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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0. 세번째 클론 (4/8)
    낙농콩단/Season 12 (2011) 2018.10.25 10:00

      깜빡깜빡 발작하는 형광등이 예사롭지 않았다. 사실 형광등은 있으나 마나 한 것이었다. 전력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이 곳에서 당연한 일이었다. 허나 그렇다고 마냥 횃불에만 의존하는 것도 가능하지는 않은 일이었다. 아직도 뾰족한 수를 생각해낼 수 없었다. 여섯시가 되기 전이었지만 트레이는 한 번 더 사육실에 내려가 보기로 했다. 버드나무 바구니 안에 숨겨두었던 트로피카나 주스와 츄파춥스를 넣고 보자기로 덮었다. 닥터 이시무라가 알면 싫어할 일이다. 클론 3호 아이들을 예뻐하는 트레이는 닥터 이시무라 몰래 이런 식으로 애착을 드러내기도 했다. 몰래 먹을 것을 숨겨다 나눠주는 것은 물론, 인형이나 장난감을 가져다 넣어주기도 했다. 간혹 시내에 나갔다가 따뜻해보이는 베개나 침대보, 혹은 예쁜 아동복을 발견하면 어김없이 싣고 돌아오는 그였다. 이 또한 닥터 이시무라가 알았다간 크게 경을 치고 말 일이었다. 


      심지어 트레이는 클론 아이들에게 고기를 먹인 적도 있다. 햄버거 말이다. '고기를 먹이지 말아라.’ 닥터 이시무라가 첫날부터 신신당부한 규칙이었다. 인사도 제대로 나누기 전에 그 다짐부터 받아야 했다. 그러나 트레이가 보기엔 괜한 걱정 같았다. 클론 아이들은 고기를 먹을 수도 없었다. 씹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치아라고는 작고 불안하게 보이는 몇 개 뿐이다. 우유병 꼭지도 간신히 무는 아이들이 무슨 고기를 먹겠는가. ‘그럼 뭘 먹입니까?’ 닥터 이시무라는 우유나 많이 먹이라고 했다. 우유 말고는 빵이나 있으면 먹이라고 했다. 빵도 우유가 듬뿍 들어간 것만 먹이라고 했다. 트란실베니아 숲속 한 가운데서 매일 빵을 무슨 수로 구한단 말인가. 트레이는 직접 빵을 구웠다. 다만 항상 지시대로 우유만 들어간 빵을 만들지는 않았다. 남들 모르게 건포도나 블루베리, 해바라기씨, 혹은 젤리나 쿠키나 작은 초코칩을 넣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조금 더 애뜻한 마음이 되어 간식 시간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고는 했다. ‘어쩜 오물오물거리는 게 너무 귀여워.’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클론 아이들에게 햄버거를 먹였던 것은 의도하지 않았던 일이다. 점심시간이 빠듯했던 트레이가 사육실에서 먹던 것을 조금씩 떼어 나누어주었을 뿐이다. 미처 고기라는 인식도 하지 못했다. 먹이고 나서야 아차 싶은 마음에 주위를 돌아보았다. 한 번 먹였다고 뭐가 어떻게 되겠어? 클론 아이들에게 고기를 먹이면 안되는 이유는 여전히 미스테리였다. 한 번은 닥터 이시무라에게 물었더니 성장이 촉진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실험체가 너무 빨리 자라버리면 실험을 망친다는 것이다. 근거는 없는 이야기지만 아이 상태로 출하된 클론이 성인 상태로 출하된 클론보다 빨리 자란다는 소문은 들었다. 어떻게 얼마나 빨리 자라는 건기 궁금했다. 사람에게 일 년이 클론에게는 몇 년에 해당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건장한 성인 남성이었던 기존의 클론들에겐 그런 개념이 없었다. 대개 사람으로 치면 35세 정도의 신체조건을 유지하도록 디자인 되었으며 수명 또한 겨우 2년이었다. 


      닥터 이사무라의 설명을 듣고부터 트레이는 악몽을 꾸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반복되는 같은 꿈이었다. 꿈 속에서 그는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보라색으로, 또 우유색으로, 또 자주색으로 엷은 안개가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호수를. 안개 속에는 클론 3호가 있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정확하게 다섯 마리였다. 트레이는 그 아이들을 안아주었다. ‘여기서 뭣들 하고 있어. 삼촌, 아니 엉클이랑 같이 집으로 돌아가자.’ 순간 머리 위로 깃털을 흩뿌리며 검은 새떼가 지나갔고, 클론 3호들이 한 마리씩 성장하기 시작했다. 팔도 다리도 길어지고, 들어갈 데는 들어가고 나올 데는 나오고. 이제 내려다보는 것은 어엿한 숙녀가 된 다섯 마리의 클론 3호였다. 그 대목에서 항상 그는 소리를 지르면서 꿈에서 깼다.


