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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0. 세번째 클론 (8/8)
    낙농콩단/Season 12 (2011) 2018.10.27 10:00

      트레이는 외로웠다. 길은 멀고 험했고 그에게는 의지할 곳이 필요했다. 오직 의무감만이 그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었다. 방수포로 카트를 단단히 덮고 다시 카트 손잡이를 힘주어 잡았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북극성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북극성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마음을 굳게 먹고 서쪽으로 카트를 밀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한 방향으로만 전진하리라. 한층 짙어진 숲의 어둠이 그의 마음을 가렸다. 한층 깊어진 숲의 추위가 그의 몸을 떨게 했다. 여전히 길은 잃은 상태였다. 카트 바퀴는 불쾌하게 덜컹거렸고 그에 박자를 맞추어 나뭇잎이 바삭거렸다. 울창한 숲 높은 곳에서부터 휘돌아 내려온 바람이 늑대의 울음소리를 내었다. 그래도 그는 앞으로 전진했다. 정말로 불곰이 나타났을 때까지.


      불곰을 만나고 트레이가 처음 한 일은 뒤돌아 도망치는 것이었다. 황급히 쇼핑 카트를 돌렸고 뒤돌아보지 않고 밀었다. 카트의 크기와 무게를 생각하면 상당히 빠른 속도였다. 크고 작은 나무들이 바람처럼 스쳐갔다. 정신이 혼미했다. 그렇다고 쇼핑 카트를 밀고 뛰는 사람이 곰보다 빠를 수야 없을 것이다. 크고 작은 긁힘과 찔림 끝에 드디어 오른쪽 어깨가 찢어지는 고통이 느껴졌다. 얼마나 아팠는지 그 이후로는 모든 물리적 충격이 간지럽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쉬지 않고 뛰었다. 충분히 뛰었다고 생각했을 때 문제의 바퀴가 드디어 사단을 냈다. 찹쌀떡처럼 뭉그러졌다가 총알처럼 튀어나갔다. 균형을 잃은 카트는 곡예 묘기를 하는 스턴트 카라도 되는 것처럼 기울여진 채로 앞으로 나아갔고 굵고 오래된 나무에 부딪히며 뒤집어졌다. 트레이는 십 분쯤 지난 후에 일어났다. 옷이 식은땀으로 젖어있었고 바지 아래가 축축하기도 했다. 창피한 일이다. 하기스나 팸퍼스가 필요한 건 클론 아이들만이 아니었군. 쓰게 웃으면서 그는 상처를 살펴보았다. 베이고 긁히고 찔린 상처가 온 몸 곳곳에 가득했다. 오른쪽 어깨를 제외하면 곰에게 당했다기보단 질주의 와중에 숲의 여러가지 장애물과 스치면서 생긴 상처같았다. 당장 그 자리에서 상처를 어찌할 도리는 없었다. 클론 아이들이 괜찮을지를 먼저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방수포를 묶은 끈을 풀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의외로 아이들은 멀쩡했다. 조금 헬쓱해진 감은 있었지만 귀엽고 앙증맞은 얼굴 그대로였다. 아마도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로 밤 길에서 긴장 상태로 몇 시간을 보내서 그런 거겠지. 다만 다섯 마리가 옹기종기 웅크리고 있는 카트 안은 좁아보였다. 출발할 때는 그 오만가지로 가득 찬 속에서도 좁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는데 말이다. 트레이는 클론 아이 하나를 안으려고 하다가 망설였다. 오른쪽 어깨가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능숙하고 안전하게 아이를 안아줄 자신이 없었다. 그는 바닥에 주저 앉았다. 어쨌든 다 무사했으니 다행이지. 그리고 허기를 느꼈다. 자신도 배가 고플 수 있음을 드디어 알게 된 것이다. 


      그는 카트 안에서 통조림을 찾아내었다. 그러나 통조림에는 따개 필요했다. 젠장. 그런 기본적인 확인도 하지 않다니. 다시 카트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의 손이 오고갈 때마다 클론 아이들은 반대 방향으로 피해 움직이는 바람에 무게가 한 쪽으로 실려 카트가 기우뚱했다. 서로 부딪히고는 꺄르르 웃었다. 나름의 놀이인 것 같았다. 드디어 육포를 찾았다. 이미 뜯어진 상태였다. 개본 부위가 들쭉날쭉한 것이 이빨로 물어 뜯은 것 같았다. 언제 뜯어졌지? 설마 이 말괄량이들이? 하지만 싶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일단 그는 커다란 육포 조각을 꺼내어 입에 넣고 씹었다. 뭔가 영양분이 있는 것 같은 것이 목구멍을 넘어가니 그제야 살 것 같았다. 


