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겁나는 여친의 완벽한 비밀 (My Super Ex-Girlfriend, 2006)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10. 6. 17.

본문

  매번 제목을 혼동하는 영화가 있다. 이 작품도 그 중의 하나다. 자꾸만 '완벽한 여친의 겁나는 비밀'로 오해한다. 흥미로운 것은 사실 그쪽이 더 설득력있는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부분이다. 루크 윌슨 (혹은 매트)에 비하면 우마 서먼 (혹은 제니)는 완벽한 여친에 가깝다. 비밀 역시 그게 도대체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것이 있다면 '완벽한'보다는 '겁나는'이 되어야 마땅할 것이라 생각한다. 비밀이 비밀이 아니라는 점에서부터 사실은 '완벽한'이라는 수식이 완벽히 김이 빠진 상태다.

  한 5년 사이 외화 제목 번역이 80년대 수준으로 돌아가고 있다. 'My Super Ex-Girlfriend'가 '겁나는 여친의 완벽한 비밀'이 된 것은 그래도 피차 먹고 살기 힘든 판에 너그러이 이해해줄 법한 사정이다. 하지만 'Bacause I Said So'가 '철없는 그녀의 아찔한 연애코치(마이클 레인, 2007)'이 된 것은 진심으로 이해 불가한, 말 그대로 아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The Girl Next Door'가 '내겐 너무 아찔한 그녀(루크 그린필드, 2004)'가 되었으니, 이쯤되면 아찔한 걸 좋아해도 너무들 좋아하신다 하겠다. 국내에선 누가 볼 것 같지도 않은 TV용 영화 'Cow Bells'에는 '철없는 자매의 개과천선 프로젝트(프랜신 맥도겔, 2006)'이란 제목이 붙었다. 제니퍼 가너 출연작 '13 Going on 30'은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 가지 없는 것(게리 위닉, 2004)'가 되었다. 끝이 아니다. 'Rebounded'는 '사랑은 언제나 진행중(바트 프룬디치, 2009)'가 되었고 'Say Isn't It So'는 '사랑은 언제나 어려워(제임스 로저스, 2001)'가 되었다. 프랑스 영화 'Les Poupees Russes'이 '사랑은 타이밍(새드릭 클래피쉬, 2005)'이 된 것은, 에휴 말을 말자.


*


  마이 슈퍼 엑스-걸프랜드. 단순히 슈퍼영웅과 사귀다가 깨지면서 경을 치는 남자의 이야기라기에는 섬뜩한 부분이 많다. 로맨틱 코미디 특유의 과장, 그 이상이다. 화면에도 알게 모르게 두려움이 녹아있다. 어느 신문 기사에선가 강인한 여성의 통쾌한 복수극으로 대리 만족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설명을 했는데 좀 핀트가 어긋나는 얘기다. 일단 매트 (루크 윌슨)와 제니 (우마 서먼)의 관계부터가 시간을 두고 진지하게 발전한 연인 사이라고는 말하기 어려우며 (그게 영화의 전개가 허툴어서든 어쨌든) 이별의 단초를 제공한 책임도 사실은 제니 쪽에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무조건 매트를 당해도 싼 '나쁜 남자'로 매도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오히려 슈퍼 의심과 슈퍼 집착, 그리고 그 뒤끝을 행동으로 구체화할 수 있는 슈퍼 능력의 삼위일체를 이룬 G-걸/제니 쪽이 (남녀를 떠나서) 헤어진 옛 연인의 가장 나쁜 예라고 생각된다. 

  고로 우리는 두 가지 가설을 생각해볼 수 있다. 가설 ①: 이 작품은 여자들은 큰 일을 하며 세상을 구하고 남자들은 장이나 봐놓고 수다나 떨어야 하는 여성 우위 시대를 경계하는 섬뜩한 전언을 담으려 했던 것이다 (시종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루크 윌슨의 연기를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가설 ②: 이 작품은 노감독 아이반 라이트만이 전작 '에볼루션(2001)'의 불명예를 벗겨주기 위해 만든 새로운 커리어-로우 작품이다. 

 

(2010년 6월)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