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블로그와 게임의 법칙

  <창작 블로그>란 지난 여름,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 의해 제안된 메타-블로그의 이름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창작물 연재 공간'이란 것이 그들이 말하는 메타의 성격인데, 개인 블로그에서 작성한 창작물 중 일부를 선택하여 송고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하고 자유도가 높은 방식의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물론 따지고 보면 이는 아주 새로운 아이템은 아니다. 이미 여러 차례 비슷한 컨셉트의 시도가 있어왔던 것이기 때문이다. 대화방 언어를 넘어 모니터로 이야기를 읽는 문화는 일찍이 이우혁, 유일한, 이영도의 PC통신 연재물 시대부터 가능성을 보였던 것이고, 까페, 클럽, 커뮤니티 등에서의 의욕 충만한 유저들의 이합집산으로 명맥을 이어왔던 것이며, 싸이월드의 <페이퍼>라는 아마츄어 창작 공간으로 소기의 성과를 올려왔던 것이다. <창작 블로그>의 가장 큰 의미는 인터넷 서점이라는 기반을 통해 사진, 그림, 음악, 동영상 등에 밀려 점차 설 곳이 없어진 텍스트 중심의 창작물에 창작자-수요자 네트워크를 이룰 수 있는 장을 제공한다는 부분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난 지금, <창작블로그>의 상태는 그다지 매끄러워 보이지 않는다. 두 달만에 연예물과 연애물이 대부분을 집어 삼켜버리더니만, 창작과 무관한 블로거들까지 너도 나도 몰려 진입하여 이미 작은 <올블로그> 혹은 <블로그코리아>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창작물의 정의를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봐야하느냐는 논란의 여비가 다분한 부분이겠으나, 또 반대로 창작의 범위를 충분히 넓게 잡으면 세상에 창작하지 않는 블로그가 없을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기에 이는 굉장히 애매한 부분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창작의 정의에서 중요한 요건은 두 가지다. ① ‘처음으로 만들어 낸 것’, ② ‘독창적인 것’. 드라마, 영화, 예능프로, 연예인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기술하는 연예물은 어느 쪽에도 사실 해당사항이 없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다음 View>에 한시간에도 수십건씩 같은 주제의 비슷한 이야기가 쏟아지고 있는 마당에 누가 처음이고 누가 나중인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고, 격려, 호응, 주문, 푸념, 자기 만족에 가까운 방청객스런 내용을 두고 독창성을 논하는 것은 사실 좀 어폐가 있는 일이다. 적어도 <올 봄엔 나도 한 번? 간지 작살 스타 레깅스 화보>, <내 손으로 그려봤어, 우유빛깔 알천랑>은 창작이 아님을 확신할 수 있다. <’1박 2일’이 어쩌고 저쩌고다>나 <’무릎팍 도사’의 어쩌고 저쩌고를 배워라> 역시 창작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실제로 현재 <창작블로그>에서 초청 연재작을 제외하고는 시, 소설, 에세이, 인문 칼럼에 속하는 글이 주목받는 경우는 대단히 드물다. 가장 인기 있다는 열 편의 연재물을 살펴보자면, 연예 이야기가 세 편, 연애 이야기(경험담/컨설팅)가 두 편, 군대 이야기(경험담)가 두 편이다. 이 중에 알라딘이 천명한 '문학적 감수성'에 부합하는 연재물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게다가 대부분의 그러한 포스트들은 이미 기존에도 <올블로그>, <블로그코리아>, <다음 View>를 통해 높은 인기를 모으고 있던 (혹은 그와 다를 바 없는) 것들이다. 고로 나의 의문은 이렇다. 왜 굳이 그들은 <창작 블로그>라는 범주에까지 진입을 하였던 것일까. 이미 생산집단과 소비집단의 네트워킹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곳이 많은데 기대할 수 있는 트래픽의 정도도 많지 않은 신생 메타-시장까지 점령을 해야만 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과연 그들은 자신의 포스트를 <다음 View>의 ‘창작’ 카테고리로 송고하는 것일까? 유감스럽지만 많은 경우에 그렇지 않다. ‘문화/연예’나 '시사', 혹은 '라이프' 카테고리를 선택한다. 분명 이상한 일이다. 굳이 <창작블로그>라는 메타 블로그에 가입하여 송고한다면 스스로의 포스트를 창작이라고 생각한다는 뜻인데 왜 <다음 View>에선 ‘창작’ 카테고리에 넣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는데 ‘창작’ 카테고리가 가장 인기가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바로 이런 것이 문제다. 시장을 특성화하는 것이 서비스 기획자의 몫이라면 자신에게 알맞은 시장을 찾아가는 것이 서비스 이용자의 몫이라는 것이다.

