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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0. 세번째 클론 (6/8)
    낙농콩단/Season 12 (2011) 2018.10.26 10:00

      성탑에 오를 땐 언제나 현기증이 났다. 똑똑, 두 번 문을 두드리고 닥터 이시무라의 방에 들어갔다. 닥터 이시무라는 인사도 하지 않았다. 붉은 반점이 나타났는지만 물었다. 그는 대답했다. 오늘 아침에 발견했다고. 닥터 이시무라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정말이냐고 몇 번을 되물었다. 개 놈의 새끼. 천사같은 어린 것들에게 병을 유도하고서 천만금을 얻은 남자처럼 좋아하는 꼴이라니. 트레이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의외의 변수는 여기서 생겼다. 닥터 이시무라가 내일 아침, 그러니까 토요일 오전 8시에 치료제를 넣자고 준비를 지시한 것이다. 트레이는 다시 한 번 현기증을 느꼈다. 더듬거리며 내일은 토요일이라고 말했다. 닥터 이시무라는 건성을 대꾸했다. “쏘 왓?” 입이 바짝 말라왔다. 전혀 계산에 넣지 못했던 일이다. 저 미친 의사 겸 미친 과학자 놈은 한번도 자기 주말 시간을 챙기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까.


      계획이 틀어졌다. 최소 48시간을 벌고 시작하기도 이젠 어려워졌다. 성탑에서 내려오는 트레이의 걸음은 불안했다. 몇 번을 발을 잘 못 디뎌 넘어질 뻔했다. 초조함의 공기가 나선 모양의 계단을 따라 흘렀다. 뼈가 저릴 정도로 추웠는데도 이상하게 식은 땀이 났다. 어쩌지? 지금은 저녁 여섯 시. 내일 아침 여덟 시까지는 겨우 열네시간이 남았다. 지하실로 뛰어내려가 카트를 꺼냈다. 밀면서 뛰었다. 그의 발이 닿는 곳마다 고였던 물이 튀어 올랐다. 카트의 한 쪽 바퀴가 사시나무 떨듯 흔들거렸으나 신경쓰지 않았다. 복도 굽이 굽이마다 급커브를 반복했다. 시간이 없었다. 당장 출발해야만 했다. 조금이라도 필요하겠다 싶은 것들은 닥치는대로 집어 넣었다. 필요가 있을지 없을지 판단이 서지 않는 것도 무조건 다 집어 넣었다. 기저귀. 얼마나 필요할지는 아무도 모로는 일이다. 그는 60매 들이 묶음을 두 개 던져 넣었다. 그 이상 넣기엔 공간이 부족했다. 옷가지. 오래 생각할 필요 있나. 있는대로 다 가져가야지. 꼭 가져간 옷을 다 입히진 못해도 추위를 견디는데 도움이 될 것이었다. 다음으로는 주방으로 달려갔다. 식료품 창고를 열어 통조림을 찾았다. 과일이 들어간 것으로 다섯 개를 골라 카트에 담았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부족할 것 같아 다섯 개를 더 담았다. 육포를 찾았다. 볼 것 없이 카트에 담았다. 아! 육포도 고기는 고기지. 절대 클론 아이들에게 고기를 먹여서는 안된다던 닥터 이시무라의 당부가 생각났다. 하지만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아침에 만들어 두었던 5일분의 빵을 봉지째 던져넣었다. 맞다! 우유! 냉장고를 열고 5리터 들이 우유를 카트에 넣었다. 역시 던져넣다시피 했다. 만약 그 자리에 누군가 있어 트레이의 모습을 보았다면 신경질적인 주부가 장을 보는 그림을 떠올렸을 것이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사육실 앞에 도착했다. 바꿔치기한 자물쇠를 열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안은 조용했다. 모두 자기 침대에서 깊이 잠들어 있는 중이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모두 있다. 다행이다. 트레이는 잠든 클론 아이들을 하나씩 안아 카트에 넣었다. 고소한 우유 냄새가 코를 찔렀다. 사랑스러워. 금실처럼 나풀거리는 머리칼은 너무 부드러워 자꾸만 쓰다듬고 싶어졌다. 그는 다시 한 번 소리 내어 다짐하였다. 엉클이 꼭 너희들을 지켜줄께. 무슨 일이 있더라도! 기계적이라고 해도 좋을 반응이었다. ‘준비 완료!’ 트레이는 힘차게 카트를 밀어보았다. 생각보다 무거웠다. 하자가 있는 한 쪽 바퀴가 심하게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쉽지 않겠어.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다시 밀어보았다. 닥치는대로 담았던 오만가지 것들이 그 안에서 달그락거리며 새로운 위치를 찾았다. 클론 아이들도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자기들끼리 엉키고 부딪히며 꺄르를 웃음 소리를 내었다. 조금만 참아주렴, 얘들아. 엉클이 꼭 너희들을 구해줄께.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트레이의 수정된 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실험 전 날 밤이 되면 닥터 이시무라와 닥터 이고르 스미느로프는 약제실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다음 아침에 실험을 시작한다면 새벽 내내 약제실에 있었다. 더구나 갑자기 내일 아침에 실험 계획이 잡혔으니 오늘 밤 늦게부터 그 안에 처박혀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들이 만든 치료약은 합성을 시작한 후 여섯 시간까지만 유효했다. 일단 공기에 노출된 후 체내에 주입되지 않은 상태에서 여섯 시간이 지나면 활성을 잃어버리게 되어 있었다. 아침 여덟 시에 주사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새벽 두 시 이후에 작업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른 저녁부터 한숨 자 둘 확률도 있다. 그들은 실험 10분 전에 트레이에게 전화를 할 것이다. 실험 5분 전에서야 사육실에 내려와 볼 것이다. 대강 아침 여덟 시는 되어야 트레이와 클론 3호 아이들이 사라졌음을 알 수 있을거라는 뜻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아침 여덟 시까지 최대 열다섯 시간을 벌 수 있게 된다. 트레이는 생각했다. 그만한 시간이라면 어디까지 도망칠 수 있을까? 분명 주말 내내를 벌 수 있었던 최초 계획의 48시간에 비하면 턱없이 촉박한 시간이었다. 닥터 이고르 스미느로프의 머리통을 부수고 떠나지 못하는 것도 안타까웠지만 지금은 이것 저것 따질 여유가 없었다. 일단 저지르기로 마음 먹었으면 뒤돌아보지 말고 강공으로 밀어붙여야 했다. 아침에 만들어두었던 방수포 덮개로 카트 위를 덮었다. 혹시라도 찬 바람이 들어갈까봐 구석구석 꼼꼼하게 막아주었고 바람에 날려 떨어지지 않도록 네 군데 구멍을 뚤어 노끈으로 쇼핑카트 살에 묶었다. (계속)


    시즌 12, 에피소드 140 (201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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