    *


      여섯시를 오분 남기고서야 트레이는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오늘은 그냥 넘기는 거야.’ 닥터 이시무라는 항상 강조했다. 일 분 일 초가 아까우니 클론 상태에 대한 보고는 신속 정확히 해달라고. 작고 빨간 반점이 나타나면 바로 연락을 해달라고. 그러나 트레이는 하루를 벌어야 했다.그가 하루쯤 얼렁뚱땅 넘긴들 닥터 이시무라는 모를 것이다. 어차피 그 미친 의사 겸 미친 과학자는 지하 사육실에는 잘 내려오지 않았으니까. 하루만 막으면 되었다. 내일은 금요일. 오늘 목요일 오후 여섯 시에 보고를 하면 성질 급한 닥터 이시무라는 내일 아침 여덟 시에 클론 아이들에게 치료제를 넣어보려고 안달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토요일 자정이 되기 전에 클론 3호 실험은 끝을 보게 될 것이고 살아남는 아이들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금요일 오후 여섯 시에 보고를 하면 닥터 이시무라는 어쩔 수 없이 주말을 넘겨 다음 주 월요일 오전 여덟시에 치료제 투여 실험 준비를 지시할 것이다 (그 망할 놈이 자기 주말 근무에 엄격하다는 것은 불행 중 다행 아닌가!) 그러면 주말동안 시간을 벌 수 있다. 아무리 못해도 48시간을 벌 수 있다. 닥터 이고르 스미느로프만 잘 따돌리면 된다. 그 인간만 사육실을 기웃거리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충분히 준비를 해서 도망칠 수 있을 것이다. 트레이의 숨이 가빠졌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꽤 오랫동안 맛보지 못한 긴장감이었다. 떨리는 마음을 애써 태연히 억누르고 그는 사육실 바닥에 앉았다. 클론 아이들이 다가와서 그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그가 발라준 뽀송뽀송한 베이비 파우더 냄새가 코 끝에 아른거렸다. 서로 그의 무릎을 차지하려고 밀고 당기고 떼썼다. 그 모습이 몸서리치도록 귀여웠다. ‘어쩜 너희는 그렇게 사랑스럽니?’ 트레이는 클론을 한 마리씩 안아 이마에 뽀뽀를 해주었다. 이대로 시간을 멈출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트레이는 굳게 마음을 먹었다. ‘괜찮아. 겁먹지 마. 삼촌이 지켜줄께. 누구도 절대 너희에게 해꼬지 할 수는 없을거야.’ 


    그는 결연히 사육실을 나섰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자물쇠를 바꿔 달았다. 만약 일이 틀어져 누가 사육실쪽을 어슬렁거릴 경우를 대비해서다. 다시 모차르트가 흘러나왔다.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D장조. 여섯시라는 뜻이다. 바카르디를 한 잔 마시고 성탑을 올라갔다. 현기증이 났다. 똑똑, 두 번 문을 두드리고 닥터 이시무라의 방에 들어갔다. 닥터 이시무라는 인사도 하지 않았다. 붉은 반점이 나타났는지만 물었다. 그는 대답했다. 아직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닥터 이시무라는 알았다고 했다. 피곤하니 나가보라고 했다. 방문을 닫고 돌아나오는데 손에 땀이 흥건했다.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거야. 괜히 나 혼자 찔려서 이런 기분이 드는 거겠지.’ 종종 걸음으로 다시 계단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성탑에 이르는 나선형 돌계단은 섬뜩하리만큼 차가웠다. 신발을 신었음에도 얼음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너무 추워서 입김조차 단단히 얼어버렸다. 그의 짐작이 맞다면 이전 그룹의 클론 1호와 클론 2호는 그가 오기 전 실험에 사용되었다는 다섯살 클론 아이들은 아이들은 치료제 투여 실험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폐기되었던 것이 분명했다. 부검실에서 닥터 이시무라와 닥터 이고르 스미느로프가 하는 이야기를 엿들은 것이 있었다. 그들은 클론들을 해부하여 치료제가 왜 듣지 않고 클론들이 사망하였는지 원인을 찾으려고 했다. 끔찍한 이야기지만 그 작은 장기들도 하나 하나 적출하여 냉동 보관하였던 것으로 보였다. 만약 그가 어떤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면 클론 3호 아이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운명을 맞게 될 것이었다. 소름이 오싹 돋았다. 숨이 찼다. 걸음이 빨라졌다. 계단을 내려와 사무실로 들어갔다. 누가 따라오기라도 하는 듯 황급히 문을 걸어 잠갔다. 가쁘게 숨을 몰아 쉬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했다. 언제나 힘들다. 미친 과학자 밑에서 일하는 것은. (계속)


    시즌 12, 에피소드 140 (201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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