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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 프로젝트 베르테르 (1/6)
    낙농콩단/Season 16 (2015) 2018.12.07 10:11

      오늘 머리를 감았었나?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고슴도치가 집을 지은 듯한 삐쭉빼쭉한 그림자가 보도블럭 위를 어른거린다. 등 뒤에서 내리치는 따가운 볕에 압도 당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뜨거운 목덜미가 서늘하다. 뒷목을 쓰다듬으니 따끔따끔하다. 조금 더 윗쪽 - 뒷통수로 올라가보니 흉하게 눌러 붙은 머리칼의 기름진 감촉이 느껴진다. 아마, 자다 그냥 일어나 나온 것이 맞는가 보다.

     

      홀리. 그 애를 처음 만났던 날이 기억난다. 그 애의 빨간 머리칼은 꼭 작고 부드러운 불꽃 같았디. 주근깨 가득한 얼굴은 부끄러움으로 달아 있었다. 그래, 그런 시절이 있었지. 지난 몇 년간 홀리가 잃어버린 순수함이 아직은 고스란히 남아 있던 시절. 그 애도, 나도 그때는 지금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물론 나의 경우라면 좋지 않은 쪽으로). 그 애는 어리고 잠재력있는 가수 지망생이었던 것에 반해 나는 늙고 운이 다해 경쟁에서 밀려난 뮤직 에이전트였다. 몇 번의 거듭된 실패는 지워질 수 없는 각인과 상처를 내게 남겼다. 냉소는 하얀 와이셔츠 위의 커피 얼룩과도 같아서 한 번 물들면 좀처럼 쉽게 빠지지 않았다. 그랬다. 나는 그때 이미 더 이상 잃어버릴 게 없는 상태였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홀리의 에이전트를 맡았던 것은 내게 있어 기적이나 다름 없는 일이었다. 남의 재능과 남의 스케쥴을 관리해준 댓가로 인생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꽤 해볼만한 장사 아닌가.

     

      어젯밤에 마신 레이카 보드카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취한 걸 후회하진 않는다. 홀리의 자살 소식을 전해 준 전화를 받았단 사실을 후회할 뿐이다. 덕분에 밤새 술집에 처박혔다. 덕분에 다른 전화는 한 통도 받지 못했다. 덕분에 오늘 아침에야 다시 열어본 블랙베리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회신 요망' 따위의 문자 메세지로 터져나갈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그래, 좋다 이거야. 근데 회신을 해서 뭘 어쩔건데? 그럼 홀리가 살아 돌아오기라도 해?

     

    *

     

      홀리의 장례식은 산 호세에 위치한 한 교회에서 진행되었다. 내가 아는 한, 그 애에게는 종교적인 배경이 없었다. 그러니 이 시끌벅적한 행사는 마지막을 아름답게 장식할 이미지 메이킹의 일환이려나?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더 이상 내 관심사가 아니었으니까. 그 애, 홀리. 그 애를 생각하면 마음 한 구석이 아려왔다. 교회가 아닌, 이슬람 사원이나 모스크에서 식이 진행된다고한들 무슨 상관이랴. 모든 것이 귀찮았다. 어떤 위로와 격려도 싸구려 연예 기자들의 무책임한 질문 공세처럼 느껴졌다. 파파라치들의 부주의한 카메라 소리처럼 신경을 긁어놓는 듯 했다. 정장을 입은 것도 몇 년만이었다. 휴고 보스의 쥐색 솔리드 타이가 꼭 목을 조이는 것처럼 답답했다. 아래로 길게 끌어 당겨 느슨하게 만들고서야 숨을 쉴 수 있었다. 꼬박 하룻밤을 묵힌 지독한 갈증에 목이 칼칼해졌다. 냉수를 마셔 목을 축였다. 한 숨 돌리고 나니 그제서야 홀리의 사진이 보인다. 크게 확대 인쇄하여 이젤에 세워 놓은, 밝게 웃고 있는, 몇 년 전의 얼굴이다. 그 애의 좋을 때만 기억하잔 취지라면 적절한 사진을 골랐다. 저 무렵 이후로는 좋은 시절이라는 것이 없었다. 그 애에게도, 나에게도.

