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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농콩단/Season 14 (2013) 2018.11.04 11:29

      며칠 뒤 페티 오핑턴 중사는 정말로 공수부대의 임무에 투입되었다. 파일럿이었던 에이 에이는 거의 시속 200 킬로미터에 육박하는 속도로 적진 상공을 낙하하는 중사의 모습이 앞선 세 번의 임무와 다름 없이 늠름했다고 회고했다. 중사가 소속된 분대는 이번에도 적의 거점에 물리적 타격을 입히는 데는 성공했고, 아군의 지원이 이루어질 시점까지 버텨내는 데는 실패했다. 치카디 부대의 대부분은 이번에도 중사 혼자 살아 돌아올 것으로 기대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이번만큼은 예상이 빗나가 중사를 제외한 나머지 부대원들만 살아 돌아왔다. 채플린 중위는 가엾은 중사를 위해 기도했고, 미카엘란지 비비안난지 하는 이름 모를 가엾은 여인을 위해 기도했고, 마지막으로 가장 가없은 자기 자신을 위해 기도를 했다.


    *


      치카티 부대에서 가장 높고 빛나는 계급장을 가진 남자인 연대장 로널드 A. 커널 (Ronald A. Connell)대령에게 특별한 점이 한가지 있다면, 대령의 실제 얼굴을 본 이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일 것이었다. 부대 안의 누구도 연대장이 백발인지 흑발인지 금발인지, 키가 큰지 작은지 적당한지, 몸매가 날씬한지 뚱뚱한지 볼품 없는지, 검은 눈동자를 가졌는지 푸른 눈동자를 가졌는지 갈색 눈동자를 가졌는지, 사팔뜨기인지 들창코인지 짝귀인지, 알고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분명 이상한 일임에도 치카디 부대의 누구도 그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기를 꺼려했는데, 이유인 즉 연대 안에서 유일하게 독수리를 달고 있는 남자에 대해 감히 가타부타 말을 꺼내기가 여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그렇게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음으로 하여 치카디 부대의 연대장 로널드 A. 커널 대령은 자신의 무존재를 존재케 할 수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공식 채널로든 비공식 채널로든 커널 대령의 존재 에 대해 의문을 가진 첫 번째 남자는 채플린 중위였다. 그는 군종 장교라는 자신의 정체성 문제를 조속히 해결함으로써 비행 및 낙하 훈련을 받거나 가까운 미래에 비행 및 낙하하게 되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베일에 싸인 연대장을 찾아 나서는 위험하고도 비밀스러운 모험을 감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가 마주한 것은 대령을 목격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많아도 정말 대령을 자기가 봤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기가 막힌 현실 뿐이었다. 분명 연대장과 얼굴을 비비고 살았을 연대 행정관들조차 결단코 ‘그 분’을 실제로 본 일은 없다며 학을 떼는 대목에선 급기야 바닥에 주저 않아 울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한술 더 떠서 연대장 공식 서류에 대리 서명을 한다고 알려진 리터넌트 대위라는 자의 정체 또한 찾을 수가 없었다. 부대 안에는 계급과 비슷한 이름을 가진 군인이 많았지만 '리터넌트'라는 이름을 가진 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필경 누군가가 내세운 조악하고 성의없는 가명, 뭐 그런 것이 아닐까 싶긴 한데……. 하여간 이거 참 돌겠군! 서전트 서전트(하사)에 메이져 메이어 메이져(소령)에 이젠 리터넌트 리터넌트(대위)라니!


      울며 겨자먹기로 채플린 중위는 커널 대령 대신에 대령의 당번병을 찾아나섬으로써 우회적으로 대령의 존재와 정체, 그리고 동선 및 거처에 접근해 들어가고자 하였는데, 알고 보니 대령의 당번병 또한 어윈 이등병이었다. 메이져 메이어 소령의 그 어리고 앳된 당번병 말이다. 소령의 당번병 이름도 어윈이고 대령의 당번병 이름도 어원이라기에 어째 느낌이 조금 이상하다 싶더니만, 알고 보니 정말로 두 어윈이 같은 어윈일 줄이야.

    - 또 병사라고? 아니, 도대체 이 부대 안엔 당번병이 병사 하난가?


      그 질문에 어린, 어윈 이등병은 씨익 웃으며 대꾸했다.

    - 그런 셈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일단 신병이 들어와야 당번병을 나누어 맡던지 제가 빠지던지 할텐데, 저희 부대에 신병이 들어오지 않은지는 꽤 오래되었으니까요.

    - 나 원 참, 갈수록 태산이군. 이런 전시에 그러기도 힘들텐데 말이야.

