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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4. 두고보자, 마산댁 (2/3)
    낙농콩단/Season 9 (2008) 2018.10.30 10:00

      마산댁의 경력은 과연 화려했다. 보통은 알선 업체를 끼고 들어가기 마련인 다른 간병인들과는 다르게 마산댁은 직접 환자 가족들에게 이력서를 뿌린다는 사실도 독특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걸 한 번이라도 읽은 사람들은 잊을 수가 없을만큼 감탄스럽게 작성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녀가 맡았던 환자의 77.8% (뇌사판정환자 포함), 환자 가족의 83.8%, 같은 병실 환자 가족의 92.3%가 무척 만족했다는 상세한 통계가 마이크로소프트 엑셀의 강력한 기능으로 구현되어 있는 대목에서는, 어우 정말, 모두가 할 말을 잃곤 했다. 그녀의 간병을 경험해 본 사람들의 추천사도 있었다. 2001년 마요병원에서 그녀의 신세를 졌다는 양산박 할아버지는 "비록 당시 6개월 이상 의식은 없는 상태였지만 마산댁이 항상 주변에서 따뜻하게 돌봐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읍니다"라고 고백했다. 2003년 자기 환자를 성심껏 돌보는 마산댁에게 감명을 받았더라는 문사철 비뇨기 전문의 역시 "간병계의 패러다임을 바꿀, 올 여름 단 하나의 선택 ★★★★"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


      마산댁은 남자 가족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남자의 아내가 오케이를 했고 딸도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밝혔다. 남자는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렇다. 그냥 지켜보았다.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간병인 따위가 누구건 관심도 없었다. 그의 관심은 오직 이 감금상태에서 벗어나 가족들 품으로 돌아가는 것 뿐이었다. 그는 진심으로 가족들이 자길 간병인에게 맡기지 않길 바랐다. 일 따위 그만 둔다고 당장 굶어야 할만큼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간병인이 아니라 가족들이 옆에 있어주길 바랐다. 시간이 더 흐른 다음에야 어쩔 수 없겠지만 최소한 한두 달 만이라도. 하지만 가족들은 일터로 돌아갔고 그는 간병인 아줌마, 마산댁과 단 둘이 병실에 남겨질 수 밖에 없었다. 둘이 남기가 무섭게 그녀는 다짜고짜,

    - 조지 클루니라고 불러도 되지?


      남자는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사실 못했다. 다짜고짜 무슨 얘기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눈을 두 번 깜빡거렸다. 마산댁은 그걸 못봤다. 다시 눈을 두 번 깜빡거렸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마산댁은 그것을 동의의 표현으로 받아들였다. 


      그 날부터 남자의 이름은 조지 클루니가 되었다. 줄여서 조지라고 부르는 날이 많았다. 조지 클루니는 마산댁이 가장 좋아하는 배우였다. 남자는 조지 클루니를 딱히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멀쩡한 자기 이름을 두고 조지 클루니라고 불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무엇보다 뭐든 자기 멋대로 해버리는 마산댁의 막무가내식 행동이 거슬렸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계속해서 남자를 조지 클루니라고 불렀다. 


    - 조지 클루니, 잘 잤니?

    - 조지 클루니, 밥 먹자.

    - 조지 클루니, 우루루루, 사람 알아보나?

    - 내가 하루에 소변은 세 번만 보라고 했니? 안했니?


      심지어 환자복을 갈아 입힐 때는 바지를 들추며 이런 말까지 했다.

    - 방가, 리틀 클루니!


      남자는 절망했다. 간병인 아줌마의 노리개로 전락한 자기 신세가 서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 복잡한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눈만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조지 클루니 같은 명배우라도 아마 눈동자 연기 혹은 눈깜빡임 연기는 불가능할 것이었다. 남자는 이런 생각까지 했다. 눈에서 레이져를 쏠 수 있어 저 미친 여자를 혼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건 이뤄질 수 없는 소망이었다. 다시 이런 생각까지 했다. 차라리 총구를 입에 쑤셔넣고 방아쇠를 당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유감스럽게도 역시 이뤄질 수 없는 소망이었다. 남자의 망막에 맺힌 절망을 마산댁은 전혀 다르게 해석했다. 

    - 우리 조지, 완전 심심하구나!


    *


      마산댁은 남자를 어린아이 대하듯 다루었지만 실상 남자보다 연배는 아래로 보였다. 만약 그가 예전처럼 멀쩡히 정력적인 사업가로 살아가는 중이었다면 절대 이런 상황은 절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남자는 이 사회 먹이사슬의 상부를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졸지에 먹이사슬 최하단에나 있을 법한 여자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구나. 그런 여자의 노리개가 되고 장난감이 되어버렸다. 남자는 분했다. 한탄이 절로 나왔다. 몸을 움직일 수 없었음에도 몸이 떨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분명히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밤이면 밤마다, 그는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병원에 들린 가족들에게 '제발 좀 간병인 아줌마를 바꿔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코로 튜브를 넣어 양분을 받아야 하는 남자의 굳은 몸으로는 그 깊은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기 어려웠다.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눈동자 깊은 곳에 그 서러움을 떠오르게 만드는 것. 가족들은 그 슬픔을 발견하고 잠시 가슴 한 켠이 찡해옴을 느낄 수 있었으나 그것이 '제발 좀 간병인 아줌마를 바꿔달라'는 신호임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럴 수록 간병인 아줌마에게 간절히 마음을 열었고, 또 마산댁 역시 가족들 앞에선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 심려가 크시죠, 사모님. 하지만 조금만 힘을 내세요.

    - 고마워요, 아줌마.

    - 그나저나 사장님이 참 미남이세요. 이런 유능하고 멋진 분이 이렇게 계시면 안되는데.

      마산댁의 높은 평점을 비로소 남자의 가족들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반면 남자는 답답했다. 


      ‘그게 아닌데, 지금 저 여자에게 속고 있는 건데.’ 


      남자는 할 수만 있다면 낮시간의 사정을 가족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아내가 남자에게 물었다.

    - 여보, 뭐 하고 싶은 말 있어요?

      남자는 <응>의 뜻으로 눈을 한 번 깜박거렸다.

    - 그게 뭔데요?

      아내가 대답을 기다리는 걸 본 남자는 힘이 빠졌다. 그냥 말할 수 있다면 잘도 이러고 있겠다. 남자의 아내가 문제를 깨닫기까진 5분이 걸렸다.

    - 아, 그렇죠. 그렇게 물어보면 안되죠. 이제 알겠어요. 아파요?

      남자는 <아니>의 뜻으로 눈을 두 번 깜박거렸다.

    - 추워요? 아님 더워요? 

      남자는 <아니>의 뜻으로 눈을 두 번 깜박거렸다.

    - 그럼 간호사를 불러다 줄까요?

      역시 두 번 눈을 깜박거렸다.

    - 뭐지? 정말 모르겠네.

      골똘히 생각에 잠긴 아내의 모습에 남자는 벌떡 일어나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계속)


    시즌 9, 에피소드 104 (2008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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