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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농콩단/Season 14 (2013) 2018.11.05 13:09

      중위는 몽타주 화가를 수소문했다. 바보같은 짓처럼 생각되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그는 비행 및 낙하 훈련을 실제로 받고 전장에 던져지기 전에 자신이 군종 신부이자 극심한 고소공포증 환자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윈 이등병의 말처럼 소령의 해면 덩어리 전두엽이 그에게 남은 유일한 단서이기도 했다. 어찌어찌 몽타주 화가는 불러올 수 있었다. 관건은 소령의 ‘그 문제’로 5분마다 흐름이 끊어지는 상황에서 어떻게 작업을 마칠 수가 있겠냐는 부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 무슨 일인가? 그 전에 자넨 누군가? 그 전에 여긴 어딘가? 당번병!

    - 무슨 일인가? 그 전에 자넨 나를 그리나? 그 전에 너를 그리나? 당번병!

    - 무슨 일인가? 그 전에 자넨 누군가? 그 전에 난 또 누군가? 당번병!


      소령은 5분에 한 번 꼴로 발작을 일으키며 당번병을 찾았다. 어윈이 백 번 이상 막사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나온 다음에야 그림은 가까스로 완성이 되었다. 그리고 그 찬란한 결과물 앞에 중위는 할말을 잃었다.

    - 빌어먹을, 이 얼굴은…….

      어윈 이등병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 존 웨인이로군요.


    *

     

      군의관 고바야시 마루 (Kobayashi Maru) 대위에게는 세 가지 특별한 점이 있었다. 첫째, 앞서 채플린 중위가 지적한대로 그 남자는 정보통 중의 정보통이었다. 아니, 정보통의 수준을 넘어 실상 부대 내 모든 정보가 고바야시 마루를 거쳐 유통되고 있었다. 둘째, 그 남자는 부대 내 실세로 권한도 막강했다. 이는 물론 '정보가 곧 권력'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치카디 부대의 특수한 상황 - 즉, 연대장이 베일에 싸인 남자 혹은 존 웨인일 가능성이 있고 부연대장은 치매 늙은이 혹은 노망난 늙은이이라는 상황 - 때문이기도 했다. 셋째, 그 남자는 부대에 꼭 필요한 존재이자 어딘가 모르게 껄끄러운 존재였다. 꼭 필요한 존재인 이유는 독일-이탈리아 동맹군과 대적하는 최전선에서 그 남자가 군의관의 역할을 맡고 있었기 때문이었고, 반면 껄끄러운 느낌이 드는 이유는 그 남자가 일본계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고바야시 마루 대위를 경계하는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이런 의문을 제기하고는 했다.  

    - 우리 연합군의 적이 누구지?

    - 나치 히틀러와 무솔리니, 그리고 일본 놈들이지!

    - 옳지. 그런 마당에 연합군 부대의 군의관이 일본계라는 사실에 안심해도 좋단 말인가?

    - 절대! 안심해도 안 좋지!

    - 그럼 우린 어찌해야 하는가?

    - 눈에 불을 켜고 놈을 주시해야지!


      이러한 수많은 의혹과 불신의 눈초리에도 불구하고 고바야시 마루 군의관은 전혀 개의치 않았는데, ‘지들이 못 믿겠으면 어쩔 건데?’ 라는 식의 두둑한 배짱 덕분이었다. 전쟁통에는 모든 것이 부족하기 마련이고 특히 기술있는 사람들은 더 많이 부족했다. 전쟁 전에는 군의관이 다섯 명 편성되어 있던 치카디 부대이지만 지금 남은 건 단 한 사람 밖에 없었다. 가장 가까운 아군 부대는 20 킬로미터는 족히 떨어져 있었고 거기에 군의관이 남았는지 안 남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갓 기초교육만 받고 끌려온 햇병아리 의무병의 손에 몸을 맡길 생각이 아니라면, 유일한 군의관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않는 것은 아무래도 좋은 생각과는 거리가 멀었다. 고바야시 마루는 이런 상황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고 심지어 즐기기까지 했다.


