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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7. 우리집 강아지 뽀삐 (6/6)
    낙농콩단/Season 9 (2008) 2018.11.13 23:00

      한바탕 난리굿 속에서 저는 슬금슬금 대문쪽으로 움직였습니다. 티가 나지 않도록, 상체는 그대로 두고, 시선 또한 여전히 그쪽을 주시하는 상태에서 다리 하나씩 번갈아 움직였지요. 


      당연하잖아요. 묽히지도 않은 비상을 먹여놓고 개 견이 죽으면 유죄요 개 견이 살으면 무죄라니요. 그건 무지의 시대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아닙니까? 마치 죄수의 다리에 돌을 묶어 물에 빠트린 다음 가라앉어 죽으면 무고한 사람이요 물 위로 떠오르면 죄인이라는 식이잖아요. 절벽에서 밀었을 때 떨어져 죽으면 사람이 아니요 살면 마녀라는 중세의 논리와 다를 게 뭐랍니까. 게다가 하려면 저희들끼리나 하지, 가만히 있는 엄한 저는 또 왜 물고 늘어진답니까? 이런 법이 세상천지에 어딨답니까? 개한테 맹독을 먹인다니요. 위키피디아를 뒤져봐도 그런 건 나오지 않을 겁니다. 


      역시 저의 천부적 예감이 맞았어요. 언젠간 저 마녀같은 오여사가 날 골로 보낼 계획을 세울 줄 알았고 언젠간 애들 이모와 애들 누나를 몰아낼 속셈일 줄도 알았어요. 그 두가지를 이처럼 멋지게 한 큐에 끝내버릴 줄이야 몰랐지만요. 아! 생각보다 머리가 비상해요. 정말 무서운 여잡니다. 전 도망칠 겁니다. 꽁지가 빠지도록 달아나는 건 뼈대있는 개-견으로 할 일은 아니지만 복수를 위해선 이 천한 목숨을 조금 더 부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슬프지만 별 수 있나요? 일단은 살아야죠. 살 겁니다. 그래서 복수할 겁니다. 저 마녀같은 오여사한테 이 수모를 천배 만배로 갚아줄 겁니다. 그래서…….


    - 어머, 뽀삐 어딜 내빼니?

      갑자기 억센 손이 제 목덜미를 잡아챘습니다. 언제 다가왔는지 오여삽니다. 눈 앞이 캄캄해지는 것이…… (엄마야! 날 살려주세요.) 컹컹 짖어보았습니다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오여사는 자기가 계획한 바를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널판지 위에 강제로 눕혀졌고 사지를 쇠사슬로 붂여 꼼짝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우리 주인님, 견강부씨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주인님은 안쓰러운 표정이었으나 나설 수는 없다는듯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습니다. 이럼 안되요. 이래선 안돼요. 제가 여지껏 쌍문 견씨 종가에 바친 충성과 의리를 생각해야죠. 역시 옛말이 맞아. 토사구팽이라고, 아쉬울 게 없어지면 인간이란 동물들은 정말…… 


      오여사는 제 주둥이를 벌리고 깔대기를 꽂았습니다. 무식하게 만들어진 플라스틱 깔대기를 무식하게 쑤셔넣은 덕분에 목구멍 안쪽이 세차게 긁혔지만 아프다고 소리조차 지르지 못했습니다. (안돼요! 안돼요! 당신들이 나한테 이러면 안돼요!) 버둥거렸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뭔가가 목 안으로 흘러들었습니다. 아아, 마치 숯불을 통째로 삼킨 느낌이었어요. 남은 기운을 다해 발버둥을 치자 오여사는,

    - 한 숟가락으로는 부족한가?

    라며 고개를 갸우뚱하더니만 한 숟가락을 더 덜어 깔대기에 넣었습니다. 오오, 가시덤불이 뱃속에서 춤추는 느낌이었습니다. 오여사의 무식함이란 도대체! 원래 비상은 너무도 독한 약이라서 누군가의 독살을 계획한 무리들조차도 조심에 조심을 기울여 사용하던 것이었습니다. 국이나 탕에 아주 조금씩만 섞어 표가 나지 않도록 서서히 죽인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에요. 그런 걸 딸기맛 감기약 '부루펜 시럽'처럼 넓은 스푼으로 마구 먹이는 건 도대체…….

    - 점쟁이가 몇 숟가락까지 먹여서 결과를 보면 된다고 그랬는데?

    - 그런 얘기까진 안 했어요.


      오여사는 또 한 숟가락을 덜어 넣었습니다. 기분이 오익우익에익 했습니다. 얼라블라일라 하니까요. 우에이에유에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팔다리가 수전증 환자처럼 파르르르 떨렸습니다. 이렇게 먹였는데도 아니 죽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겁니다. 지금 오여사는 애들 이모(둘째 동서)와 애들 누나(셋째 동서)를 일타삼피로 보내버릴 속셈인 겁니다. 


      속에 감각이 없어졌어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고요. 하지만 등짝이 축축한 걸 보니 뭔가가 밑으로 빠져나온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확인할 수도 없었지만 확인하고 싶지도 않았죠. 저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흘렀습니다. 무슨 눈물이었을까요? 서러움의? 분노의? 안타까움의? 참회의? 그러가나 말거나, 악마같은 오여사는 한숨을 푹 쉬며 약병 뚜껑을 다시 열었죠.

    - 아무래도…… 한 숟가락 더 먹여봐야겠는데.


      제 이름은 뽀삐입니다. 뼈대있는 가문의 양식있는 개-견이고요. 쌍문동에서 가장 존경과 신임을 받는 쌍문 견씨 집안의 사랑받는 개-견이었습니다. 위엄있는 개-견으로 태어나서 위엄있는 개-견으로 살다갑니다. 다음 세상에서는…… 개와 인간이 아닌 제 3의 존재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제 이름은 뽀삐입니다. '뽀삐'보다는 '건'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싶긴 했지만. (끝)


    시즌 9, 에피소드 107 (2008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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