      클론 3호 아이 하나가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어깨를 가리켰다.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괜찮아. 얘야. 보기보다 안 아파.’ 클론 아이는 계속 그의 팔을 잡아 당겼다. 안아 달라는 뜻 같았다. 팔을 뻗어 들어올려주려다 깜짝 놀랐다. 저 혼자 알아서 카트 밖으로 나오려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설마! 방수포를 바닥에 깔고 클론 아이를 잡아서 그 위에 눕혀 놓았다. 어깨가 떨어져 나갈 것처럼 아팠다. 그래서 그런지 누워서 버둥거리는 클론 아이를 혼자 힘으로 통제할 수가 없었다. ‘얘야, 평소처럼 좀 얌전히 있으렴.’ 클론 아이들은 너무 커졌다 (혹은 그가 작아졌거나). 클론 아이들은 힘이 너무 세졌다 (혹은 그가 약해졌거나). 


    비타민? 비타민을 먹이지 않은지 하루가 지났다.

    두 시간마다 듣던 모차르트? '모차르트 효과'가 정말 있는 거란 말이야?

    고기? 육포 봉지가 뜯어져 있었다. 얘들이 좀 뜯어먹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설마 그렇다고?

    우유? 이런 상황치고는 충분히 먹였잖아!


      뭔가 아주 쉽고 간명한 해답이 있을 것 같으면서도 생각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어느새 다섯 마리의 클론 3호 아이들이 모두 카트 밖으로 나왔다. 들어 안아 밖으로 꺼내 준 것은 하나였으니 넷은 제 발로 나왔다는 이야기였다. 클론 아이들은 트레이를 둘러쌌고 뼈가 부셔져 피와 살이 드러난 오른쪽 어깨를 잘게 뜯어먹기 시작했다. 어깨 한 곳에 다섯 마리가 매달리기는 조금 무리지. 왼쪽 목과 배에 새로이 신선한 상처가 만들어졌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작고 연약하게만 보였던 클론 아이들의 치아이건만 이제는 적어도 트레이의 살을 뜯어내기엔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그는 보았다. 얕게 깔린 보랏빛 안개를. 깃털을 뿌리며 저 높이로 날아가는 검은 새떼를. 그 순간 트레이가 느꼈던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하지가 않다. 만족, 연민, 증오, 사랑? 어쩌면 그 모든 것이 반죽된 느낌이었는지도 모른다. 감정이란 빵과는 달라서 그 재료가 무엇인지 분석하기가 쉽지가 않았다. 빵처럼 레서피만 안다고 조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너희들 그거 아니?

    꿈에도 색깔이 있다는 걸.

    어느 순간 사라지기 시작했는데 그게 언제부턴지 모르겠어.  


    *


      일요일 오후 13시 40분. 닥터 이시무라와 닥터 이고르 스미느로프는 트레이의 사체를 찾아내었다. 

    - 세번째 클론도 실패인 것 같지? 

    - 그렇군요.

      트레이가 알고 있던 것과는 달리, 그들 사이의 의사소통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 어쩌자고 저렇게 마음이 여리게 만들어졌을까?

    - 그러게나 말입니다.

    - 다음 모델에서는 어디를 고쳐야지 이 문제가 해결될까요?

    - 모르겠어. 일단 이걸 좀 치우자고. 냄새가 지독하군.

      그들은 트레이가 가지고 왔던 카트를 발견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된 트레이의 몸을 바디백에 구겨넣고 그 안에 던져 넣었다. 짜증이 났던지 닥터 이시무라는 카트를 신경질적으로 걷어찼다.

    - 그나저나 이 꼬맹이들은 어디 갔을까요?

    - 모르지. 어떻게든 잡아와야지.

    - 그런데 닥터 이시무라. 다시 생각해봐야지 않겠습니까? 클론을 세뇌시키는 것 말입니다.

    - 말도 안되는 소리. 귀여운 여자아이라고 꽁깍지를 씌워 놓아야 수시로 들어가서 밥도 먹이고 배설물도 치워주는 거지. 솔직히 말했다간 무섭다고 사육실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을껄. 

    - 하긴 그건 그렇죠. 저만 해도 혼자 들어가려면 오금이 저리는데.

    - 게다가 클론 놈들에게 우리가 실제 뭘로 실험하는지를 알려주면 그것도 골치 아파.

    - 어디 도망가서 폭로하기라도 하면 큰일이죠. 유럽 의회에서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사안이니까요. 

    - 그래 네번째 클론이 도착하기 전에 한 번 같이 고민을 해보세.

      닥터 이시무라와 닥터 이고르 스미느로프는 걸음을 옮겼다. 트레이의 바디백이 담긴 카트에 밀고. 한 쪽 바퀴가 없는 카트는 4분의 3박자로 균형을 잃었다. 오 분쯤 걸었을까. 갑자기 닥터 이고르 스미느로프가 탄성을 질렀다.

    - 어! 저기 있습니다! 닥터 이시무라. 우리 침팬지들이 저기 있어요. 다섯 마리 전부요! (끝)


    시즌 12, 에피소드 140 (2011년 03월)

    Inspired By The Works of Philip K. D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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