    - 맞아, 이 분이 연대장님이야!

      연대장의 몽타주를 본 군의관의 반응은 채플린 중위를 아연하게 만들었다.

    - 존 웨인 아닌가요? 이 남자는?

      인상을 찌푸리고 다시 몽타주를 유심히 들여다보던 군의관은 어깨를 으쓱하더니만 이렇게 말했다.

    - 그럴리 없어. 이 분이 커널 대령님일세. 좀 닮긴 했지만 존 웨인은 아니야.

    - 어떻게 아십니까? 연대장님을 뵌 사람이 없다던데요. 메이어 소령님을 빼고는.

    - 뵌 적이 없으니 맞다는 것이지. 뵌 적이 있다면 나조차 사진 속의 남자가 연대장님이 아니라 존 웨인이라고 생각했겠지.

      더 이상은 어디서부터 말이 되고 어디서부터 말이 안되는 건지 따질 기운도 없었다. 중위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났지만 내색할 수가 없었다. 자기 앞에 있는 남자가 이 망할 놈의 부대의 실세라지 않는가. 정말 그렇다면 그의 병과와 보직이 바로 잡히기 위해서는 좋던 싫던 결국엔 이 남자의 손을 거쳐야 할 것이었다.


    - 아무튼 좋습니다. 어쨌든 저는 연대장님을 만나야 합니다.

    - 그걸 나한테 얘기해서 어쩌자는 건가? 난 군의관 나부랑이에 불과한데. 내가 귀관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부목을 대고 붕대를 감아주는 것 밖에 없어. 그나마도 이젠 깨끗한 걸로 해주기 어려운 상황이고 말이야.

      중위는 배에 힘을 잔뜩 넣고 힘을 주어 말했다.

    - 저는 '리터넌트 대위님'께 부탁드리는 겁니다. 군의관님이 아니라.


      알듯 말듯한 표정으로, 군의관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얼음잔에 스카치를 따랐다. 떠오르는 얼음들이 서로 부직히며 딸랑 딸랑 소리를 냈다.

    - 내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지. 나는 열여덟살 때까지 깡촌 중에 깡촌에서 살았어. 차가 없이는 시내에 나갈 방법이 없을만큼 정말 외진 곳이었지.

    -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 쉬쉬, 들어봐. 당시 나는 도시 여자애들 꽁무니를 따라다니느라 바빴기 때문에 차가 꼭 필요했단 말이야. 급기야 열여덟살 되던 해엔 아버지에게 생일 선물로 빨간색 시트로앵 2CV를 사달라고 졸랐어. 그랬더니 아버지가 뭐랬는줄 알아?

    - 뭐랬는데요?

    - 일을 해서 돈을 벌면 차를 사주겠다는거야.

    - 그래서요?

    - 그래서라니. 돈을 벌려면 일을 해야 하는데 일감은 모두 도시에 있지. 도시에 나가려면 차가 있어야 하니 일을 구하려고 한다면 차가 있어야 하는 건 마찬가지였던 거야. 차가 없이는 일을 못 구하고 일을 못 구하니 아버지는 내게 시트로앵을 사주지 않았지. 

    - 그게 지금 상황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 상관이야 없지. 물론.

      스카치를 홀짝이길 멈춘 군의관은 서성거리길 그만두고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 정리해봅세. 귀관은 연대장을 만나기 위해 리터넌트 대위가 누군지 찾아다니고 있어.

    - 그렇습니다.

    - 만에 하나 귀관이 리터넌트 대위라는 작자를 찾았다고 가정하자고…….

    - 찾았다고 가정할 필요가 없죠! 찾았지 않습니까?

      '이 답답한 인간아!'라는 표정을 하며 군의관은 쿠바산 시가를 꺼내어 뭉툭한 끝을 잘근잘근 씹었다.


