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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0. 세번째 클론 (7/8)
    낙농콩단/Season 12 (2011) 2018.10.26 22:00

      숲은 밤공기가 찼다. 한겨울처럼 맹렬히 춥다기보단 서서히 젖어들어가 떨게 만드는, 그런 면이 있었다. 쇼핑카트는 덜컹거렸다. 불안한 한쪽 바퀴가 내심 마음에 걸렸다. 카트를 덮은 진청색 방수포 아래에서는 클론 아이들이 달그락거렸다. 클론 3호. 똑같이 생긴 다섯 쌍둥이 여자 아이들. 트란실베니아의 깊고 어두운 숲은 친절히 길을 일러주지 않았고 트레이는 길을 몰랐다. 단지 고성으로부터 어느 방향이 헝가리쪽 국경인지만 알고 있었을 뿐이다. 이곳에 온 이후로 그는 숲 밖으로 세 번 밖에 나가보지 못했다. 세 번 모두 브라쇼브인지 피테슈티인지 하는 도시에 가서 장을 봐왔는데 그나마도 닥터 이고르 스미느로프의 감시 하에서였다. 그 망할 러시아인 과학자는 그의 눈을 가린 상태로 삼십여분을 걷게 했고 어디선가 트럭에 태워 한 시간 정도 달린 후 (정확하지 않다) 시장에 도착한 이후에나 눈가리개를 풀어주었다. 만약을 대비해 고성으로 돌아가는 길이나 알려달라고 그가 물었을 때, 닥터 이고르 스미느로프는 능글맞게 웃으며 씻지도 않고 사과를 덥썩 씹어먹었다. 그리고는 서툰 영어로 엿이나 먹으라고 대꾸했다. 그러니 트레이라고 숲을 빠져나가는 길을 알리가 없는 것이다.


      언덕에 이르러 트레이는 다시금 고성을 돌아보았다. 마치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이라곤 살지 않았던 것 같은 느낌에 소름이 돋았다. 그럼에도 한편으로 저 높은 곳에 뚫려진 커다란 창, 지금 이 깊은 밤 유일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저 차갑고 높은 고성의 그 창은, 불현듯 묘하고 묘한 의외의 예감을 그에게 심어주었다. 닥터 이시무라의 방이 아니다. 실험실도 아니다. 트레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위치의 방이다. 백작의 딸.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건만 트레이는 그 아이를 진심으로 동정했다. 그 아이 때문에 희생되도록 운명지워진 클론 아이들을 생각하면 물론 화도 났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백작의 딸은 사람이다. 지금 그가 데리고 도망치고 있는 클론 아이들은, 어쨌든 클론이다. 클론의 살은 고분자로 직조된 가짜 살이고 클론의 피는 적혈구 혼합 용액을 바탕으로 합성된 가짜 피다. 마리 당 110불이라고 들었다. 수요만 있다면 얼마든지 생산 가능하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 그가 하고 있는 일은 사람의 생명 대신에 클론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기도 했다.


