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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0. 세번째 클론 (5/8)
    낙농콩단/Season 12 (2011) 2018.10.25 22:00

      금요일. 트레이는 아침 일찍 일어났다. 동유럽의 낯선 태양이 미처 그의 방으로 쏟아져 들어오기도 전이었다. 토요일 새벽의 거사를 위해서는 준비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준비하지 않아도 될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준비해야만 했다. 모차르트가 울려퍼졌다. 아침 여섯 시라는 뜻이다. 서둘러 씻고 사육실로 내려갔다. 사육실 옆 창고를 열었다. 그곳에는 카트가 있었다. 그는 찬장을 뒤져 방수포를 찾아냈다. 그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 먼지를 털어내고 주름을 펴서 카트 바닥에 깔았다. 카트 양쪽 옆면도 막았다. 적당한 크기로 잘라 덮개도 만들었다. 그는 혼자 몸이 아니었다. 어린 아이 다섯을 데리고 트란실베니아의 울창한 숲을 빠져나가야 했다. 도구가 필요했다. 그가 평소 빨래 바구니로 사용하던 쇼핑 카트는 탁월한 해결책였다. 한쪽 바퀴가 시원찮기는 하지만 그 정도 크기면 클론 아이들을 태우고 식량과 생필품, 그리고 옷가지까지 챙길 수 있을 것이었다. 다시 모차르트가 흘러나왔다. 그 사이 두 시간이 지났다는 뜻이다. 


      아침 점검을 위해 사육실로 향했다. 낡은 지하실의 작은 틈에서 맑은지 탁한지 알 수 없는 물방울 하나가 떨어져 그의 이마를 적셨다. 문을 열었다. 닥터 이고르 스미느로프가 얼씬거렸던 흔적은 없었다. 얼씬거렸다고 해도 자물쇠가 바뀌어 있으니 열지 못했을 테지만 말이다. 안도의 한숨을 짧게 쉬고 트레이는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왔다. 클론 아이들을 하나씩 일으켜 깨워 씻겼다. 깜찍한 이마에서부터 발그스름한 볼, 그리고 갸날픈 목 구석구석까지 꼼꼼히 닦아주었다. 다음은 기저귀였다. 어김없이 전 날 밤에도 대소변을 못가린 아이들이 있었다. 적지 않은 양의 크리넥스와 물휴지와 수건과 걸례가 필요하였다. 오물을 모두 모아 빨래통에 담았다. 매일 반복해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 날만큼은 힘들지 않았다. 빨래통을 바깥에 내다놓고 보송보송한 기저귀를 채워주었다. ‘알아. 개운하지?’ 그는 클론 아이들의 눈에서 많은 걸 읽을 수 있었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아도 이미 많은 교감을 나누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아침이었다. 트레이는 클론 아이들을 하나씩 안아 우유를 먹여주었다. 그가 처음 이 곳에 왔을 때에 비하면 정말 능숙한 자세였다. 물티슈를 꺼내 하얗게 변한 개구장이들의 입술을 닦아주는 것도 있지 않았다. 뭐랄까, 마치 그는 기계처럼 움직였다. 어떤 작업을 하는 사이에도 동시에 그 다음 작업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시 모차르트가 나왔다. 벌써 열 시라는 뜻이었다. 배부르게 먹여놓자 클론 아이들은 움직임이 둔해졌다. 모차르트도 소용없는 듯했다. 뭐 모차르트 효과? 웃기고 있네. 트레이는 클론 아이들의 이마에 차례차례 뽀뽀해주고 사육실을 빠져나왔다. 시간이 없었다. 더 빠르고 신속하게 움직여야만 했다. 몸이 생각을 따라가질 못했다. 아! 도와줄 사람이 한 명만 있었다면! 그는 주방으로 향했다. 빵을 만들어야 했다. 얼마나 필요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최소한 시내에 도착할 때까지는 버텨야 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에 시내는 안전한 길이 아니었다. 일단 루마니아 밖으로 빠져나가야 한다고 보았을 때 시내는 가장 가까운 국경지대와 반대쪽에 위치했다. 일단 헝가리로 가야해. 그리고 나서 오스트리아로 도망쳐야지. 오스트리아라니! 그는 이 목숨을 건 탈주가 마치 로버트 와이즈의 1965년작 고전 '사운드 오브 뮤직'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이스트, 설탕, 소금, 분유를 섞고 계란을 풀어 반죽하였다. 냉장고를 열었다. 어제 배달된 우유 5리터가 있었다. 우유는 위험하다. 우유는 상한다. 아무리 서늘한 지역이라고 해도, 아무리 밤에 출발한다고는 해도, 냉장 보관 않은 상태에서 기한을 장담하기 어렵다. 행여냐 상한 우유를 먹여 숲 한 가운데서 배탈이라도 난다면 그것도 큰 일이다. 성공적인 탈출의 첫번째 조건은 일단 아프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냥 아이들을 데리고 도망치기도 아려운데 아픈 아이들을 데리고 도망치는 건 곱절로 어려울 수 밖에 없었다. 식료품 창고를 열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다면 일주일 후에도 끄덕없을 먹을 거리가 필요했다. 이를테면 통조림 같은 것 말이다. 창고에는 통조림이 많았다. 물론 클론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닥터 이시무라와 닥터 이고르 수미느로프를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쉬운대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모차르트다. 열두 시. 트레이는 다시 기계적으로 사육실에 돌아가 클론 아이들의 기저귀를 체크하고, 모닝빵을 스무 개 더 꺼내놓고, 우유를 먹여주었다. 그리고 점심에 한 알씩 먹이는 비타민을 수면제(로제럼)로 바꿔치기 했다. 밤에 도망치려면 낮부터 좀 재워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조그만 아이들이라고는 하더라도 졸음에 취해서 허우적거리는 아이들을 다섯이나 데리고 도망칠 재간은 없었다. 물론 깨어있으면 깨어있는대로 위험이 따르기 마련일 것이나, 그래도 그 편이 차라리 감수할 만한 것인지도 몰랐다. 다시 주방으로 돌아온 트레이는 발효가 끝난 반죽을 철판에 팬닝하여 오븐에 집어넣었다. 빵 굽기에 이력이 난 그였음에도 이렇게 많은 양을 한 번에 굽는 건 처음이었다. 결국 이 계획의 관건은 닥터 이고르 스미느로프의 눈에 띄지 않고 거사를 진행시킬 수 있느냐에 달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닥터 이시무라는 클론 아이들이 있는 사육실에 거의 내려오지 않았으니 (지금 키우는 아이들이 클론 2호인지 3호인지도 기억 못할 수도 있다) 변수가 될 수 있는 건 닥터 이고르 스미느로프 뿐이었다. 닥터 이고르 스미느로프는 트레이와 조금 다른 차원에서 클론 아이들을 애뜻하게 생각했다. 좋지 않은 방향으로 말이다. 언젠가 닥터 이시무라 모르게 닥터 이고르 스미느로프가 사육실에 내려온 적이 있었는데 클론 아이들의 빨간색 스웨터와 카키색 팬츠, 그리고 기저귀까지 벗기게 했다. 처음에 트레이는 그것이 실험체의 변화를 직접 확인하고 싶은 실험자의 열망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트레이가 러시아인 약제과학자의 눈에서 꿈에 볼까 두려운 것을 발견하면서 그 생각은 대단히 잘못된 것으로 판명이 나고 말았다. 욕망. 실험과는 관계 없는. 그 날 이후 트레이는 닥터 이고르 스미느로프를 볼 때마다 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기회만 된다면 반드시 때려 눕히겠다고 벼르지 마지 않는 중이었다.