    - 하여간에 가정해보자고, 이 답답한 친구야. 그럼 그 자가 귀관과 연대장님의 만남을 주선해줄까? 그러면 '리터넌트 대위'라는 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자신이 대신 부대의 중대한 일을 결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셈일텐데? 그럴 수야 없겠지. 그건 부대의 평화와 지휘 체계를 확립하려는 연대장님의 의중에도 어긋나는 일이니. 그러니까 설령 자신이 진짜 리터넌트 대위라고 할 지라도 그 사실을 부정할테고, 그러니까 귀관은 리터넌트 대위를 찾았기 때문에 리터넌트 대위를 통해 연대장을 만날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이야.

    - 그게 도대체 뭔 소립니까? 그냥 만나게 해주면 되는 문제잖아요!

    - 연대장 면담도 시트로앵과 마찬가지야. 이룰 수 없고 가질 수 없단 말이야! 이 돌대가리야!

    - 여기서 시트로앵이 왜 나와요? 저는 군의관님 어릴적 사연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요!

    - 하여튼 나는 리터넌트 대위란 사람이 아닐세. 그러니 연대장님과의 만남을 주선해 줄 위치도 안되고!


      채플린 중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그럼 뭡니까? 저는 이대로 손 놓고 있다가 끌려가서 몇만 미터 상공에서 그냥 던져지란 말입니까? 낙하산 부대원으로 여기 온 게 아닌데도 말입니까?

    - 전시에 뭘 또 일일이 따지나? 더구나 자넨 비행 및 낙하 안전 교육도 받았잖나? 시험도 통과한 적도 있던데?

    - 낙하산 부대원으로 잘못 소속 되어 있으니 교육을 받았죠. 교육을 받았으니 시험을 쳤고, 시험을 치다보니 어쩌다 통과한 때도 있었던 거죠. 젠장할, 그 시험이 뭐 별거라고. 이제까지 문제 한 번 바뀐적 없는 우스꽝스러운 시험이란 말입니다.

    - 어쨌든 교육을 받고 그 시험을 통과함으로 인해서 귀관은 확실한 낙하산 부대원으로 인정을 받았어. 그렇다면 그냥 은밀한 정체성에 대한 자네만의 가설을 접어두고…… 그냥 낙하산 부대원인 셈 치고 살면 안되겠나?

    - 진짜 낙하산 부대원은 가만 두고 왜 엄한 사람 등을 떠미는 겁니까? 서전트 하사는 작전에 안 내보내잖아요.

    - 서전트 하사는 미쳤으니까. 미친 놈의 손에 나라의 운명을 맡길 순 없잖나.

    - 나도 미쳤다고요.

    - 전에도 이런 대화를 나누었지만…… 그걸 어떻게 증명할 건데?

    - 빌어먹을! 수천 미터 상공에서 던져진단 말입니다. 난 고소공포증 환자라고요!

      분을 참지 못한 중위는 분을 참지 못해 벌떡 일어났고,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가 군의관의 침낭이 들어있는 가방을 걷어쳤다. 다만 의외로 제법 단단하였기 때문에 발이 돌아가는 듯한 묵직한 고통이 전혀져 왔다. 젠장! 되는 게 없구만. 중위는 신음하며 바닥을 뒹굴었다. 소통스러워하는 중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군의관은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 자네 종교는 있나? 종교의 힘을 빌어 평화를 찾는 건 어떤가?


      중위는 몸을 뒤틀며 대꾸했다.

    - 백 번도 더 이야기했지만 내가 군종 신붑니다. 더 이상 무슨 믿음을 가지라는 소린 하지 마십쇼!


      태연하게 싸구려 성냥으로 고급 시가에 불을 붙이려 노력하며 군의관은 이렇게 대꾸했다.

    - 이러니까 이 부대에도 군종 장교가 필요하긴 해. 다들 너무 마음의 안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니까. (계속)


    시즌 14, 에피소드 175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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