크 러팔로)의 만남을 관점을 바꿔가며 반복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식상한 것보다는 그때마다 그레타의 지하철 노래를 반복해서 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더 괴로웠다. 그 칙칙폭폭 노래가 정말 괜찮다고 생각했다면 댄의 프로듀서로의 감각이 여전히 유효한 것인지 (그가 뒷골목 소극장 주인이 아니라 음반 업계의 네임드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한 번 의구심을 가져볼 필요가 있어보인다. 드물게 산뜻하고 활기 넘치는 중반 이후 도심 속 쌩 라이브 녹음 장면의 연출은 괜찮은 편이지만, 이내 그레타의 전 남친 데이브(애덤 리바인) 이야기와 뒤섞이면서 다시금 눅눅하고 피로해지고야 만다. 물론 그 파국에는 애덤 리바인의 요한묵시록급 연기도 한 몫을 한다. 노래하는 그는 섹시하지만 연기하는 그는 조금도 섹시하지 않다.


  새롭지 않음이 치명적인 결함은 아니다. 나이브한 세계 인식도 때로는 필요한 위로일 수 있다. 아름다운 영상과 감성적인 노래의 결합이 즐거움을 준다면 그 또한 훌륭한 상품의 요건이요 영화로의 가치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작품의 속성이 등장 인물들의 태도와 혼선을 빚는다면 그건 문제의 여지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가령 댄과 그레타는 꼭 무슨 거대한 불의에 맞서 통쾌한 한판 역전승을 일궈낸 하이스트 무비의 주인공들 같은 태도를 보이는데, 그것은 그들이 레코딩 비용 및 마케팅 방안을 마련한 방법과 상당히 모순되는 부분이라고 볼 수도 있다. 사실 이러한 개운치 않은 면모는 이 작품을 둘러싼 상황과 관련되어 다시 한 번 반복된다. '뉴욕으로 온 원스'라는 과감한 선언이 예고하는 바와는 달리, 이 작품은 존 카니가 미국으로 건너와 헐리우드 스텝들의 지원아래 A급 개런티 배우들 플러스 인기 팝스타를 내세워 만든 신작이기 때문이다. 항상 강조하지만 상업적인 건 죄가 아니다. 다만 그 전술에 제 발 저려 구질구질하게 구는 건 잘못이 맞다. (2014/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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