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의 손길: 잉그리드 마이컬슨

Ingrid Michaelson 의 네번째 앨범 <Everybody>
2009년 08월 (Cabin 24 Records)


  뉴욕 출신의 인디 싱어 송라이터 잉그리드 마이컬슨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TV 시리즈 <그레이스 아나토미>다. 이 쇼에서 그녀의 노래가 흘러나온 순간이 어림잡아 기억나는 것만 셈해도 열 번쯤. 어쩌면 그 이상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원 트리 힐>, <스크럽스>, <어글리 베티> 등 BGM 유행을 주도하는 여러 TV 시리즈에서 그녀의 노래를 가져다 썼지만 유독 <그레이스 아나토미>에서의 삽입 빈도가 유독 높았음은 분명 주목할만한 일이다. 제작자 중에 그녀의 친인척이나 광팬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분명 어딘가 쇼와 절묘하게 궁합이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있으니 그리 되었을 터.

  하긴 가만히 생각해보면 찰떡 궁합은 찰떡 궁합이다. 가령 <하우스 M.D.>의 마지막 5분에 가장 잘 어울렸던 노래라면 제프 버클리의 'Halelluah(1집, 1994)' 혹은 라이언 아담스의 'Desire(3집, 2002)'가 떠오른다. 또한 <스크럽스>의 마지막 5분에 가장 잘 어울렸던 노래라면, 더 프레이의 'How to Save a Life(1집, 2005)' 혹은 맨 앳 워크의 'Over Kill(2집, 1983)'이 떠오른다. 반면 <그레이스 아나토미>의 마지막 5분이라면? 물론 상기 열거된 곡들도 이미 삽입된 경력이 있거나 (메디칼 시리즈 용 BGM 족보라도 있는 것인가) 삽입되면 잘 어울릴 선택이겠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는 역시 잉그리드 마이컬슨의 'The Chain'이다. 그 다음으로 한 곡만 더 골라야 한다면 역시 그녀의 'Keep Breathing'이 좋겠다.

  잉그리드 마이컬슨의 노래엔 분명 독특한 매력이 있다. 다이앤 버치처럼 대책없이 발랄하지도 않고 리사 해니건처럼 과도하게 조숙하지도 않다. 사라 바렐리스의 점탄성이나 레지나 스펙터의 장난기도 없다. 가볍고 향기롭고 살짝 취하며 금방 날아간다. 이 대목에서 라이트 바디 와인을 운운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을 듯 하다. 와인이란 비유는 너무 고급스러운 나머지 범상해서 사랑스러운 그녀의 노래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갖다 붙이자면 섬유탈취제 정도가 적당하지 않은가 싶지만 어쩐지 대놓고 그렇게 잘라 말하기엔 조금 미안하다. 귀를 사로잡는 듯 마는 듯, 코를 간지럽히는 듯 마는 듯, 색을 입힌 듯 마는 듯, 투명한 물기를 담아 감도는 잉그리드 마이컬슨의 노래는 영상을 압도하지 않는다. 단지 가볍게 앉았다 향기를 풍기며 날아간다. 특히 미숙한 존재들이 미숙한 사건들 안에서 미숙한 관계 맺음을 반복하는 <그레이스 아나토미>의 경우, 그 적절한 거리두기가 훌륭한 위로의 손길로 조화로이 기능한다는 느낌이다. 역류하는 호르몬을 이해하고 다독여주는.

  데뷔 때에 비하자면 환골탈태라고 해도 좋을만큼 달라진 인상만큼이나 잉그리드 마이컬슨의 위치 또한 드라마틱하게 달라졌다. 빌보드 앨범차트 18위까지, 싱글차트도 37위까지 올라가 봤다. 프랑스, 독일 등 유럽 등지에서의 인기는 그 이상이다. 몇 년 전부터 월드투어까지 뛰고 있다. 앨범을 거듭하면서 잔지 미숙했던 부분들이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며 그녀만의 견고한 스타일로 완성되고 있으며 차트 퍼포먼스와 판매량도 상승세다. TV 시리즈 외에도 영화와 광고 삽입곡으로 러브콜이 끊이지 않는다. 이제 굳이 인디라는 틀로 규정할 수가 없는 존재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사실 그녀의 커리어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자체 제작한 데뷔 앨범을 발표한 이후 겨우 5년이 흘렀을 뿐이고,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지도 이제 겨우 3년째일 뿐이니. (2010/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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