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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불편한 진실 (An Inconvenient Truth, 2006)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Re:view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08.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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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90년대 중반. 미국의 경제를 활황이었고 빌 클린턴은 개인적 악재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는 인기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전문가들이 조심스럽게 '민주당 장기집권' 가능성을 타진할만큼 당시 클린턴과 민주당은 압도적인 우세를 보여줬는데 여기엔 신선하고 정력적인 두 정치인의 존재가 결정적이었다. 바로 힐러리 클린턴과 앨 고어다. 이 두 사람이 없었다면 혹은 둘 중의 한 사람만 있었다면 '장기집권'이란 무모한 예측은 결코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 두 사람이 뺀질이 대통령의 좌우에서 영부인과 부통령의 포지션으로 활약함으로써 민주당은 준 대통령급의 대선주자를 일찌감치 확보하는 한편 공화당과 차별화되는 개혁 성향의 법안을 공격적으로 밀어붙일 수가 있었던 것이다. 특히 앨 고어는 사실상 클린턴 행정부 내내 국내 문제를 전담하고 있었고 '허수아비 부통령'이 아닌 정권의 실세로 모든 대소사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있었으니 더더욱 금상첨화. 사실상 '앨 고어 대통령'이 탄생할 모든 분위기가 무르익은 시점이었다. 그러나 문제의 2000년 대선에서 그는 공화당 후보 조지 W. 부시에게 국민투표에서 54만표를 앞서고도 선거인단에서 271대 266으로 밀려 패한다. 미국 정치사상 단 네 번 밖에 없었던, 더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고도 당선되지 못한 비극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이후 그는 사실상 정계를 은퇴한다. 그리고는 일찍이 보여주던 전문성과 정책 책임자로의 풍부한 경험, 일반 (전직) 정치인 이상의 남다른 영향력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환경운동에 나선다. 2007년에는 그 노력을 인정받아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과 함께 노벨 평화상을 공동으로 수상한다. 이미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이야기다.

2. 앨 고어가 '일반 (전직) 정치인 이상의 남다른 영향력'을 지녔다는 진단은 과연 타당한 것일까? 이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대중들에게 그가 어떤 인물로 인식되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검증의 대상을 2000년 대선을 기점으로 이전의 앨 고어와 이후의 앨 고어를 분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일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이전 시점과 이후 시점에서의의 인기 기작이 미묘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이전의 앨 고어는, 정치판 용어를 빌자면 '중도 우익의 젊은 기수'였다. '진보적이고 비전있는 보기 드문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대중의 사랑을 받았고 준비된, 전문적, 진지한, 잘생긴, 진보적, 근엄한, 엘리트, 성실한 등의 단어들과 함께 대중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부통령이었던 그의 별명은 두 가지였다고 전해진다. 하나는 '오존 맨(The Ozone Man),' 다른 하나는 '미스터 딱딱씨.' 이 두 가지 별명은 그의 대중적 이미지가 어떻게 추상화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사실 그는 개인사적으로도 흠잡을 곳이 없는 사람이다. 3선 상원의원 출신의 아버지와 '최초의 벤더빌트 로스쿨 출신 여류 변호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워싱턴의 명문 세인트 앨버스를 거쳐 하버드 대학에 진학했다. 이후 저널리스트 활동을 하며 자신 또한 어머니의 모교 밴더빌트 로스쿨에 들어갔다. '프린스'라고 불릴만큼 남다른 외모에, 소위 만능 스포츠맨에, 학업 성적까지 우수한 팔방미인이었다는 것이 후일담 - 혹시라도 주위에 이런 친구가 있다면 그저 우리와 다른 별에서 왔다고 믿는 게 가장 속 편하지요. 결혼생활만 봐도 그의 범상치않은 FM적인 면모는 여지없이 드러난다. 고등학교 졸업 무도회에서 만난 아내와 1남 3녀를 두고 단 한 번의 스캔들도 없이 모범적인 가정생활을 꾸려왔다. 워싱턴 복판에서 태어나 24년간 정계에 몸담고 이후 8년간 전국을 순회하며 대안적 정치활동을 펼쳐온 명망있는 인사가 '고등학교 졸업 무도회에서 만난 아내와 1남 3녀를 두고 단 한 번의 스캔들도 없이 가정생활을 꾸려왔다는' 이야기는 인어나 유니콘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한 마디로 그는 완벽했고 대중들은 그의 완벽함에 지지를 보냈으며 그 완벽함에서 더 나은 미합중국의 꿈과 희망을 보았던 것처럼 보인다.