  이미 블로그라는 매체의 성격은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블로그로 명망을 쌓는 이들이 생겼고 블로그로 수익을 올리는 이들이 나타났다. 이미 하나의 층화된 사회이자 엄연한 시장이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경쟁과 점유의 문제가 발생한다. 때문에 기존 시장에서의 성공으로 방대한 구독자를 보유한 소위 파워 블로거들이 특성화 미세 시장을 공략해도 좋은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물론 그 메타 시장의 특성화 방향과 해당 블로그의 컨텐츠가 맞으면 할 말은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데 무작정 진입하여 누적 이익을 통한 우위를 점한다면? 분명 조금은 고민해 볼 문제다. 굳이 이런 지적을 하는 이유는 자신과 맞지 않는 시장에 진입한 블로거들만을 탓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걸 조율하지 못한 알라딘을 탓하기 위함도 아니다. 오히려 절망적인 것은 그 소비집단인 알라딘 유저들의 클릭과 추천이다. 설사 적절하지 않게 송고가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그걸 소비하는 집단이 비판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만큼의 성숙이 이루어져 있다면 저절로 교통 정리는 이루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TV 이야기 재밌다. 연예 이야기 좋다. 하지만 굳이 <창작 블로그>라는 범주 안에서 추천할 필요까진 없다. 만약 정말 그렇게 좋은 내용이라면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난 당신 연재가 마음에 든다. 하지만 <창작블로그>에서는 적절하지 않다고도 생각한다. 차라리 <다음 View>에 가서 읽고 추천하겠다.” 그 적절성의 기준이 우리 사이에서 어느 정도 암묵적으로 합의가 되어야 비로소 시장 세분이 가능하다. 현실에서는 황석영 선생의 단편 1회분 조회수보다 <올 봄엔 나도 한 번? 간지 작살 스타 레깅스 화보>, <내 손으로 그려봤어, 우유빛깔 알천랑> 따위 포스트의 조회수가 압도적으로 높다. 구효서 선생의 단편 1회분 추천수는 <’1박 2일’이 어쩌고 저쩌고다>나 <’무릎팍 도사’의 어쩌고 저쩌고를 배워라> 따위 포스트의 추천수를 절대 넘지 못한다. 특급 작가의 초청작도 압도적으로 밀리는 상황인데 아마추어 무명씨들이 정말 정직하고 성실하게 '창작'의 취지에 걸맞는 포스트를 작성하고 발행하여 경쟁이 가능할까? 당연히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

  종종 이런 푸념을 듣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뭐 하나 잘 된다고 하면 전부 다 우르르 몰려가는 경향이 있어 문제다.” 반은 맞는 말이고 반은 틀린 말이다. 유독 우리에게 심한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경향>이야 사실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단순히 <경향>이 아니라 방법이고 원칙이다. 대개 잘 되는 바닥으로 몰리긴 몰리되, 그 안에 최소한의 일관된 매커니즘은 내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저 개개인이 나름의 원칙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 시장 구성원간에도 어느 정도는 합의된 원칙이 있어야 한다. 당연히 이러한 원칙들은 마땅히 생산자와 소비자 양측 모두에게 상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하며, 이에 준하지 않는 참여자에게 정당한 균형과 견제를 강제할 수 있을만큼의 적절함을 가져야 한다. 고로 우리의 '문제'는 이렇게 다시 정정될 수 있겠다. 우르르 몰려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원칙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몰려가도 되는 바닥과 몰려가선 안되는 바닥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혹은 큰 문제의식 없이 그런 행위를 용인한다는 것이다. 게임의 법칙’이 작동하는 범위 안에서 대등한 구성원간의 견제와 균형이 전제되어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의 ‘무한 경쟁’은 전혀 다른 의미다. 그렇기에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똑같은 쏠림 현상에도 불구하고, 그로 인해 빚어지는 결과의 질과 체계와 균형이 다른 것이다. 이는 물론 알라딘 <창작블로그>를 두고 시작한 이야기지만 그 외의 어떤 분야에 대해서도 적용이 가능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2009/10/29)

신고

'불규칙 바운드 > 짧은 낙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들 패드를 소개합니다  (2) 2013.12.12
배반의 계절  (0) 2013.11.01
창작 블로그와 게임의 법칙  (0) 2009.10.29
낙농콩단의 아홉해를 맞이하여  (0) 2009.08.13
쌍둥이여! 가을에 야구 좀 하자!  (0) 2009.06.06
유입 검색어 요지경  (0) 2009.05.19
|  1  |  ···  |  56  |  57  |  58  |  59  |  60  |  61  |  62  |  63  |  64  |  ···  |  205  |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