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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0. 세번째 클론 (3/8)
    낙농콩단/Season 12 (2011) 2018.10.24 22:00

     사육실은 방 하나에 클론을 다섯 마리를 가두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다섯마리 이상 한 방에 넣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트레이는 하루에 세 번 그 방에 물과 식사를 넣어주었고, 여섯 번 청소를 해주었으며, 아홉 번 이상 밤낮없이 들여다보며 클론 아이들이 무사한지를 확인했다 (7번 사육실의 비밀번호는 그래서 369였다). 또한 일주일에 두 번 변기를 청소해주었다. 아무리 천사처럼 생긴 아이들이라고 하지만 대소변을 제대로 가려주길 바라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특히나 클론 아이들은 공장에서 바로 출하되었기 때문에 다섯살이어도 배변 훈련이 전혀 안된 상태였고, 그래서 종종 삽과 수레와 대걸레가 필요했다. 트레이는 기저귀 빨래도 했고 이불 빨래도 했다. 닥터 이시무라는 면 기저귀를 싫어했다. 아랫 사람 생각해서라도 가급적 일회용 기저귀 쓰면 얼마나 좋겠는가. 바깥 세상에는 하기스도 있고 팸퍼스도 있단 말이다. 허나 닥터 이시무라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비용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일 것이나 표면적인 이유는 정성이었다. 실험엔 정성이 필요하다는 뜻. 편한 길도 부러 어렵게 가는 정성. 


      “노 팜퍼스. 노 하기스. 익스파리먼트 니이즈 신서리티.”


      트레이가 기저귀 세탁 업무의 과중함을 호소할 때마다 닥터 이시무라가 강조하는 말이다. 끔찍하기 짝이 없는 영어 발음으로. 그래서 늘 트레이는 기저귀 빠는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무리 깨물어 주고 싶을만큼 귀여운 애들이라고 해도 똥 기저귀에서 냄새가 나지 않을리는 없다. 분명 먹인 건 우유와 빵 밖에 없는데 클론들의 신진 대사가 어떻게 다른 건지 악취가 말도 못했다. 더구나 그가 모르는 사이에 닥터 이시무라가 클론 아이들의 몸에 뭘 주사했는지도 사실 의문이었다. 미처 알지 못하는 유독물이나 그 부산물, 그리고 대사되는 과정에서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는 물질들이 죄다 그안에 섞여있을 거라 생각하면 적잖이 찝찝하기도 했다. 비닐 장갑을 끼우고 라텍스 장갑을 다시 끼우고 다시 고무장갑까지 끼웠어도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다. 기저귀를 모아 쇼핑 카트에 실었다. 어느 대형 쇼핑몰에서 훔쳐 온 것처럼 보이는 카트였다. 한쪽 바퀴가 불안정해 달칵달칵 소리가 났다. 똑같은 힘으로 밀면 항상 조금씩 오른쪽으로 꺾였다. 


      트레이는 세탁실로 향했다. 세탁실은 언제나 표백제 냄새로 진동을 했다. 머리가 새하얗게 포맷되는 느낌이었다. 집게를 들어 기저귀를 하나씩 세숫대야에 옮기고 물을 틀었다. 쏴아. 붉은 흙탕물이 쏟아졌다. 또 시작이군. 오래된 고성의 수도 시설은 형편없었다. 전기 시설만큼 형편없었다.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핏물처럼 보이는 흙탕물로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아야 했다.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기저귀를 주물렀다. 클론 아이들의 배설물이 물에 풀어지며 떠올랐다. 젖은 기저귀의 냄새는 고약했다. 마스크를 썼음에도 코가 떨어져 나가는 듯 했다. 하수구로 흘려보내고 다시 물을 받았다. 완전히 헹궈내야 해. 싫지만 어쩌겠어. 스피커에서 모차르트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D장조'가 흘러나왔다. 잡음이 심해 꼭 고장난 세탁기 소리 같았다. 클론 아이들의 정서 함양을 위해 사육실에 하루 열두 번 틀어지는 것이었다. 모차르트는 벌써 정각 두 시가 되었음을 의미했다. 여섯 시가 되면 닥터 이시무라가 보고를 원할 것이다. 사육실로 자주 내려오지 않는 닥터 이사무라는 항상 트레이를 향해 보고를 받았다. 시간이 별로 없었다. 마음을 정해야 했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축축한 계단을 올라갔다. 발 밑이 미끌거렸다. 고성의 지하에서는 언제나 습기가 뱀처럼 기어다녔다. 문득 뭔가가 지켜보는 느낌에 뒤를 돌아보았다. 등골이 서늘했다. 여기에 오고부터 유독 자주 그런 느낌을 받는 듯했다. 몸이 허해졌는데 자주 놀랐다. 발걸음이 빨라졌다. 횃불은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래 맞아. 두려움은 천천히 자라나는 법이다. 그리고 공포는, 느릿느릿하게 다가오는 법이다.