3. 반면에 2000년 11월 7일의 '드라마틱한 패배' 이후 앨 고어는 새로운 이미지를 얻게 된다. 앞서 가졌던 모든 긍정적인 요소들 - 준비된, 전문적, 진지한, 잘생긴, 진보적, 근엄한, 엘리트, 성실한 등에 하나의 단서가 추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운한.' 즉 모든 걸 다 갖추고도 운이 따르지 않은 - 국민투표에서 이겼다는 점, 마지막 플로리다 논란으로 재검표까지 갔다는 점, 하필 그 상대가 이후 4 플러스 4년간 삽질을 거듭할 (그리 완벽하지도 그다지 똑똑하지도 않아보이는) 조지 W. 부시라는 점에서 대중들은 그에게 '동정'의 눈길을 보냈다. 이 대목에서 투표장에서는 조지 부시를 찍었던 사람들 중에서도 사적으로는 그의 낙선을 안타깝게 여기는 시선이 적지 않더라는 흥미로운 조사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앨 고어가 '비극의 주인공'으로 이해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패하고 정계를 떠나기엔 아까운 인물이 아닌가?'라는 식의. 그리고 그 결과는 대통령이 되지 못한 불운한 대통령감 남자에 대한 연민과 동정으로 나타난다. (세상에 마상에, 잘나서 매력적인 남자가 실패를 겪으며 더욱 매력적인 남자가 된다니!) 

4. 흥미로운 것은 이후 앨 고어가 이러한 이미지를 (의도적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십분 활용하여 왔다는 점이다. 가령 강연장에서 스스로를 '전직 미합중국 차기 대통령감(The Former Next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이란 타이틀로 소개하여 폭발적인 웃음을 이끌어내고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는 일화가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이는 아픈 상처를 극복한 결과일까? 아니면 일종의 '자조 마케팅'으로 '제가 바로 그 때 그 남자입니다'라는 사실을 강도하려는 전략적 일환일까? 중요한 것은 '전직 미합중국 차기 대통령감'이란 재치있는 멘트가 '전직 미합중국 부통령'이라는 실제 이력을 대신하여 선택된 표현이라는 사실이다. 아시다시피 강연 외에도 그는 다양한 방법으로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자신과 자신의 대선 패배를 희화화시키는데 기꺼이 동참했다. 맷 그로닝의 '퓨처라마(FOX, 1999~2013)'에서 보낸 러브 콜에 흔쾌히 달려가 연기했고 (그 중 지구 온난화와 관계된 에피소드는 이 작품에도 잠시 등장한다) 그 유명한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NBC, 1975~ )'에도 출연했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그의 현재 이미지가 대중과 소통함에 있어 2000년 이전의 이미지보다 어떤 면에선 유리한 점을 가진다는 사실이다. 과거 부통령 시절 그의 유일한 약점으로 지적되던 것이 '근엄한 엘리트'라는 점에서 파생되었던 친근감의 문제였음을 기억해보자면 더더욱 그렇다. (훌륭한 사람이고 뛰어난 사람이란 건 알겠는데 어딘가 모르게 어려워.) 허나 보시다시피 악몽의 2000년 이후 그는 보다 친근한 사람이 되었다. 스스로도 그 넘치는 효과를 굳이 마다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그 어떤 정치인, 혹은 전직 정치인, 혹은 그 밖의 정치적 영향력을 지닌 셀러브리티들 중에서 이처럼 동경과 연민, 부러움과 안타까움을 짬짜면마냥 뒤섞어 불러일으키는 미묘한 인물이 또 있었는지 모르겠다. 혹은 그가 2000년 당시 대선에서 조지 W. 부시에게 승리하고 대통령 임기를 채운 다음에 정계에서 물러나 지금처럼 환경 문제를 널리 알리고자 뛰어다녔다면? (그러면 '전직 미합중국 대통령(The Former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그랬다면 과연 그의 강연은, 그리고 이 다큐멘터리는 지금과 같은 미묘한 뉘앙스를 풍기는 것이 가능했을까?