      세 시간을 쉬지 않고 숲을 달렸다. 그러고보니 트레이는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일했었다. 클론 3호 아이들에게 수면제를 먹여 재웠었지만 정작 자신은 5분도 눈을 붙이지 못했던 것이다. 피로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쉴 수 없었다. 내일 아침 여덟시가 되기 전까지 되도록 멀리까지 가야했다. 트레이는 살며서 방수포를 들추어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렇게 흔들리는 와중에서도 클론 아이들은 새근새근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오프 로드 레이싱의 와중에 카트 안이 많이 덜컹거렸을텐데. 기저귀 묶음과 모닝빵, 통조림, 육포, 5리터 들이 우유병, 개어 놓지 않은 옷가지…… 저 아수라장 안에서도 천사처럼 잠들 수 있다니. 그는 문득 클론 아이들 이마에 뽀뽀를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은 굿나잇 키스도 하지 못했잖아.’ 그러나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날은 춥고 그는 이미 지쳐 있었으며 남은 여정에 대한 부담도 컸다. 다시 한 시간을 더 걸었다. 길이 험하고 어두웠다. 잘 보이지 않았다. 눅눅한 수풀이 그의 다리를 휘감았다. 눈치없는 나뭇가지가 그를 찔렀다. 적막한 어둠은 이미 그의 마음 깊은 곳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진작부터 반항의 기미를 보이던 카트 한 쪽의 바퀴는 계속 말썽이었다. 때로는 너무 뻑뻑했고 때로는 너무 헐거웠다. 항상 그가 원하는 것보다 심하게 꺾였다. 쇼핑 카트를 밀면서 나아가기에는 더더욱 그랬다. 여기는 거대한 쇼핑몰의 아케이드가 아니다. 쇼핑 카트를 밀고 다니라고 만든 길도 아니고 심지어 사람 걸으라고 만든 길도 아니다. 이따금 발 밑이 무너져 내렸다. 어느 한 순간도 평탄한 길이 없었다. 몇 번이고 경사진 아래쪽으로 카트가 밀려내려가 십 년을 감수해야 했다. 중력에 저항하느라 영쪽 어깨가 뻐근하게 아파왔다. 매번마다 힘을 제대로 받치지 못해 무릎도 시큰거렸다. 그러는 사이에 길도 잃어버렸다. 애초에 잘 알지도 못하고 출발한 길이기는 했지만 이제는 그나마도 한 방향으로 일관되게 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지구는 둥그니까, 서쪽으로만 계속 걸어가다보면, 헝가리 국경이 나오겠지, 라고 생각했다니. 정말 멍청하지 않은가. 그러고도 클론 아이들을 안고 보드라운 뺨에 뽀뽀하며 ‘너희들을 꼭 구해줄께'라며 몇 번이고 다짐했다니!


      개울가에 이르러 트레이는 멈추었다. 드물게 평탄했고 드물게 하늘이 트여있는 곳이었다. 카트가 굴러가지 않도록 넓고 단단한 돌을 바퀴 앞에 받쳐 넣었다. 달빛에 비친 개울물이 반짝거렸다. 손을 씻고 대강 얼굴을 씻었다. 허리춤에 차고있던 물통을 꺼내 목을 축였다. 한번쯤 클론 아이들 상태를 봐줄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보통은 한밤중에까지 확인하지는 않았다. 그냥 잘 자고 있겠지, 하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대개는 정말, 그냥 잘 자고 있다. 오늘은 좀 특별하다. 낮잠을 다섯시간이나 재우기도 했고, 안온한 사육실이 아니라 울창한 숲 한 가운데에 있는 중이다. 출하되어 내내 온도와 습도가 적절히 조절되고 있는 공간에서만 살아온 클론 아이들이 야생의 거친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을지도 신경을 써야만 했다. 방수포와 카트를 묶어두었던 한쪽 끈을 풀렀다. 다른 한쪽 끈도 풀렀다. 방수포를 걷었다. 평평한 곳을 골라 돌멩이를 골라내고 바닥에 깔았다. 캠핑이라도 온 기분이었다. 클론 아이들은 반쯤 깬 상태였다. 달빛이나마 안으로 쏟아지자 몸을 뒤척였다. 두 마리는 눈을 비비며 일어나 앉았다. 하품도 했다. ‘어쩌면 밤새 조용히 재우기는 무리였는지도 모르지.’ 아이들을 쓰다듬으려다가 트레이는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발견했다. 고약한 냄새가 올라왔다. 방수포로 깔아놓은 쇼핑 카트의 바닥이 축축했다. 저런, 오줌이다. 방수포여서, 바깥으로 새어나가지 않고 안에서 고였다. 뜯어진 봉지의 모닝빵은 모두 버려야 했다. 일부러 챙겨왔던 옷도 다 젖었다. 따로 챙겨온 기저귀도 아래쪽에 쌓여있던 건 축축했다. 큰일이었다. ‘그러니까 하기스나 팸퍼스를 쓰자니깐.’ 그는 닥터 이시무라를 원망했다. 


