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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농콩단/Season 17 (2016) 2018.11.18 11:00

    . 쟝 마리 시립도서관에 자가 대출 반납기 4.0이 도입된 것은 그 해 겨울의 일이었다. 나는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매번 새로 나올 때마다 그러했던 것처럼 4.0도 놀라운 혁신의 결과물일 거라고 짐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의외의 상황이 벌어졌다. 충격적이라고 할만한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실망스러웠다. 다소 맥이 빠졌다. 휘파람을 불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자가 대출 반납기 4.0은 자가 대출 반납기 3.0과 거의 유사했다. 비단 외양만이 아니었다. 본질까지 닮았다. 굳이 새로운 특징을 따지자면, 도서간 회원증을 발급해 준다는 점이 있었다 (뭐? 겨우?). 또 연체료를 징수한다는 부분도 있었다 (설마……, 농담이지?). 회원증이나 연체료 때문에 큰 돈을 들여서 새 기기를 도입한다는 것은 얼토당토 않은 일이었다. 말하자면 자가 대출 반납기 3.0을 구비하지 않았던 도서관에나 구매를 고려함직한 제품인 셈이었다. 


      그럼에도 쟝 마리 도서관은 자가 대출 반납기 4.0을 도입했다. 자세한 내막은 몰랐다. 파트-타임 페이지들을 해고함으로써 운영비를 절감한 덕분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내 입장에선 특별히 좋을 것도 싫을 것도 없었다. 일손이 하나 더 늘어난 것은 싫을 이유가 없는 일이다. 벌써 세 대였다 (2.0과 3.0, 그리고 새로 자리를 잡은 4.0). 나 같은 담당 직원들보다 처리 속도도 빨랐다. 자연히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일도 적었다. 자가 대출 반납기 도입 이후 귀찮은 일은 꾸준히 줄어들고 있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기계와 대면하는 일에 빠르게 익숙해졌다. 사람들이 수백년동안 나와 같은 담당 직원들을 거쳐서 책을 빌려왔노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었다. 무인 주차권 발급기처럼, 자가 대출 반납기도 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무도 당연한 것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쁘지 않은 공생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냉장고 세 대를 나란히 줄지어 놓은 것처럼 보이는 자가 대출 반납기들. 팔짱을 끼고 늠름한 녀석들의 자태를 감상하고 있는데 캐시가 뒤로 슬그머니 다가와 말을 걸었다. 

    - 이젠 저 아이들이 더 많네요?

    - 응? 뭐라고?

    - 저 아이들이 우리보다 더 많다고요. 우리는 둘인데 저쪽은 셋이잖아요.


      그 대목에서 두 가지 거슬리는 점이 있었다. 첫째는 그녀가 내게 말을 걸었다는 사실이었다. 둘째는 나와 자기를 싸잡아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부분이었다. 물론 직원 구성비에 대한 그 아이의 지적이 틀렸다는 건 아니다. 쟝 마리 시립도서관은 분명 거대한 변화의 물결에 휩싸여 있었다. 미처 눈치채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그건 남은 직원이 얼마 없어서일 가능성이 크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리와 르네를 비롯해서) 파트-타임 페이지들이 차고 넘쳤다. 사람 직원이 열다섯이었다. 하지만 자가 대출 반납기 3.0이 도입되면서 여덟명의 페이지들이 짐을 쌌다. 부분적으로(파트-타임이니까 짐도 그만큼만 있었을 것이다). 이제 남은 사람 직원은 일곱이다. 청소 용역 직원 둘을 빼면 다섯이다. 디렉터 뒤상씨와 표정 없는 사서 두 사람, 캐시, 그리고 나.


