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107. 우리집 강아지 뽀삐 (4/6)
    낙농콩단/Season 9 (2008) 2018.11.12 11:21

      아, 저기 견강부씨가 들어옵니다. 저는 쌍문 견씨 집안의 개 견으로 그 임무를 다하기 위해 그에게 달려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듭니다. 금방이라도 권력의 추가 제게로 기울 것만 같은 느낌이에요. 견강부씨는 자상하게 제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오말순 여사에게 말을 꺼냅니다.

    - 임자, 애들 이모가 아픈 거 말이야.

      애들 이모라면 서열 3위 배강새 여사입니다. 배여사가 아프기 시작한지는 일주일 정도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가벼운 감기 증세처럼 보였는데 하루가 다르게 심해졌어요. 발열에 오한에 구토…… 시름시름 앓더니만 지금은 거동이 불편할 정도가 되었죠. 때문에 저도 지난 며칠간 밥을 제 때에 얻어먹질 못했어요. 오말순 여사가 개 견에게 밥을 챙겨줄리는 없으니 (스크린 골프에 빠져 자기 밥도 안 챙기는 여자인걸요) 하릴없이 애들 누나가 퇴근해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거든요.

    - 뭐래요? 점쟁이가?

      아니! 사람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의사를 만나야지, 미아리 고개에 가서 점쟁이를 만나고 오면 어떻게 한답니까? 정말 답답해요.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동산병원에서 못고쳤다고 아예 다른 병원은 가볼 생각도 안하네요. 쌍문동 동산병원의 원장은 일흔 먹은 파파 할아버진데 배여사를 진찰하고 나선 '너무 늦었네. 고칠 수 없는 병이로구만' 이라고만 했다나봐요. 무슨 병인지 병명이라도 얘기해주지도 않고서 말이에요. 의사가 그런다고 순순히 집에 돌아와 며칠을 그 문제로 왈가왈부하더니만, 결국은 점집에 갔다왔는가 봅니다.

    - 아무래도 투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 같다는군.

    - 투기요? 어머머, 우리가 투길 한 게 뭐가 있답니까? 집이라곤 달랑 이 쌍문동집 하난데. 서초동에 꼬딱지만한 빌딩이 몇 개 있긴 하지만 그건 아버님한테 물려 받은거지 투기가 아니잖아요.

    - 그 투기(投機)가 아니라 임자, 그 투기(妬忌)를 말하는 게야.

      강샘이란 얘깁니다. 어려운 말로는 모질(媢嫉), 쉬운 말로는 질투죠. 옛말에 '투기를 잘하는 부인은 집안에 있는 첩을 투기할 뿐만 아니라……' 할 때 그 투기죠. 제가 궁금한 건 견강부씨가 자기 입으로 점쟁이에게 '난 마누라가 셋이요' 하고 털어놓았을까 하는 부분입니다. 그런 고해를 들었다면야 아무리 돌팔이 점쟁이라도 투기를 원흉으로 떠올리지 아니할 수는 없었을테니 말입니다. 만약 순순히 이야기하지도 않았는데 마누라가 셋인걸 맞췄다면, 그는 진짜 점쟁이가 맞을 겁니다. 기회만 된다면 저도 한 번 가서 만나보고 싶어요. 물어볼 게 많거든요. 내년에는 바이오 테마주가 반등할까요? 혹은 꽃피는 봄이 오면 과연 내 님이 오실까요? 등등.

    - 투기라니요. 그럼 셋째 동서가 둘째 동서를 질투하여…… 설마!

      오말순 여사가 놀란 토끼눈을 합니다. 허나 그 날카롭고 부박하게 주름진 눈은 아무리 크고 맑게 뜨려고 해도 토끼눈이 될 수 없나 봅니다. 영락없는 개호주의 눈깔이라 오도독 소름마저 돋습니다. 뭐랄까요. <조선왕조 오백년>의 재방송을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투기로 저주행위를 하고 그래서 누가 병에 걸린다는 발상부터가 사실 <조선왕조 오백년>에나 나올 얘기가 아닙니까?


      더 웃기는 부분은 이 사태를 기술함에 있어 주어와 목적어에서 자신만 쏙 빠져나가는 오여사의 기술입니다.  정말 그런 이유로 '애들 이모'가 아프다고 한다면 한 사람 더 엮여있는 셈이 아니겠어요? 바로 오여사 본인 말입니다. 쌍문 견씨 집안의 귀염둥이 개-견으로 제 의견을 이야기해 보라고 하신다면, 전 오말순 여사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견강부씨도 자기는 쏙 빼놓고 끼워 맞추려는 능구렁이 오여사가 못마땅했는지,

    - 그럴리가 있겠소만.

    하고 얼버무리고야 맙니다만, 그럼에도 오여사는 포기하지 아니하고,

    - 점쟁이가 돈 받고 한 말이라면 아주 허튼 소리는 아니잖아요. 한번 진상을 알아보는 게 좋겠어요.

    라고 선언합디다. 뭐가 그렇게도 신바람이 나는지 골프 모자를 던져 놓고 공책과 볼펜을 챙겨 들더니만 수사 반장 스타일의 트렌치 코트를 휘날리며 대문을 나서더군요. 진상을 알아본다는 게 점집에 직접 가보겠다는 얘기였던 겁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죠. '애들 누나(셋째 동서)'가 '애들 이모(둘째 동서)'를 해치우려고 벌인 일이라기엔 동기가 너무 약합니다. 유은지씨는 배강새 여사보다 여섯살이나 젊어요. 오말순 여사보다는 열일곱살이나 어리죠. 어엿한 직장을 가지고 있고 자립이 가능할만큼 돈도 벌죠. 젊음과 미모, 그리고 파워 홀더 - 쌍문 견씨 종손 견강부씨의 마음을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세월이 무기인데 무리하게 일을 벌일 이유가 없거니와, 혹여 공작에 나선다면 서열 3위가 아닌 서열 2위를 먼저 노려야 맞는거죠. 반면에 오말순 여사는 배강새 여사보다 열한살이나 많죠. 유은지씨보다는 열일곱살이나 많죠. 주름과 독기만 남았죠. 파워 홀더 마음의 일퍼센트도 차지하지 못한 형국이죠. 제가 보기엔 모든 동기를 갖추고 있습니다. (계속)


    시즌 9, 에피소드 107 (2008년 09월)

    TAG

    댓글 0

Designed by Tistory.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