    - 모릅니다. 누구라도 신병으로 들어와야 이유가 뭔지 물어볼텐데…… 아무도 들어오지 않으니 도통 원인이 뭔지 모르겠네요.

    - 예전에 자네는 연대장님을 본 적이 없다 했었지. 그러니 연대장의 당번병조차 본 적이 없는 셈이군. 연대장님을.

    - 그렇습니다. 일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한 번도 연대장님 얼굴을 뵌 적이 없습니다.

    - 리터넌트 대위라는 분이 공식적인 서류 대부분을 연대장 대리로 서명한다고 하던데 혹시 그 분이 누군지는 아나?

    - 예. 그게 사실…… 제가 리터넌트 대위님의 당번병이기도 합니다.

    - 하나님 맙소사? 또? 병사가 부대 장교들 모두의 당번병이라도 된단 말인가?

    - 뭐, 말하자면 그런 셈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어윈은 수줍게 머리를 긁적거렸다.


    - 내 생각엔 가명인것 같아. 왜냐하면 이 부대의 누구도 그런 이름을 가지진 않았거든. 자넨 혹시 누군지 만나봤나?

    - 실은…… 이미 중위님도 만나셨습니다. 고바야시 마루 군의관님이 리터넌트 대위입니다.

      이 도대체 무슨……. 중위는 자기도 모르게 뒷목을 잡았다.


    - 왜 군의관이 베일 속의 대위로 비밀스럽게 행세한다는 건가? 무슨 이유로?

    - 글쎄요. 잘은 모르지만 제가 언뜻 듣기로는 이렇습니다. 연대장님과 부연대장님의 임무 수행이 불가하시니 적당한 계급의 누군가를 내세워야 했다고…….

    - 누구든 있었을 게 아냐. 다음 서열에 해당하는 분이 되는 문제를 어째서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게다가 왜 군의관이?

    - 만약 누구 한 사람이 나서면 권력을 차지한 것처럼 보일테고, 그렇담 필경 싸움이 날테니까요. 하지만 가공의 인물을 내세우면 그런 문제가 없어 편리하죠. 존재하지 않는 인물과 싸울래야 싸울 수가 없을테니까요.

    - 맙소사.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지?

      어윈은 기합이 잔뜩 들어간 차렷자세로 소리를 질렀다. '아닙니다! 중위님!'라고.


    - 휴……. 그렇다고 치자고. 그럼 혹시, 그러니까 혹시라도 연대장님까지 가공의 인물일 가능성은 없겠나?

      어윈은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 천만에요. 연대장님이 가공의 인물이라면 무슨 수로 연대가 돌아가겠어요?

      덥고 찐득거리는 날씨에 목덜미가 축축해졌다.


    - 아무튼 좋네. 그렇다고 치세. 그럼 실제로 만났을 가능성이 있을 만한 사람은 누가 있을까? 분명 어딘가에 계실 연대장님을.

    - 부연대장님입니다. 이 막사 안에서 주무시고 계시는.

    - 메이어 소령님? 기억이나 하실 수 있겠는가? 뭐랄까…… 소령님에게는 ‘그 문제’가 있지 않으신가?

      아무래도 노망이나 치매보다는 ‘그 문제’라는 표현이 완곡해 보였다.

    - 맞습니다. 그래서 최근 5년 내에 만난 기억은 못하실 것 같습니다.

    - 그럼 그 전에 만난 사람들 얼굴은 기억을 하시려나?

    - 아마도 하실겁니다. 그 이전 기억에 대해서는 젊은 사람들보다도 맑고 또렷하고 명확하시거든요.

      어린 친구의 입에서 젊은 사람들이란 표현이 나오니 어쩐지 조금 머쓱한 기분이 들었다.


    - 좋네. 좋아. 한 번 해보자고. 그렇다면 대령님과 소령님이 언제부터 교류가 있으셨나?

    - 제가 알기로는 두 분이 알고 지내신지 5.5년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중위는 솜털이 보송보송한 당번병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 뭐? 5.5년? 자네 농담하는 거지?

    - 아닙니다. 중위님! 정로말 5.5년입니다. 5년하고도 6개월 정도 된다고 들었습니다.

    - 그렇담 어쩌란 말인가? 5년이 넘었으니 어차피 기억도 못하시겠구만.

    - 그래도 시도는 해보셔야죠. 연대장님을 굳이 만나셔야 한다면요. 지금으로서는 소령님의 기억력이 유일한 단서일 겁니다.

      어째 이 어린애에게 농락당하는 느낌이야. 중위는 그런 생각을 했다. (계속)


    시즌 14, 에피소드 175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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