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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스카이폴 (007 Skyfall, 2012)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12.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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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즈물과 평행 주차의 공통점은 앞뒤를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어떤 시리즈물이 전편을 염두하고 속편의 여지를 남겨놓는다고 해서 굳이 탓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다만 요즘에는 그 정도가 과히 심해지고 있으니 문제다. 두 시간이 넘는 영화 한 편이 단지 속편을 위한 에피타이저처럼 느껴진다면 아무래도 정상적인 범주로 이해해주기는 어렵다. 요즘엔 너도 나도 트릴로지다 뭐다 해서 첫 편을 당연한 듯이 방대한 티져 영상물로 만드는 것이 유행인데, 기존의 프랜차이즈 시리즈들도 리부트 때마다 보너스 피쳐 혹은 코멘터리에 혹은 팬북 혹은 설정집에 가까운 작품 한 편씩은 깔아놓는 듯 하다. 그렇다보니 그럭저럭 봐줄만 한 경우조차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면 어김없이 허무감이 밀려온다. 어쩐지 속 빈 강정 같은 느낌 때문이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6대 제임스 본드. 어째 '카지노 로얄(마팀 캠벨, 2006)'에서 의외로 무심하고 덤덤하게 바통을 넘겨 받았다 싶더니만 어느새 요란하게 이러한 유행에 발맞추기 시작했다. 노골적으로 본드의 입을 빌어 "레저렉션(부활)"을 원한다고 선언하고, 싸이코 숙적과의 대결을 통해 유년의 기억을 더듬는다. 이를 통해 이전 두 편의 크레이그 본드가 표방했던 몸짱-눈빛짱-액션짱 '진화한 007' 이상의 경지에 접근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정확하게 시대가 요구하고 시장이 갈망하는 모범 답안을 찾은 것처럼 보인다. 근 몇 년간의 배트맨의 부활 공식을 교묘하게 다듬어 놓은 '스카이폴'의 전략은 상당히 영리하고 날렵하다. 오래된 매력과 새로운 매력이 알맞게 공존한다. 그리고 적절한 아드레날린으로 범벅이 되어있다. '퀀텀 오브 솔라스(마크 포스터, 2008)'보다 분명히 낫다. 제임스 본드의 팬이라면 (그리고 티모시 달튼이 역대 최고의 제임스 본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도저히 마음에 들지 않아할 이유가 없게끔 만들어졌다. 

 

  다만 조금 삐걱거리는 부분이 있다. '스카이폴'에는 두 가지 상충된 목표가 있다. 첫째는 본연의 익숙한 제임스 본드, 즉 클래식 007의 전형을 유지하려는 관성이다 ("미션 중 사고를 당했던 본드가 살아 돌아와서 미처 끝내지 못했던 영업을 마무리짓는다"). 둘째는 본드, 본드의 주변 인물, 본드의 장르, 본드의 시리즈를 새로이 정의내리는 작업이다. ("과연 오늘날에 있어 첩보란 무슨 의미이며 또한 비밀 요원이란 어떤 존재인가?"). 그 두 가지를 동시에 이루기 위해 이 작품은 마치 고전 비극이라도 소환하려는 듯 장대한 5부 구성을 취하는데 지나치게 많은 이야기를 구겨넣은 듯한 인상이 강하다. 더 심각한 것은 그나마도 정교하게 맞물리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이 작품의 악역 실바 (하비에르 바르뎀)와의 대결을 굳이 (본드가 유년기를 보냈던) 스코틀랜드의 스카이폴 저택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은 도식적으로는 이해가 가지만 논리적으로는 허점이 많은 전개처럼 보인다. 하비에르 바르뎀의 매력과는 별개로 실바라는 인물이 본드의 재창조 및 장르적 재정의의 트리거가 될만큼 상징적 의미가 있는 인물인지도 잘 모르겠다.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건 고집이다. 일단 무조건 우겨넣은 다음에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아니 도대체 뭘 믿고? 숨 막히게 멋있는 저 남자 하나만 믿고?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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