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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0. 세번째 클론 (2/8)
    낙농콩단/Season 12 (2011) 2018.10.24 10:00

      트레이가 클론 3호들을 애뜻하게 여기는데는 사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 그는 클론 아이들이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저런 바보같긴! 하지만 우리는 이 사실을 이해해야한다. 트레이는 지금 혼자다. 고향에서 아주 멀리 멀리 떨어진 루마니아에서 일하는 중이다. 닥터 이시무라는 일본 사람이다. 닥터 이시무라의 영어는 형편없다. 두 사람 사이에서 중간에서 소통에 기름칠 해 줄 사람도 없다. 팀의 나머지 한 사람은 러시아인 약제 전문가 이고르 스미노로프로 나름 영어를 쓰기는 하는데 어느 지방인지도 모를 지역 방언에 심각하게 오염된 영어다. 고로 셋이 모이면 의사소통에 대재앙이 일어난다 (물론 결론은 언제나 바디 랭귀지다). 트레이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나, 말 못하는 클론 아이들을 대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두번째 이유는 닥터 이사무라의 실험에 사용되는 클론들은 사람으로치면 5살 여자아이에 해당하는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무렵의 여자아이들은 사랑스럽기 마련이다. 이 곳에 오기 전까지 트레이는 이런 실험 설계가 가능하리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가 알고 있는 클론 모델들이란 대개 우악스럽게 생긴 민머리 성인 남성들이었다. 대량 복제된 유전 형질을 받아 시험관에서 태어난 무개성의 존재들. 초점없는 눈동자와 무가치한 영혼을 지닌 개체들. 이처럼 어린 여자아이를 모델로 만든 클론은 태어나서 본 적이 없었다. 물론 클론 실험만으로도 여러 나라에서는 이미 사회적 논란거리다. 그런 마당에 어린 여자아이 클론을 만들어 실험에 사용하겠다는 발상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임에 분명했다. 하지만 여기는 루마니아의 중서부 트란실베니아다. 그것도 깊고 깊은 숲속의 고성이다. 세계의 상식과 세계의 도덕이 닿지 않는 곳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오직 신만이 아실 것이다.


      클론 3호들은 예뻤다. 다섯이 하나 처럼 예뻤다. 다섯 쌍둥이 인형 같았다. 발그스레한 뺨이 말도 못하게 사랑스러웠다. 클론 3호들은 작았다. 손도 작고 발도 작고 입도 코도 작았다. 그러나 눈만큼은, 눈만큼은 결코 작지만은 않게 느껴졌다. 그의 말을 빌자면, 뭔가 말하려는 듯한 눈이었다. 클론들은 말을 하지 못했다. 성대가 없이 태어나기, 아니 합성되어 만들어지기 때문이었다. 과거의 클론들은 감정이 없었다. 여기 오기 전까지 그가 알던 클론들 역시 감정이 없었다. 드러내고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다. 온순한 게 아니었다. 돌이나 쇠처럼 반응이 없었던 것이지. 그에 반해 어린 여자아이 클론들은 정말 온순하다. 감정도 있다. 다만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모를 뿐이다. 어리고, 성대가 없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허나 실험자가 그 감정을 읽어낼 수 있는 여지는 충분했다. 살짝 건드리기만해도 움찔 놀라 사육실의 구석으로 도망갈 때, 작고 가냘픈 몸을 한껏 움츠려 바들바들 떨고 있을 때, 콩알 같은 눈동자에 원망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눈빛이 서려올 때, 트레이는 마음이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사실 예전과 같이 마네킹처럼 보이는 클론들이 실험하기는 훨씬 편하고 좋았다. 지금은…… 아! 어찌 저 사랑스러운 천사들로 실험을 한단 말인가! 그 악명 높은 요제프 멩겔레라고 오더라도 함부로 바늘을 꽂지 못할것이다.


    *


      모두에게 보스가 있다. 트레이의 보스가 닥터 이시무라라면 닥터 이시무라의 보스는 쩨페쉬 백작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보스란 돈 주는 사람을 말한다. 쩨체쉬 백작이 닥터 이시무라에게 돈을 주는 이유는 백작의 딸 때문이다. 백작에게는 딸이 하나 있다. 클론 3호들과 마찬가지로 다섯살이라고 들었다. 그 아이가 몹쓸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남들처럼 좋은 병원을 찾아다니는 대신에 백작은 돈으로 전담 의사를 사서 선대로부터 내려온 자신의 고성으로 데려웠다 (향간에는 백작의 딸이 앓고 있는 병이 다소 특이한 것이어서 어느 병원도 선뜻 나서지 않아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백작은 고성의 지하실을 개조했다. 성탑도 개조했다. 별채도 개조했다. 지하실은 클론 사육실이 되었고 성탑은 닥터 이시무라의 연구실이 되었으며 별채는 부검실이 되었다. 닥터 이사무라는 백작의 딸과 똑같은 체형과 나이의 클론을 특별 주문한다. 한 번에 다섯 마리씩. 그래서 백작의 딸과 똑같은 희귀병의 발병을 유도하고 닥터 이고르 스미느로프가 직접 개발한 치료제를 시험하고 있다. 그리하여 트란실베니아 깊은 숲속의 고성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바깥 세상 사람들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세계의 상식과 세계의 도덕이 닿지 않는 곳에서.


      읍내에 흉흉한 소문이 돌게 하는 원인 중의 하나는 닥터 이시무라다. 마른 장작을 연상케하는 체구의 이 삐쩍마른 일본인 사내는 인상이 썩 좋지 않다. 소름 끼칠 정도로 홍조를 띄는 민머리, 두꺼운 뿔테 안경 뒤의 작고 음흉한 눈, 툭 튀어 나와 움직이는 턱관절의 조합은 호감을 주는 외모와는 거리가 멀다. 외모만큼이나 정 떨어지는 것은 이 남자의 이력이었다. 닥터 이시무라가 과거 벌였던 사건 사고들을 보면 미친 과학자이자 미친 의사, 혹은 미친 의사이자 미친 과학자라고 밖에는 해석이 되지 않는 일들이 많았다. 하나만 얻기도 쉽지 않은 '미친 의사'로의 명성과 '미친 과학자'로의 명성을 모두 가졌다는 점이 백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런 인간 밑에서 일하게 될 줄 알았다면 트레이는 이곳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계속)


    시즌 12, 에피소드 140 (201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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