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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농콩단/Season 17 (2016) 2018.11.14 11:45

      처음 쟝 마리 시립도서관에 자가 대출 반납기가 들어오던 날을 기억한다.


      나는 즐거움을 감추지 못하고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렇다. 평소 내 성격을 생각하면 분명 흔한 일은 아니다. 그만큼 기분이 좋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귀찮은 일이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감. 그게 전부였다. 그거면 충분했다. 물론 따지고 보면 세상에 귀찮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더욱이 도서관으로 한정하자면, 따분한 동시에 귀찮은 것이 이 곳 업무의 본질적 생리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다. 세상에서 내 일만 귀찮고 힘들며 고되다고 여기는 그런 부류가 아니다. 어질러진 장서를 정리하거나, 반납된 책을 원위치하는 일에도 나름 귀찮은 부분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알 수가 없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페이지들의 직무이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라이브러리 어시스턴트들의 직무가 아니라.


      나는 쟝 마리 시립도서관의 라이브러리 어시스턴트다. 대출이나 반납을 담당하고 연체료를 징수한다. 또한 현장 및 유선 문의에 응대하는 일도 겸한다. 그리고 또 뭐더라…… 도서관 카드 발급 업무도 담당한다.


     *


      새로 들어올 자가 대출 반납기. 나의 바람대로 그것은 대출 도서의 반납 과정에 혁신을 가져왔다. 많은 부분에서 일을 덜어주었다. 사람 손을 거치지 않고도 대출과 반납 프로세스가 어느 정도는 돌아가게 되었으니 말이다. 물론 모두가 기뻐하지는 않았다. 이를테면 어린 페이지들은 시큰둥했다. 심지어 시샘 어린 시선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 아이들은 이렇게 볼멘 소리를 내었다.

    - 새 기계가 들어왔지만 우리 일은 조금도 덜어지지 않았어.


      맞는 말이었다. 페이지들의 직무는 책을 정리하여 제 자리에 위치시키는 것이었다. 자가 대출 반납기는 반납된 책을 제 자리로 돌려보내지 못했다. 뒤섞인 장서의 순서를 맞춰주지도 못했다. 그 아이들은 항상 불평만 했다. 꼭 이번만이 아니라 모든 문제에 대해서 항상 그러했다. 솔직히 나는 그 아이들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아이들은 대부분이 아르바이트 학생으로 파트-타임이었다. 나는 엄연한 풀-타임 직원이다. 비록 라이브러리안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 아이들에게 만만하게 보일 위치는 아니다. 사실 세상 이치가 그렇다. 그 아이들도 라이브러리안들 앞에서는 꼬리를 내린다. 이빨을 드러내고 기어오르는 것은 (나와 같은) 라이브러리 어시스턴트들을 상대하는 경우 뿐이다. 내가, 그리고 나의 직무가 만만한 것이다. 고속도로 톨게이트 직원들이 그러하듯이 대출과 반납의 행렬 속에서 동전이나 받아 챙기고 있단 이유로 하찮게 보는 것이다.


     *


      쟝 마리 시립도서관에는 두 사람의 라이브러리 어시스턴트다. 한 사람은 나이고 다른 한 사람은 옆자리의 캐시 펠티에라는 스물 다섯살 먹은 아가씨다. 솔직히 나는 사람들이 도서를 대출하려고 할 때 되도록이면 그 아이 앞으로 줄을 서주기를 바랐다. 아니면 자가 대출 반납기를 이용하던가. 대출 도서를 반납할 때도 마찬가지다. 되도록 그 아이나 자가 대출 반납기 중 하나와 일을 처리했으면 싶었다. 혹시나 오해를 살까 밝혀두지만 나는 게으른 사람이 아니다. 단지 그렇게 단순하고, 손이 많이 가고, 비위생적이기까지 한 일은 (비록 이 직군의 핵심 업무라고 할지라도) 너무 열심히 할 필요는 없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 펠티에 양의, 아니 캐시의 캐퍼시티(처리용량)는 항상 아쉬웠다. 오! 주여! 진실로 그 아이는 빠릿빠릿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참말로 멀었다. 자가 대출 반납기가 들어오기 전까지 나는 거의 악전고투라고 해도 좋을만큼 어려움을 겪었다. 끔직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제 자가 대출 반납기가 들어온 것이다. 나는 효율적 업무 분담에 대한 핑크빛 꿈을 꾸었다. 장기적으로는 캐시와 자가 대출 반납기가 성가신 현장 일을 분담하고 나는 (말하자면, 일종의) 관리직으로 올라서기를 희망한다. 충분히 예상해봄직한 일이다. 나는 펠티에 양보다 직급과 연차가 위에 있다. 고로 주급도 더 많이 받는다. 따라서 만약 라이브러리 어시스턴트 중에서 누군가 (말하자면, 일종의) 관리직으로 승진을 하게 된다면 순서는 응당 다음과 같아야 할 한다고 생각한다.