      트레이는 서둘러 짐을 빼내고 카트 바닥을 닦았다. 그 과정에서 나머지 클론 아이들도 잠을 깼다. 얘들아 좀 비켜봐. 뒤뚱거리는 폼이 심상치 않았다. 한 마리를 안아 땅바닥에 깔아놓은 방수포에 눕혔다. 느낌이 묵직한 게 아니나 다를까, 카고 바지를 벗기고 기저귀를 풀러보니 내용물이 묵직했다. 만약을 대비해 하루 종일 배부르게 먹여놓았더니 참 결과가 정직하기도 하지. 그는 바지 뒷주머니에서 라텍스 장갑을 꺼냈다. 평소 같았으면 그 위에 비닐 장갑도 끼우고 고무 장갑도 끼우고, 몇 겹을 끼웠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상황이다. 서둘러 일을 진행했다. 비닐 봉지 하나에 헌 기저귀를 집어 넣었다. 배설물을 닦은 물휴지도 집어넣었다. 베이비 파우더를 바르고 엉덩이를 두 번 두들겨 주었다. 곧이어 능숙하게 새 기저귀를 꺼내어 채워주었고 다시 바지를 입혀서 다시 번쩍 안아서 쇼핑 카트에 올려 주었다. 자, 다음. 두 번째 클론 3호의 기저귀를 같은 방식으로 갈아주었다. 그렇게 총 다섯 번을 반복했다. 아주 정교하게 설계된 기계라고 하더라도 그만큼 이 일을 잘해내지는 못할 것이다.


      헌 기저귀와 오물, 그리고 사용한 라텍스 장갑을 담은 봉지를 단단히 묶어 쇼핑 카트 아래쪽에 매달았다. 아무데나 버리고 갈 수는 없었다. 닥터 이시무라와 닥터 이고르 스미느로프의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 반대쪽 숲에 미끼를 뿌려놓았으니 이쪽으로는 흔적을 남겨선 안되었다. 더구나 야생동물이 많은 곳이다. 특히 이 숲은 유럽 최대의 불곰 서식지 가운데 하나다. 냄새 풍기며 돌아다니는 것도 좋지 않겠지만 가는 길마다 생리현상의 증거를 아무데나 뿌리고 다니는 것도 추천할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어서 트레이는 새 기저귀 묶음 중에서 젖은 것과 젖지 않은 것을 분리했다. 적당히 젖은 것은 방수포 바닥에 깔았고 (또 오줌이 새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으니!) 많이 젖은 것은 개울말에 간단히 빨아 따로 비닐봉지 하나에 모았다. 앞으로 어떻게든 쓸 일이 생길지 누가 알겠는가. 다행히 수마를 입지 않아 바르고 보송보송한 새 기저귀들은 바닥이 아니라 통조림으로 층을 만들어 그 위에 두꺼운 이동용 골덴 바지 몇 개를 개켜놓고 그 위로 쌓아놓았다. 클론 한 마리가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우유를 가리켰다. 트레이는 다시 우유 먹이기 프로그램에 들어갔다. 다섯 마리의 클론 아이들을 하나씩 안아서 먹이고 다시 내려놓았다. 지칠대로 지친 탓인지 평소보다 아이들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기저귀 갈아줄 때에도 이렇게 무거웠었나? 클론 아이들의 이마에 뽀뽀를 해주었다. 생각만큼 순조롭지는 않단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 하지만 걱정하지마. 엉클이 반드시 너희를 데리고 이 숲을 빠져나갈테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를 말똥말똥 쳐다보는 클론 아이들의 표정이 알아들은 것 같기도 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곱고 가느다란 금발이 그의 손 위에서 물결처럼 찰랑거렸다. 일단 여길 빠져나가면 예쁘게 빗어줘야 할 것이다. 깜찍하게 갈래 머리로 땋아줄 수도 있을 것이다. 휴, 그나저나.


    너희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계속)


    시즌 12, 에피소드 140 (201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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