5. '불편한 진실'은 일천 회가 넘는 고어의 순회 강연에 자극을 받은 환경운동가 겸 제작자 데이비드 구겐하임이 나서서 제작한 다큐멘터리다. 제41회 전미 비평가 협회상, 제79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제19회 시카고 비평가 협회상, 제32회 LA 비평가 협회상 등의 다큐멘터리 부문을 싹쓸히하며 명실공히 2006년 최고의 다큐멘터리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로는 드물게 흥행에도 성공하여 그해 미국인이 가장 많이 관람한 작품으로 기록되었다. 내용은 지구온난화와 기상이변 - 결국 '불편한 진실'이라는 제목이 가리키는 바는 편하지 않다는 이유로 이처럼 심각한 현실을 외면하다가는 결국 인류가 파국에 이르고야 말리라는 것이다. 옳고 그름이야 재론의 여지가 없는 부분이다. 환경은 늘 중요한 아젠더이지만 쉽게 관심이 사그러든다. 주기적으로 달아올랐다가 이내 식어버린다. 무디어진 감각을 다시 불러 일으키고 경종을 울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 다큐멘터리의 노력은 가치가 있어 보인다. 좋은 의도에 도덕적으로 올바른 내용에 전달력마저 우수하다. 게다가 정치인 특유의 쇼맨십이라기에 앨 고어는 환경 문제에 대한 열성을 보인 이력으로 이미 대중들에게 각인되어 있다. 이미 그는 환경 문제로 강연을 1천 회 넘게 진행했다. 단순히 정치인의 정치적 의도를 지닌 행위라기엔 일관성 있고 꾸준한 이력이다.

6. 데이비드 구겐하임은 이 작품을 두 가지 부분으로 구성한다. 엘 고어의 열성적 강연 장면이 한 부분을 이루고 엘 고어의 인간적이고 개인적인 독백이 다른 한 부분을 이룬다. 전자와 후자는 여러 챕터로 분할되어 상호 전환되며 흐름을 이룬다. 언뜻 생각하기에 이는 그렇게 특별하거나 이상한 작법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이겠으나 이 작품의 경우에는 다소 유별난 부분이 있다. 바로 그 주인공이 다름아닌 엘 고어라는 것이다. 누차 언급했듯 그는 ① 다수가 동경하던 완벽한 남자였고, ②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이 나빴던 남자였으며, ③ 이제는 돌아와 쓰디쓴 자조로 당신들 앞에 선 남자다. '불편한 진실'은 강연의 사이 사이 삽입된 엘 고어의 독백으로 이 사실을 쉬지 않고 주입시킨다. 정치인으로의 한계와 좌절, 학창시절의 에피소드, 딸과 함께 등반했던 빙하 국립공원, 뜻하지 않은 아들의 사고, 카트리나 현장에서 받은 충격, 대선에서의 고배, 폐암으로 죽은 누이의 이야기 등을 적절히 섞어넣는다. 만약 강연 장면을 잘라내고 나머지 부분만을 하나의 필름으로 모은다면 그건 되레 엘 고어 전기에 가까울테다. 사실 이 고백 중 대부분은 지구 온난화에 대해 바로 알자는 맥락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에도 교묘하게 녹아들어가 논지를 강화시키는 촉매로 작동한다. 그의 좌절, 그의 실패, 그의 충격, 그의 패배, 그의 상처까지 모든 것이 '불편한 진실'의 일부다.

7. 물론 이와 같은 접근법은 사실상 양날의 칼과도 같다. 엘 고어의 호감을 극대화하여 주제의 설득력마저 높이겠다는 전략적 측면에서는 효과적이지만 다큐멘터리 본연의 논리적인 면을 해친다는 점에서는 한계가 없지 않다. 예컨대 다섯번째 삽입 내용인 대선 패배 이야기와 부시 행정부와 석유 조합의 커넥션으로 혐의를 확장하는 부분은 맥락에서 다소 벗어난다. 또한 아들의 교통사고와 누이의 폐암으로부터 얻은 깨달음을 논하는 부분도 '환경 운동가'라는 스토리에 맞추기 위해 부자연스럽게 배치된 감이 없다고는 못하겠다. 다만 이런 기계적 판단만으로는 평가할 수 없는 어떤 부분이 이 작품에는 존재한다. 예상을 능가하는 효과와 시너지 - 적절한 호기심과 재미를 충족시키며 흔한 오해를 쉽고 간단한 것부터 조목조목 해결하는 엘 고어의 뛰어난 강연 능력과 데이비드 구겐하임의 기술적 구성이 잘 맞아 떨어진 결과일 것이다.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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