    (1 순위) 나, 소피.

    (2 순위) 캐시 펠티에

    (3 순위) 자가 대출 반납기. 


    *


      명색이 하나 밖에 없는 같은 직급의 동료를 내가 썩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들린다면 그건 오해다. 부분적으로는 그렇다. 아니, 물론 일부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기는 하다. 첫째, 그 아이는 좀 모자라다. 둘째, 그 아이는 눈치가 더럽게 없다. 셋째, 그 아이의 비위생적인 생활 습관은 소름끼칠 정도다.


      내 자랑은 아니다. 다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약간의 청결 강박을 가지고 있다. 더럽고 지저분한 건 딱 질색한다. 종종 조금 지나치다는 소리도 듣지만 타고나 오랜 시간 길들여진 습관을 쉽게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 토드백을 뒤집어 털어 보면 비닐 장갑, 라텍스 장갑, 페브리즈, 액상 비누, 손 세정제, 그리고 물휴지가 나온다. 여러개가 나올 수는 있지만 하나도 나오지 않는 일은 없다. 깨어 있는 내내 보이는 구석 구석을 쓸고 닦는 내 눈에 캐시는 위험 관리 대상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당장 방역 격리가 필요하다고 볼만한 상황을 여러차례 목격했다. 할 수만 있다면 (나에게 그럴 권한만 있다면) 정말로 그리했을 것이다.


      나의 직업과 청결 강박 증세의 궁합은 사실 묘하다. 사람 대면하는 빈도가 비교적 적은 조용한 일이라는 점에서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심각하게 오염된 공공 도서관 장서들을 생각하면 영 찝찝한 마음을 떨치기가 어렵다. 여러 사람의 손을 타면서 청결하기를 바랄 수야 없을 것이다. (자기 집 화장실과 공중 화장실의 차이를 굳이 이 대목에서 언급할 필요까지 있겠는가?) 수십 차례에 걸쳐서 나는 경고했다. 때로는 개선을 위한 의견도 제안했다. 쟝 마리 시립도서관 내의 상급부서는 물론 전국 도서관 위원회나 정부 관계부처에 보고하기도 했다. (물론 그 사람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 놈의 예산을 핑계로…….)


      공공 도서관 책들은 세균 배양 접시나 다름없다. 막말로 무슨 종류가 얼마나 자라고 있을진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최근 한 대학에서 이뤄진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공립 도서관의 '대출 불가 도서'와 '대출 가능 도서' 사이의 세균 검출 빈도가 18배 이상 차이가 난다고 한다 (어느 쪽이 18배 높은지는 상상에 맡긴다). 곰팡이는 그 종에 있어 자그마치 32배나 다양했다. 누군가 도서관 대출 도서로 인해 호흡기 질환이나 피부 질환을 앓았다고 하더라도 이상할 이유가 하나 없으리라. 안타까운 것은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모른다는 사실이다.먼지, 세균, 곰팡이가 돌고 돈다. 우리 직원들은 그 악순환의 고리를 긴밀하게 공유하고 있는데도 너무 안이하게들 생각한다. 이를테면 캐시. 심지어 그 아이는 반납된 책을 만진 손으로 자기 코를 만지고, 그 손으로 다시 샌드위치를 먹은 적도 있다. 그러니 그 불결한 계집애와는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계속)


    시즌 17, 에피소드 210 (2016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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