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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4. 두고보자, 마산댁 (1/3)
    낙농콩단/Season 9 (2008) 2018.10.29 22:00

      세상에는 존재만으로도 다른 이를 압도하는 사람이 있다. 이를테면 마산댁처럼 말이다. 남자는 처음 그녀를 마주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용수철처럼 곱슬거리는 파마머리에, 음향대포처럼 강력한 웃음소리에,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꿈틀거리는 입꼬리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의 형상을 지닌 눈초리에, 폭풍처럼 휘날리는 무지개색 월남치마에, 더 이상 잃을 정신이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을 정도다. 종종 영화 같은 것을 보면 용솟음치는 고수의 기에 눌려 자기도 모르게 움찔 뒷걸음질치는 하수들이 나온다. 심지어 고수가 아무 짓도 하지 않았고 어떤 짓을 할 의도조차 없었는데도 말이다. 당시 남자의 기분이 딱 그랬다. 움찔하며 엉덩이에 힘을 주었다. 가능하기만 했다면 정말 꽁지가 빠져라 도망갔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은 그가 ‘락트-인 신드롬’ 환자로 병원 침대에 4년째 누워있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마산댁은 프리랜서 간병인으로 남자를 간호하러 왔다. 그 남자의 가족들 중 일터에 나가지 않고 간호 전선에 뛰어들어도 될만큼 여유로운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락트-인 신드롬'이란 다른 말로 감금증후군이라고도 하는데, 전신이 마비되어 움직일 수는 없음에도 여전히 심장은 뛰고 뇌는 생각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쉽게 말해 뇌와 몸의 대화가 끊어진 상태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의사의 말을 빌리자면 대뇌와 소뇌는 정상이나 뇌간의 일부가 손상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과연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보거나 듣거나 생각하는 것 뿐이었다. 슬프게도 그 밖의 많은 일들이 불가능해졌다. 만지고, 말하고, 웃고, 울고, 먹고, 마시고, 걷고, 달리고 등등. 어린 시절 남자는 산 채로 관에 갇히는 악몽을 종종 꾸고는 했다. 악몽 속에서는 눈을 떠도 깜깜했고 눈을 감아도 깜깜했다. 누운 채로 몸을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숨이 막혔다. 또한 꿈이 괜히 꿈이 아닌 관계로 아무리 소리지른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울다 소리지르다 울다 소리지르길 반복하다가 지칠 무렵이 되어야 다행히 꿈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꼭 지금 남자의 처지가 그랬다. 바로 그런 기분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더 이상은 깨어 돌아갈 현실이 없다는 정도랄까.


      담당 의사는 그에게 눈깜박임으로 의사를 표현하도록 주문했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눈깜빡임 한 번은 <예>이고 눈깜빡임 두 번은 <아니오>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 제 이야기가 들립니까?

      남자는 한 번 눈을 깜빡거렸다.

    - 제가 이 방에서 가장 잘생긴 의사라고 생각하십니까?

      남자는 두 번 눈을 깜빡거렸다. 


    *


      물론 이런 식의 의사소통이 수월하다고는 말할 수 없겠다. 대단히 불편하고 번거로운 것이 사실이다. (너무도 당연하지 않은가?) 하지만 유일한 방법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나마 눈을 깜빡거리고 눈동자를 움직일 수 있음은 실로 다행한 일이었다. 눈은 이제 그의 눈인 동시에 혀이기도 했다. 눈이 혀보다 웅변적일 수 있다는 그 옛날 유명한 누군가의 지적이 새삼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몇 년 전 대충 보고 말았던 ‘잠수종과 나비(The Diving Bell and the Butterfly, 2007)’라는 영화 역시 새삼 새롭게 느껴졌다. 영화 속 남자와는 달리, 다행히 남자는 두 눈을 모두 깜빡일 수 있었다. 비교적 괜찮은 거리감과 입체감으로 사물을 보고 있었다. 만약 눈깜박임에 익숙해질 수만 있다면 영화 속 남자보다 풍부한 표현이 가능할 것이었다. 익숙해질 수만 있다면.


      운동능력을 상실한 남자의 몸은 다양한 차원에서 남의 손길을 필요로 했다. 가만히 누워있는 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는 다른 환자들보다 손이 덜 가는 편이었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그렇기에 더더욱 상시 손길이 필요한 존재이기도 했다. 사람의 정신 역시 근육과 같다. 사용하는만큼 늘어나고 사용하지 않으면 줄어든다. 남자는 사회에서 멀쩡한 몸으로도 감금증후군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빠져들어가는 사람들을 많이 목격했다. 소외, 고립, 따돌림, 왕따, 전따, 은따 등으로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세계와의 소통 방법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그 결과 차츰 정신의 퇴화를 겪는다. 생각할 힘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스스로를 표현할 수 없는 남자에게 대화를 걸어 정신이 반응하도록 일은 무척 중요했다. 남자의 가족들이 애써 마산댁과 같은 숙련된 프로페셔널 간병인을 데려온 이유다. (계속)


    시즌 9, 에피소드 104 (2008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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