      다시 모차르트.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D장조. 두 시였다. 오늘 트레이는 세탁실에 들리지 않았다. 대신 그는 오물과 기저귀, 수건과 걸레가 모두 빨래통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신선하다기보단 차가운 공기가 그의 폐로 밀려들어왔다. 그 맛은 자연적이라기보단 원시적이었다. 그는 도망칠 계획을 세운 방향과 반대로 걸어가며 삼십 분 간격으로 기저귀를 하나씩 던졌다. 너무 작위적인가 싶어 방법을 바꿨다. 한 번 기저귀를 던졌으면 그 다음에는 수건이나 걸레를 던졌다. 닥터 이시무라와 닥터 이고르 스미느로프가 뒤늦게 추격에 나설 경우를 대비한 일종의 혼란계였다. 시계 바늘이 네 시를 가리킬 때까지 그는 한 방향으로 걸었다. 네 시에 클론 아이들을 확인해야 했지만 한 번쯤은 괜찮을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수면제 때문에 누가 업어가도 모르게 잠들어 있을 것이 뻔했다. 네 시부터는 흔적을 남기지 않고 거꾸로 걸어 고성으로 돌아왔다. 여섯 시가 되기 전에 도착하기 위해 조금 서둘러야만 했다. 여섯 시는 성탑에 올라가 닥터 이시무라에게 보고를 해야할 시간이다. 클론 아이들에게 붉은 반점이 생겼다고 하면 닥터 이시무라는 다음 주 월요일 아침 여덟시에 실험을 시작하자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 그는 토요일 새벽에 클론 아이들을 데리고 도주할 것이고 월요일 아침까지 48시간 이상을 벌 수가 있게 된다. (계속)


    시즌 12, 에피소드 140 (201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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