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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 프로젝트 베르테르 (2/6)
    낙농콩단/Season 16 (2015) 2018.12.08 12:04

      다음 날, 크툴루 레코드사 사장 윌리엄 H. 앤더슨씨가 나를 불렀다. 홀리의 전속계약기간은 아직 27개월이나 남은 상태였다. 뿐만 아니라 두 장의 스튜디오 앨범과 한 장의 컴필레이션, 그리고 한 장의 캐롤 앨범이 (캐롤 앨범이라고? 농담인가?) 잔여 옵션을 잔뜩 떠안은 형태로 남아 있었다. 계약서 속의 작고 빼곡한 글자들과 크고 무거운 숫자들이 매직 아이처럼 떠올라 내 두 눈을 매섭게 후벼팠다. 맙소사! 순간 괴성이라도 지르고 싶은 마음이었다. 홀리에게는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그 애가 살아있었어도 남은 27개월은 생지옥이 되고도 남을 판이긴 했다. 

    - 유감이네. 홀리는 좋은 아이였어.

    - 그랬죠.


      앤더슨씨의 말은 반쯤 맞았다. 홀리는 좋은 아이였고 되도록이면 그렇게 영원히 남았어야 했다. 그렇지 못하게 된 책임의 대부분은 엔터테인먼트 업계나 이 바닥의 비즈니스 시스템에게 있었지만 크툴루 레코드사에도 분명 일정 지분이 있었다. 문득 헤로인에 취해 널부러졌던 홀리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눈동자의 공허함은 평생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 크툴루 레코드사에게도 커다란 손해야.

    - 그럴 겁니다. 


      계약서를 건성으로 넘겨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그 지옥행 열차의 표를 나 혼자 끊은 셈이 되었지만 어쩌겠는가. 이렇게 독소 조항이 많은 계약이 이루어진데는 에이전트인 나의 책임도 적지 않은 것을. 그래도 크게 걱정이 되진 않았다. 홀리는 십대 스타로 발돋움했고 덕분에 그 애의 노래엔 아직 상품으로 가치가 있었다. 전여 계약은 어떤 식으로든 처리가 될 것이고 크툴루 레코드사에 손해가 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 그래서 말인데…….

      앤더슨씨가 말을 이었다. 옳지. 이제 본론이 나오는군. 내 이럴 줄 알았지.

    - 홀리를 위해 몇 가지 해주고 싶은 게 있어. 그 애를 추모하는 팬들을 위해서도 의미있는 일이 될 걸세.

      베스트 앨범을 기획하기에 지금보다 적기는 없을 것이다. 비틀즈와 앨비스가 힘을 합쳐도 못 이기는 게 있다면 바로 방금 막 죽은 가수이니까.

    - 압니다. 그 문제에 대해선 굳이 제 의견을 물어보실 이유가 없습니다. 이미 계약서에 적혀있는 그대로 하시면 됩니다.

      마치 미리 준비해놓은 것처럼 던진 나의 대답에 앤더슨씨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 아니, 그게 아니네.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그는 두꺼운 안경 너머로 말없이 나를 응시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뜸을 들이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서류철 아래에 깔아 놓았던 스크랩북을 슬그머니 내쪽으로 밀어놓았다. 

    - 자네 혹시 여기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나?


    그건 신문과 잡지 기사의 출력물이었다. 한달여 전, 그러니까 4월 29일, 뉴욕 타임즈는 <존 덴버 vs. 버디 홀리: The Ancient Arts of Warfare>라는 기사를 실었다. 컴퓨터로 되살려 내어 인터넷을 바탕으로 활동을 재개한 소니 BMG의 존 덴버가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점령하자, 이에 맞서 유니버셜이 버디 홀리를 같은 방법으로 되살려 내어 대응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다음 날 롤링 스톤지는 같은 내용을 한 술 더 떠서 <An Air Combat: 누가 공중전의 승자가 될 것인가?>라는 제목의 자극적인 기사를 인터넷판에 게재하였다. 그 밖에도 뉴요커는 <G-선상의 위스퍼러: 유령의 목소리가 빌보드를 점령하다>, 버라이어티는 <파라노말 액티비티: 다음 유령은 누구인가? 존 레논?>, 시카고 트리뷴은 <EMI와 워너, ARC, 그리고 Decca: 그들은 자신들이 납골당의 초석을 닦을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가디언은 <음반사들, 뮤라토리움(Muratorium)을 선언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식스 핏 원더: 음악시장은 지금 역사상 유례가 없는 변화에 직면하였다>, 이코노미스트는 <레코딩 룸에 콘솔 보드 대신 위자(Ouija) 보드를 설치하라>라는 기사를 각각 내보냈다. 직업적인 이유로 이미 대충 읽어본 것들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지만……. 고개를 들어 앤더슨씨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떻게 이야기가 이어질런지는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내가 듣고 좋아할만한 방향이 아닐거라는 사실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말없이 스크랩북을 뒤적거렸던 것은 앤더슨씨가 하고 싶은 말을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리 덥지 않은 날이었지만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유니버셜의 존 덴버, 소니 BGM의 버디 홀리……  CNN 보도자료의 큼지막한 헤드라인이 보였다. <유니버셜과 소니 BGM의 유령 전쟁은 시작되었다. 이제 워너의 선택은?> 크툴루 레코드는 워너 뮤직 그룹의 산하 레이블이었다. 이름만 보면 잘해야 인디펜던트 록밴드 두어 개쯤 안고 있는 변방 회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홀리와 같은 십대 팝 스타들만 아홉 명이고 (그 애들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지만 배를 가르지 않아도 이내 못 쓰게 된다) 연간 수익도 2천6백만불에 이른다. 

    - 홀리는 버디 홀리가 아닙니다. 존 덴버는 더더욱 아니죠.


      나의 지적은 간결했지만 핵심을 꿰뚫는 것이기도 했다. 문자 그대로의 리바이벌(Revival)이 가능하기에 홀리는 너무 어렸고 경력이 일천했다. 달랑 두 장 발표한 앨범에서 운 좋게 다섯 곡이 히트하긴 했고 그 중의 두 곡이 플래티넘이라지만…… 디즈니 채널의 십대 스타들과 붙어보는 것도 아니고 감히 전설적인 가수들 앞에서? 레저렉션 파이(Resurrection Pie)도 뭐라도 남은 음식이 있어야 만들 수 있는 법이다. 그 애와 그 애의 음악에는 뭐랄까, 고유의 색깔이라고 할만한 것도 없었다 (물론 아주 최근까지 그 애의 에이전트였던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만). 그저 요사이 유행하는 스타일의 잡탕에다가 십대들이 좋아할만한 요소를 적당히 섞은, 또 하나의 버블검 팝일 뿐이었다. 홀리가 없어도 누군가 비슷한 노래를 들고 나와 거짓말처럼 또래 청소년들의 마음을 메워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앤더슨씨는 내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 눈치였다.

    - 맞네. 그 앤 존 덴버도 아니고 버디 홀리도 아니지. 그래서 특별한 거야. (계속)


    시즌 16, 에피소드 194 (2015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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