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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농콩단/Season 14 (2013) 2018.11.02 22:00

      하사가 제대로 눈치챈 것이 하나 있기는 했다. 중위가 비행 및 낙하 안전 교육을 통과하려는 열정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중위의 입장에서는 그 의도적인 낙제가 생존을 위한 발악이었지만 말이다). 


      그런 열망을 가진 자가 중위만은 아니었다. 모든 전쟁이 그렇듯, 처음에는 이념이나 가치가 본능을 압도했다. 허나 어떤 성스러운 전쟁도 (설령 그런 것이 있다손 치더라도!) 십몇 년쯤 계속되다보면 무게 중심이 제 자리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이미 전 전선에 걸쳐서 모든 병사가 도주 혹은 제대를 꿈꿨다. 고의적으로 생명에 지장이 없을만큼의 부상을 당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았다. 본국에서는 징집을 피하기 위한 온갖 편법이 난무했고 그 편법을 색출해내기 위해 나라에서 가장 똑똑한 인력들이 투입되는 낭비가 행해졌다. 가장 용감무쌍하다는 공수부대원조차 삶의 열망에 압도당했다고 하더라도 부끄러울 일은 아니었다. 실제 치카디 부대의 비행 및 낙하 안전 교육의 결시율은 44 퍼센트, 낙제율도 44 퍼센트에 이르렀다. 안전을 위해 만들어진 다음과 같은 조항 때문이었다.


    [22-22 안전 교육에 관한 공통 규정] 매 달 한 번 시행되는 안전 교육을 통과하지 못하는 자는 임무를 수행하기에 안전하지 않으므로 한 달 동안 공수 부대 작전에 투입되어서는 안된다.


      처음 치카디 부대에 왔을 때 그는 당번병에게 이런 질문을 했었다.

    - 똑같은 문제가 복사되어 나오는 필기 시험을 한 달에 한 번씩 다시 치는 이유가 뭔가?

    - 부대원들이 안전에 대해 무심해지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리마인드하게 하려는 목적입니다.


      안전이라니! 얼마나 훌륭한 목표인가! 하루에도 수십기가 격추되고, 수백명의 파일럿이 허공에서 산화되고, 수천명의 병사들이 피로 땅을 적시는 마당에. 안전한 출격, 안전한 비행, 안전한 귀환보다 그들이 더 바라는 것이 어디 있겠느냔 말이다.


    - 안전 수칙을 달달 외우는 게 적의 십자 포화를 비껴가는데 얼마나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나?

    - 예? 중위님?

    - 아니 그냥 뭐랄까…. 낙하산이나 글라이더를 타고 들어가 적의 후방 및 거점을 타격하겠다는, 아주 안전하지 않은 목적으로 만들어진 부대가 수칙을 외운다고 더 안전해질 방법이나 있을까 싶어서…….

      어린 티가 채 얼굴에 그대로 남아있는 당번병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중위님.


      미안한 이야기지만 전사자들은 모두 안전 교육 합격자이기도 했다. 만약 그들이 안전 교육을 통과하지 못했다면 임무에 투입되지 못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적진 상공을 비행하거나 적진 위로 낙하할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적진 한 가운데서 고립될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적의 포위망 안에 낑겨서 바퀴벌레처럼 눌려 죽는 일도 없었겠지.


      반면 제시 W. 서전트 하사와 같은 자들은 매 달 어김없이 열정적으로 비행 및 낙하 안전 시험에 응시했고 우수한 성적(같은 문제에 기계적으로 같은 답을 적어내는 것을 과연 우수하다 표현할 수 있을까?)으로 통과했다. 신기한 것은 하사가 단 한 번도 실전 임무에 투입된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군인 이전에 신앙인으로 그런 생각을 해선 안되겠지만, 솔직히 중위는 제발 좀 하사가 적진 한 가운데에 던져져서 특유의 화와 분노를 아군이 아닌 적에게 좀 쏟아부었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 그 자는 임무에 투입되어선 안돼. 왜냐하면 미친 놈이기 때문이지.

      고바야시 마루 군의관의 말에 중위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

    - 미쳤다고요? 그걸 어떻게 압니까?

    - 낙하산을 타고 들어가 적의 후방 거점을 타격하겠다지 않나. 미치지 않고서야 누가 그런 짓을 하겠나?

      군의관은 껄껄 웃었고 중위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 미치지 않은 공수부대원은 없는 줄 알았는데요.

    - 하사는 조금 특이하지. 첫째로 치카디 부대에서 그 짓에 투입되지 못해 안달하는 자는 하사 밖에 없고, 둘째로 자기도 자기가 미쳤다고 생각하거든.

    - 만약 그 자가 미쳤다고 칩시다. 그럼 집으로 돌려보내야 하는 것 아닙니까?

    - 그건 안되네. 안된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이지.


      군의관이 언급한 것은 다음 조향이었다.


    [44-44 제대에 관한 공통규정] 자신이 미쳤단 사실을 아는 미치광이는 정말 미치광이가 아니므로 미쳤단 이유로 제대시켜서는 안된다.


    - 그러니까 자기가 미쳤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제대시키면 안되고, 그래서 7년씩 저렇게 방치하고 있단 말이군요.

    - 뭐 말하자면 그런 셈이지.

      군의관은 더 없이 태평한 표정으로 얼음잔에 담긴 위스키를 홀짝거렸다. 

    - 정말 그렇다고 한다면 그냥 미친 척하고 작전에 투입시키면 안되는 겁니까? 정말 하고 싶은 모양이던데.

    - 이보게. 난 군의관이지 어떤 권한도 없어. 더구나 듣자하니 높으신 분들은 그런 미친 자를 극도로 위험한 임무에 투입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아. 서로 자기가 책임을 지고 싶지 않은 데다가 거기에도 또 다른 관련 조항이 있거든.

    - 또 다른 조항이라고요? 도대체 치카디 부대에는 몇 개나 되는 조항(Catch)이 있는 겁니까?

    - 나도 잘 모르겠네. 한 백개쯤? 연대장인 커널 대령님이 조항이나 규정이나 편람이나 양식을 따위를 만드는 걸 엄청나게 좋아한다네. 옛날에 수도사관학교장일 때도 그랬다지. 4년 동안 중도 탈락한 생도가 한 명도 없었는데, 그게 다 대령님의 새로운 지침 때문이었다는 거야.


    [졸업에 관한 공통규정] 졸업 이수 학점을 다 채우지 못한 생도는 자퇴할 수 없다.


    - 그럼 저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 조금 마음을 편히 갖는 게 좋지 않을까? 자네 종교는 있나? 종교 활동이나 해보면 어떻겠어?


      군종 장교에게 종교가 있냐고 묻다니! 


      중위는 뭐라 대꾸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부대에는 말문 막히게 하는 일들이 상식 이상으로 많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고소공포증이 있어 낙하산 부대로 발령 받게 된 남자라든지, 위험한 임무에 적극적이어서 위험한 작전마다 배제되는 남자라든지, 미쳤기 때문에 미쳤단 이유로 제대할 수 없는 남자라든지, 사제에게 종교 활동을 권하는 남자라든지. (계속)


    시즌 14, 에피소드 175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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