    *


      네 시가 되었다. 다시 모차르트가 흘러나왔다. 고성은 고요하여 섬뜩했다. 모차르트마저도 음울하게 들렸다. 어니 어쩌면 모르지. 모차르트 음악이 원래부터 그런 면을 지녔던 것인지도. 트란실베니아의 숲 속 한 가운데 위치한 이 낡고 묵은 성. 이 안에 살아 움직이는 자는 사람 다섯과 클론 아이들 밖에 없었다. 성의 주인인 쯔페쉬 백작, 그의 딸 (아직 이름을 몰랐다), 닥터 이시무라, 닥터 이고르 스미느로프, 그리고 트레이 자신. 


      트레이는 다시 지하실로 내려갔다. 두 시간에 한 번 꼴로 클론 아이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하루에 몇 번 확인해야 하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계약서에 적혀 있었을텐데 계약서를 읽고 서명한 것이 마치 백만년 전의 일처럼 느껴졌다. 사육실 복도는 좁고 어두웠다. 붉고 엉성한 파이프가 혈관처럼 지나갔고 군데군데 드러난 케이블은 흡사 괴물의 촉수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어울리지 않는 시멘트 바닥이 더더욱 차가웠다. 흙 바닥보다 냉기가 더 빠르게 올라오는 듯했다. 얕은 물을 걷는 것처럼 발목 근방이 찰랑거렸다. 벌집처럼 보이는 환기구 구멍에서 흘러나온 묵은 그림자가 불길하게 횃불을 흔들었다. 


      복도를 걸으며, 그는 생각했다. 백작의 딸에 대해. 밝혀지지 않은 병을 품고 사는 여섯 살 어린 아이에 대해. 트레이는 백작의 딸은 본 적이 없었다. 닥터 이시무라는 봤겠지. 어쩌면 닥터 이고르 시미느로프도. 그들이 하려는 일은 백작의 딸이 가진 병을 클론 아이들에게 똑같이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여러가지 약제를 시험해 무엇이 약이 되고 무엇이 독이 되는지를 알아보기 위함이다. 말하자면 클론 아이들은 임금의 식사를 미리 맛봐야 하는 시종 같은 존재였다. 아! 트레이는 그 날을 잊지 못했다. 그가 이곳에 오고 3일째였다. 클론 3호들에게 약물을 투여했던 날이다. 닥터 이시무라는 두꺼운 주사기를 들고 나타났다.

    - 테이크 오프 데얼 클로우즈.

      발음 참 거지 같네. 그는 조심조심 쑥스럽게 차례차례 클론 2호 아이들들의 빨간색 스웨터를 벗겼다. 명주실 같은 금발머리가 나풀거렸다. 우유 냄새가 났다. 기분 나쁜 우유 냄새가 아니다. 고소하고 사랑스러운 우유 냄새다. 너희는 정말 천사로구나. 닥터 이시무라는 황당하다는 듯 그를 타박했다.

    - 올! 올 테이크 오프! 팬츠 투!


      개 놈의 새끼. 트레이는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다시 클론을 하나씩 안아 바지를 벗겨서 내려놓았다. 기저귀 차림으로도 여전히 클론 아이들은 뒤뚱뒤뚱 천진하게 잘도 돌아다녔다. 닥터 이시무라는 이제 되었다는 듯 주사를 준비했다. 정체 모를 약물이 맺힌 주사바늘이 백열등 아래서 섬뜩하게 번쩍였다. 닥터 이시무라의 지시에 따라 트레이는 클론 아이들을 하나씨 안았다. 꽉 잡으라고 했다. 자세가 나오지 않았다. 클론 아이들도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좀처럼 얌전히 있지 않았다. 닥터 이시무라는 첫 번째 클론 3호의 팔에 주사바늘을 가져다대었다. (팔에 주사를 놓는데 어째서 바지까지 벗기라고 한거지?) 바늘은 스폰지처럼 부드러운 살을 파고들었다. 미끄럼틀을 타는 것처럼 양잿물 빛깔의 액체가 밀려 들어갔다.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졌다. 첫 번째 클론 3호의 초콜렛 같은 눈망울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클론들은 소리를 낼 수 없었다. 목을 울려 아픔을 토로할 수 없는 괴로움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순간 트레이는 그런 생각을 했다. ‘정말 지옥이라는 곳이 존재한다면 바로 여기가 아닐까?’ 순서는 같았다. 이 곳에서의 모든 실험이 그러한 것처럼, 반복, 반복, 반복, 그리고 끝없는 반복이었다. 두 번째 클론 2호도, 세 번째 클론 2호도, 네 번째 클론 2호도, 다섯 번째 클론 2호도. 다섯 마리의 클론 2호가, 똑같이 왕방울만한 눈에 서러움을 그렁그렁 담고 있는 풍경이 트레이의 머리를 뒤흔들어 놓았다. 마음이 무거웠고 또 아팠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바늘을 빼앗아 닥터 이시무라의 목을 찌르기라도 할 것인가? 아니면 앞을 막아서서 저 아이들 대신 자기에게 다섯 방 모두 놔달라고 소리칠 것인가? 다시 그 날로 돌아간다고 한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더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계속)


    시즌 12, 에피소드 140 (201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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