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이야기: 김치 도너츠
by 김영준 (James Kim)던컨 도너츠도 오랜만에 먹으니까 맛있네. P는 감격적 표정으로 '모카 크런치'에 김치를 얹었다. 얼마 전 김장 때 담가 아직 채 익지도 않은 아삭아삭 새김치였다. 그걸 본 P의 친구 K도 구미가 당기는 듯 입맛을 쩝쩝 다신다. "나도 김치 한 조각만." "안돼. 임마. 나 먹을 것도 없어." "치사한 자식." K는 가방에서 고추장을 꺼낸다. 그 유명한 순창 고추장이다. 그는 미니 슈크림볼을 크고 넓적한 양푼에 담더니만 어디서 났는지 모를 은수저로 고추장을 대차게 한 숟가락 퍼 넣는다. 가방에서 찬밥을 꺼내 통째로 쏟는다. 싹싹 비비니, 아우, 군침 돌아. K는 손을 들어 직원을 부른다. "언니, 여기요." P가 부끄러웠는지 면박을 준다. "짜샤, 언니가 뭐냐, 언니가." "언니는 다 언니지 그럼 뭐라고 부르리."
도너츠 매장의 아르바이트생은 쭈삣거리면서 그들에게 다가오는데 그건 이렇게 앉아서 카운터의 자기들을 오라 가라 하는 손님이 머리털나고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수염이 거뭇거뭇한 아저씨들이 '언니'라고 부르니까, 더욱 이상해. "왜요? 손님?" 손님 대하는 태도에 아직 각이 잡히지 않은 것은 그녀가 이 일을 시작한 지 채 보름도 되지 않아서다. "혹시 참기름 없어요?" "참기름요?"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하지만 참기름을 내어줄 수밖에 없다. 있는 참기름을 없다고 잡아뗄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P는 참기름 한 방울 똑, 떨어뜨려서 양푼 속의 슈크림볼을 비빈다. 껍질이 으깨지고 슈크림이 터져 골고루 비벼지면서 고소한 냄새가 나니, 던킨 도너츠 매장의 모든 손님들이 꿀꺽, 침을 삼킨다. "손님, 저도 한 숟가락만 주면 안될까요?" 오감이 정복당한 아르바이트생은 K에게 애원한다. "손님, 그거 저희 하프-더즌, 그러니까 도너츠 여섯 개짜리와 바꾸지 않으실래요?" 옆 자리 아줌마의 말이다. "이봐요, 그거 얼마예요? 나한테 팔아요." 커피를 들고 달려온 어떤 아저씨의 말이다. "저기, 젊은이. 제발 나도 한 입만." 지나가던 할머니의 말이다. P는 그들을 모두 뿌리치고 문제의 비빔 도너츠를 맛있게 퍼먹는다. "치사한 자식." 라즈베리 먼치킨에 깍두기를 얹어 어그적 어그적 씹어먹으며 K가 눈을 흘긴다.
(2009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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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농콩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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