     

      물론 홀리는 좋은 아이였다. 언제나 그렇듯, 이 바닥의 시스템이 좋은 아이를 좋은 아이로 남지 못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지난 몇 해간 - 굳이 정확히 셈하자면 거의 28개월 동안 우리는 엔터테이너와 탤런트 에이전트라는 특수한 위치에서 길고 지난한 싸움을 벌여왔다. 에이전트 자리를 수락할 당시 나는 당장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일흔 다섯살이었다. 그때 홀리의 나이는 데뷔하기에는 조금 이른 열 일곱살이었다. 그 애는 "출생연도가 19로 시작하는 사람이 있단 사실에 충격을 받았"노라고 후일 털어놓았다. 분명 육십년이라는 세월은 노력만으로 메워갈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다. 설령 친할아버지와 친손녀 사이라고 할지라도 세월의 간극이 빚어낸 판이하게 다른 라이프 스타일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물며 비즈니스 관계에서라면……. 

     

      그 다음은 조금 뻔한 얘기다. 성공이 찾아오기 전까지 갈등이란 놈은 뾰족한 발톱을 감춘 채 조심스럽게 잠복해있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찾아온 인기는 놈에게 우리 사이의 실금을 파고 들 기회를 주었다. 십대들의 열띤 환호 속에 그 애는 자유를 얻었고, 그렇게 얻은 힘을 나와의 관계에서 지렛대로 활용하려고 했다. 간헐적 화해와 무의미한 휴전이 있었을 뿐 긴장은 끝도 없이 고조되어 갔다. 일 년만에 그 애는 이 바닥의 교과서라고 해도 좋을 모범적 코스를 밟아가며 서서히 삐뚤어져 갔고 나보다는 헐리우드에서 만난 방탕한 엔터테이너들의 말을 더 신뢰했다. 술과 담배와 성교와 약물과 마약이 차례로 아직 스무살도 되지 않은 아이와의 언쟁에 단골 소재로 등장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난 내 친손녀를 잃어가고 있는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 이미 그 애는 내가 처음 만났던 아이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직업상 처음 겪는 일은 아니었다. 승자도 패자도 없을 싸움이 될 것임을 진작에 이미 예감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황량한 폐허 위에 나 홀로 남게 되는 결말로 다가올 줄은 몰랐다. 그 애와 나누었던 마지막 대화가 생각난다. 

    - 엉클 샘, 목 말라요. 페리에 좀 갖다줘요.

     

    *

     

      업계 사람들의 추모에는 끝이 없었다. 예수상 바로 아래의 흉물스러운 전광판에는 시답잖은 셀레브리티들이 보낸 트윗이 생중계되는 중이었다. 140자 안에 밀어넣을 수 있는 비탄의 크기는 나를 뜨악하게 만든다. 심지어 그들 중의 대부분은 홀리와 일면식도 없었던 사람들이었다. 

     

      '아쉽게도 실제로 만난 적은 없었지만 그녀 노래의 빅 팬이었어요. 블라 블라 블라.'  


      그래, 어련하시겠어요. 빅 팬(big fan)을 빅 펜(big pen)이라고 쓰시는데. 자칭 똑똑한 여배우님.

     

      '#WeRememberHolly 당신의 노래는 제 인생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블라 블라 블라.' 


      50대 중반의 남자 배우가 열아홉살 짜리 여자애 노래로부터 인생의 동력을 얻었단다. 미친 또라이가 아니라면 저 놈도 홀리가 어울리고 다녔던 이 바닥의 더러운 놈팽이들 중의 하날 것이다.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은 심정이다. 

     

      '#WeRememberHolly 우리는 그녀와 그녀의 노래를 잊지 않을거예요. 블라 블라 블라.' 


      트윗의 홍수 속에 한 보이 밴드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스위트 카르마>, 익숙한 이름. 그 놈들을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건 그저 우스꽝스러운 그룹 이름 때문만이 아니었다. 처음 에이전트로 일을 시작했던 30여년 전, 처음 담당했던 가수가 그 놈들이었다. 21세기의 <듀란 듀란>이 되겠다고 큰 소리치던 네 저능아 놈이 잉카 개구리를 숭배하는 이단 종교에 빠져 대형 사고를 치고 아홉시 뉴스 헤드라인에 나오기 전까지 말이다. (계속)


    시즌 16, 에피소드 194 (2015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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