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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쉽 (Battleship, 2012)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12.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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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멸절의 위기에 처한 것은 인류만이 아니다. 이 작품의 운명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누가, 언제, 어디서, 무슨 의도로 보드게임을 영화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걸까? 사실 궁금증은 그 지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만약 누군가 '모노폴리'나 '젱가'를 영화로 만들겠다며 투자를 권한다면 나는 응당 거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뜻 받아들이면 안될 것 같은 야릇한 예감이 드는 것은 아마도 보드게임의 매력이나 중독성을 얕잡아 보아서만은 아닐 것이다.

 

  어쨌든, 누군가는 그런 짓을 했다. 그 결정을 두고 지금 만족하고 있는지 후회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사실 보드게임을 새로운 영화로 만들기 위해 (좋은 영화라고는 하지 않았다) 필요한 것은 다른 영화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과 다르지 않다. 이야기다. 보드게임 고유의 규칙을 적절히 활용하여 추억을 간지럽히는 것도 일단은 이야기가 갖춰진 다음의 문제다. 반대로 영화를 새로운 보드게임으로 만드는 것은 (역시 좋은 보드 게임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훨씬 쉬운 일이다. 소거의 묘만 살린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좋은 아이디어와 적절한 레벨 디자인만 받쳐주면 된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소설과 영화들이 보드게임으로 한두 번씩 만들어졌던 것도 그래서 가능할 수 있었다. 가령 보드 게임을 가지고 박범신의 '은교'를 만들어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반대로 '은교'를 가지고 보드 게임을 만들 수는 있다.

 

  결론은 간단하다. '보드게임'은 아무 것도 보장해주지 못한다. '하스브로 원작'이라는 괴상한 광고 문구만큼이나 부질없다. 보드게임 '배틀쉽'과는 무관하게 이 작품의 이야기는 글러 먹은 상태다. 그리고 누구나 짐작 가능하듯이 결정타는 외계인이다. 이 무리천만한 설정은 이 작품을 둘러싼 모든 이야기를 외계인으로 수렴시키는 패착을 낳았다.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성공에서 기인한 외계인(혹은 외계 유래 기계체)의 집착은 상식적인 이야기들을 (유치한 것이든 유치하지 않은 것이든)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그 결과 이 작품에는 독창적인 구석이 하나도 없다. 테일러 키취에게 축구를 시킨 것이 나름 가장 신선한 아이디어처럼 보일 정도다 (註1). 정작 보드게임 본연의 고전적 매력에 대한 탐구는 곱게 접어 날려 보낸 채, 크고 날카로운 스프레드 나이프를 들어 CG를 바르는 데만 매진한 꼴이다. 일각에서는 "그래도 볼거리는 확실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유행성 이하선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을 가리켜 볼거리라고 하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엉망진창 촌극 위에 싸구려 디저트처럼 얹혀진 리아나의 코스프레 놀이는 가히 재앙급이다. 항해사와 수색대, 그리고 오퍼레이터를 오가며 직무와는 무관한 (아니 유관한?) 성적 암시로 화면을 점철한다. 그녀가 등장하는 모든 장면이 마치 그녀 뮤직비디오 속 가장 저렴하고 저속한 순간들처럼 느껴진다. 

 

(2012년 4월)

 

(註1) 테일러 키취는 TV 시리즈 'Firday Night Lights (NBC, 2006-2010)'에서 고등학교 풋볼 (미식축구) 선수 역할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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