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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농콩단/Season 14 (2013) 2018.11.01 22:00

      그러니까 벌써 열두 번째 시험이다.


      칼 A. 채플린 (Carl A. Chaplin) 중위은 그 시험에 어떤 문제가 나올지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지난 일 년 동안 중위는 열두 번이나 같은 문제로 시험을 보아왔다. 문제는 잘 바뀌지 않았다. 그 사이 출제 장교는 열두 번이나 바뀌었지만 시험 문제만큼은 항상 그대로였다. 그럼에도 중위는 열두 번째 똑같은 문제를 만난 열두 번째 시험에도 가뿐하게 합격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열한 번째 시험 때도 그랬고 열 번째 시험 때도 그랬던 것 같다.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중위에게는 심각한 암기력 문제가 있었다. 남달리 심약한 그는, '압박을 받으며 뭔가를 머릿 속에 입력하고 더 큰 압박을 받으며 다시 고스란히 출력해야 하는 상황'에 항상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는 했다. 물론 글쓰는 속도가 느렸던 탓에 남들이 두세 문장을 쓰는 사이 그는 채 한 문장도 다 적지 못하기 일쑤라는 점도 문제긴 했다. 돌이켜보면 학창시절 그의 성적이 ‘별 볼 일 없다’ 외에 다른 표현을 쓰기 어려울 수준이었던 것 역시 그런 원인에서 비롯된 것이었을테다.


      굳이 두 번째 이유를 찾자면 문제의 시험을 대하는 그의 심리 상태도 원인이었을 것이다. 그는 이 시험을 퍽, 무척, 대단히, 끔찍히 싫어했다. 내용상 그가 알고 있는 상식과는 배치되어 거슬리는 부분도 있었다. 어쩌면 그런 반감이 알게 모르게 무의식 중에 기억력에 영향을 미쳐 낙제의 영광으로 그를 이끌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시험은 에이레네섬에 주둔 중인 치카디 공수부대의 낙하산 대원들이 비행 및 낙하의 자격을 얻기 위해 통과해야하는 일종의 안전 교육이었다. 채플린 중위는 낙하산 부대원이 아니었고 그런 비슷한 훈련조차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는 군종신부였다. 향후 만약에라도 공수부대원으로 활동할 예정이 없는 자는 시험장에 그 하나 밖에 없었다. 군종신부가 왜 비행 및 낙하 안전 필기 시험을 보고 있는지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질 법도 했지만 실상 의문을 갖는 이도 없었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공수부대원들이 채플린 중위가 자기들과 같은 낙하산 대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혹시 정말 그런 걸까? 혹시 내가 군종 신부로 가장한 공수부대원은 아닐까?’ 


      심약한 중위는 심각하게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던져보기도 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결론은 ‘그럴리가 없다’라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군종 신부일 뿐만이 아니라 심각한 고소공포증 환자로, 육군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아 멀고 먼 에이레네 섬의 채플린 부대로 쫓겨오게 된 처지였기 때문이다. 그의 서류를 다루었던 행정관들이나 그의 서류에 서명했던 높으신 분들이 치카디 부대가 공군 소속이라는 사실을 알긴 했는지도 의문이었다. 고소공포증이 있어 육군에서 쫓겨난 남자를 공군으로 보내버리다니! 우연이라기에는 무례하고 장난이라기엔 고약한 일 아닌가.


      중위는 군종신부로 에이레네 섬에 왔지만 그가 첫 일 년 동안 한 일은 두 가지 뿐이었다. 안전 교육을 받고 필기 시험에 떨어진 다음 재교육을 받고 다시 시험을 치는 것. 물론 그는 재시험에도 떨어졌다. 필기 시험에 두 번 떨어지면 공수부대원으로 비행하거나 낙하할 수가 없게 되기 때문에 그는 용케 낙하산 임무를 면피하고 고소공포증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었다. 중위에게는 군종신부로의 보직이 엄연히 있었지만 누구도 그걸 기억해주는 것 같지 않았다. 매년 부대에서는 군종장교 모집 공고를 만들어 본국으로 전송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계속)


    시즌 14, 에피소드 175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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