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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7. 우리집 강아지 뽀삐 (5/6)
    낙농콩단/Season 9 (2008) 2018.11.13 11:44

      오말순 여사가 돌아온 것은 밤 여덟시가 넘은 이후였습니다. 오여사는 대문을 들어오기가 무섭게 장작을 모아 마당의 중앙에 쌓아 놓았죠. 캠프파이어라도 하려나? 저는 졸린 눈을 비벼가며 마당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가만히 상황 돌아가는 꼴을 지켜보았습니다. 오여사는 모닥불을 중심으로 사방에 부적을 붙였습니다. 부적 아래에는 각각 짚단 인형을 하나씩 세워 놓았고요. 또 부엌으로 부리나케 달려가 의자를 가져다 마당에 늘어 놓았습니다. 여섯 개. 쌍문 견씨 집안의 사람 머리 수만큼 입니다. 그런 다음엔 (어디서 났는지) 꽹가리를 들고 전원 집합을 지시했죠. 심지어 몸져 누워있는 배강새 여사까지 나오라고 말이에요. 배여사가 자리에서 끙끙거리며 잘 일어나지 못하자 오여사는 손수 부축하여 기어코 마땅까지 끌고 내려왔지요. 


      모두가 모이자 오여사는 의자 여섯개의 자리를 잡고 각자에게 알맞은 위치를 배분했는데, 스스로가 모두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심판의 자리를 차지했고 살짝 비껴있는 그 옆 자리는 쌍문 견씨 종손 견강부씨가 앉게 되었습니다. <참견하지 말고 잠자코 지켜 봐>라는 자리죠. 멀찌감치 일렬로 배열된 <잠자코 구경이나 해> 세 자리는 각각 아픈 배여사와 견강부씨 아들들이 나란히 앉았습니다. 마지막 한자리, 모두에게 둘러싸인 모닥불 바로 앞의 자리가 바로 애들 누나이자 셋째 동서, 유은지씨의 몫이었습니다. 막 퇴근하고 들어온 그녀는 얼떨결에 아무 것도 모르고 그 자리에 앉아야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모닥불은 바삭바삭 타오르며 회백색의 재를 여름 밤의 어둠 속으로 뿜어 올렸습니다.


    - 아니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

      견강부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오여사는 호통을 내지릅니다.

    - 네, 이 년! 네 죄는 네가 알렸다!

      꼭 무슨 사극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하긴 당연한 일이죠. 사극을 보고 흉내낸 것일테니.

    - 무…… 무슨 말씀이세요? 큰형님.

      쌍문 견씨 집안의 서열 4위 유은지씨가 펄쩍 뛰었습니다.

    - 네년이 둘째 동서를 저주해서 저리 변고가 생긴 게 아니냐.

    - 아니에요. 그런 일 없습니다. 제가 무슨 이유로 형님을 저주하겠어요?

    - 닥쳐라!

      정말 사극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 서슬에 기가 죽은 유은지씨는 닥치란다고 정말 닥치더군요.

    - 이게 뭐 하는 짓이오. 그만두고 다들 일어납시다.

      보다 못한 견강부씨가 중재에 나섰지만,

    - 입 다물고 앉지 못해요?

      바싹 독이 오른 오여사의 일갈에 한 마디에 꼬리를 내리고 주저 앉고야 말았답니다.


    - 점쟁이에게 물었어요. 만약 정말로 투기가 둘째 동서가 죽을 병에 걸린 원인이라면 어떻게 죄의 여부를 판가름해야 하겠느냐고 말이에요.

      오여사는 견강부씨를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습니다. 견강부씨는 어째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싶어하는 표정이었고요.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평소 때의 오여사라면 감히 저러지 못할텐데 말이에요. 이제껏 둘째 마누라와 셋째 마누라를 들이는 남편 견강부씨에게 한 마디도 못하고 있었잖아요. 분명 뭔가 우리가 모르는 은밀한 사건이 있어 둘의 관계가 빈대떡 뒤집어지듯 위 아래가 바뀐 것이 틀림없습니다. 

    - 그…… 그랬더니?

    - 집에 개를 키우느냐고 묻더군요.


      돌연 등골에 싸늘한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십년 묵은 개백정이 잘 벼린 날카로운 칼로 등짝을 살곰살곰 흩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아니, 도대체…… 갑자기 가만히 있는 저를 물고 늘어지는 저의가 무엇이란 말입니까?

    - 개? 개가 뭐? 뽀삐…… 얘기야?

    - 우리 있잖아요. 개. 그래서 있다고 했죠.

      오여사는 그 역겨운 이중 턱을 고고하게 치켜들고 절 내려다보았답니다. 오! 신이시여! 그러더니만 이렇게 말하고야 마는 것이었습니다.

    - 점쟁이가 흥미로운 사실을 일러주더군요. 투기의 죄를 개로 판별할 수 있단 거예요.

    - 개로? 우리 뽀삐가 어떻게?

      그러게? 정말 어떻게? 제가 무슨 수로 그런 걸 알아낼 수 있겠어요. 경찰견도 아니고 말이에요. 아무리 혈통이 좋아도 그렇죠. 그래도 주인님이 '우리 뽀삐'라고 불러 주셔서 한 시름 놓았어요. 제가 제일 듣고 싶어하는 말이랍니다. '뽀삐'라는 이름은 싫지만 '우리 뽀삐'라는 말은 들으면 마음이 놓여요.

    - 개는 잡귀를 막는 신성한 동물이니까요. 잘 들어봐요. 먼저 개를 마당 한 가운데 움직이지 못하도록 묶어놓고 입을 벌리는 거예요.

      오여사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하나 하나 숙련된 동작으로 선보여주더군요. 그 억세고 자비없는 손 아래 허공엔 아무 것도 없었지만, 혹시나 만약 제가 그 우악스러운 손에 잡힌다면…… 맙소사!

    - 그 다음엔?

    - 입을 다물지 못하도록 깔대기를 삽입하는 거죠.

      오여사는 어디서 났는지 아주 무식해보이는 플라스틱 깔대기를 뒷춤에서 꺼냈습니다.

    - 그래서?

    - 그리고는 이 약을 먹이는 거예요. 뽀삐 입에, 한 숟갈 씩.

    - 그게 뭔데?

    - 비상(砒霜)이요.

      뭔가에 얻어 맞은듯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 비…… 비상? 그거 독약이잖아. 그걸 어디서 났어?

    - 쓸떼없는 걸 궁금해 하진 말고요. 적서 아빠, 아주 간단해요. 셋째 동서한테 정말로 죄가 없으면 뽀삐는 살아날거예요.

    - 뽀삐가 죽으면?

    - 죄가 있는 거죠. 셋째 동서한테.

    - 무슨 죄?

    - 투기의 죄.

    - 그럼 뽀삐는?

    - 아마 일곱 구멍으로 피를 쏟고 죽겠죠. 죄 많은 셋째 동서 때문에…….

    - 억지잖아.

    - 억지 아니에요.

    - 억지야.

    - 그럼 내가 마시고 죽을께요. 젊은 년들 데리고 천년만년 호강하며 살아요.


      주인님은 오여사가 약병을 열지 못하도록 재빨리 팔을 잡았습니다.

    - 아니, 이거 봐. 임자. 애들 누나한테 무슨 죄가 있다고 그래. 지금이 이럴때야? 애들 이모가 아프잖아. 가뜩이나 집안이 어수선한데…….

    - 그래요, 형님. 제가 아픈 게 왜 막내동서 탓이겠어요.

      파리한 얼굴의 배여사마저 거들고 나섰습니다.

    - 반송장은 끼어들지마! 지금 네 년이 골골대서 집안에 이런 분란이 생긴거잖아!

    - 아니 임자, 왜 또 아픈 사람한테 그래? 애들 이모한테 무슨 잘못이 있다고.

      그 순간 오여사의 밉상 눈꼬리가 번쩍 치켜올라갔습니다.

    - 그러니까 내가 마시고 죽겠다니깐. 내가 죽으면 니네 잘 사는지 어디 두고보자. 내가 쌍문 견씨 집안의 귀신이 되어 밤마다 찾아올거야. 니년들 뼈를 갈고 살을 저며서 꿀떡꿀떡 마셔줄테다! 어디 두고봐라! 내가 그럴 수 있는지 없는지 말이다!

      견강부씨 아들들 - 견적서와 견출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 어허! 임자, 애들 듣는데서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해! (계속)


    시즌 9, 에피소드 107 (2008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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