      아이러니한 것은 그 이후 우리 도서관이 풀-타임 직원 구성 비율 (굳이 셈하자면 100%) 우수 기관으로 선정되었단 사실이다. 뒤상씨가 대표로 정부 표창을 받았다. 나도 시상식장에 따라갔다. 캐시도 물개처럼 짝짝짝 박수를 쳤다. 표정 없는 사서 두 사람도 영혼없는 손 마주치기의 기적을 보여주었다. 그때 뒤상씨는, 뭐랄까…… 조금 멋쩍은 표정이었다. 숫자의 장난으로 덜컥 상을 받게된 것도 쪽팔린 일이었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지 싶다. 뒤상씨가 파트-타임 페이지들을 각별히 아꼈던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아꼈다는 것은 업무 시간 이후에 뒤상씨의 사무실에서, 열람실에서, 또 비품실에서 둘 혹은 셋 만의 은밀한 시간을 보냈다는 뜻이다. 내가 아는 바로는 마리도 그랬고, 물론 르네도 그랬고, 또 다른 모두도 (길게든 짧게든 파트-타임으로 일했던 거의 모든 아이들이) 그랬다. 파트-타임 페이지들은 대개 어렸다. 어리다는 게 쉽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재주 좋은 뒤상씨에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던 듯 했다. 혹은 그 어린 것들이 꼬리를 쳤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느 쪽이 진실이든간에 뒤상씨로서는 어린 애인들을 해고한 댓가로 받는 상찬이 민망스러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


      난 뒤상씨의 파트-타임 연애가 진실된 사랑에 기반한 관계였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뒤상씨는 틀림없이 나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저 단발적으로, 이따금 참을 수 없을만큼 외로웠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짐작했다. 결국 그 남자가 내 품에 안기게 되기까지의 일종의 과정일 뿐이라 확신했다. 사실…… 그런 맥락에서 은근히 기대했던 부분도 있었다. 여덟명의 파트-타임 아가씨들이 차례 차례 도서관을 떠나게 된 덕분에 불필요한 과정이 상당히 줄어들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시점 쟝 마리 시립도서관에는 치마를 입은 사람이 둘 밖에 없었다 (스웨이드 숄더백 대신에 걸쇠가 달린 서류가방을 들고 다니는 표정 없는 사서들은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쯤되면 슬슬 나에 대한 마음을 표현할 시기가 무르익지 않았나 생각했다. 그 겨울, 나는 되도록 예쁘게 보이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를 볼 때마다 일부러 한 번 더 웃어주었던 것 같기도 했다. (초록불이에요! 뒤상씨! 멈추실 필요 없어요!)


      표정 없는 사서들에 대해서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여성으로 매력이 없다시피한 수준이었다. 그들의 생물학적 성별은 오직 인사 기록표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었다. 웃지도 않고 화를 내지도 않았다. 늘 무표정했다. 말을 하는 것도 들어보지 못했다. 옷도 오트밀 색상로만 골라 입었다 (일부러 그렇게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두꺼운 뿔테 안경을 끼운 채로 책 사이에 머리를 박고, 오로지 일, 일, 일만 했다. 다른 직원들은 그들을 '로봇'이라고 불렀었다. 십대 고등학생들과 필적할 수준으로 남성 호르몬을 뿜어내는 뒤상씨, 파리 디즈니랜드에서 심지어 미니 마우스와 데이지 덕에게 작업을 걸었던 바로 그 뒤상씨조차 그들 앞에서는 도 닦는 승려처럼 조신하게 행동할 정도였다.


     *


      예상치 못했던 것은 뒤상씨의 여성 감지 센서가 캐시 펠티에를 탐지할 수 있었다는 부분이었다. 그렇다. 옆자리 캐시. 그녀는 한없이 대책없고 청결하지도 못했고 내가 보기엔 별로 매력적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뒤상씨의 탐지 영역 안쪽에 위치하기는 했던 모양이다. 어쩌면 내가 그 아이를 과소평가 했을 수도 있겠다. 예쁜 꽃에만 벌이 꼬이란 법은 없지 않은가! 50 퍼센트의 가능성. 한편으로는 힘이 빠진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확률의 신이 나를 외면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날 피해간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일단 다시금 나와 사귀기 시작하면 그 다음을 기약할 수 없기에 가능한 내게 고백하는 것을 늦추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제대로 된 남자가 캐시 같은 애를 만날리 있겠는가!)


      아! 감동적이었다. 뒤상씨가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 또 얼마나 아끼고 배려해주고 있는지 마음으로 느껴져 행복했다. 물론 덕분에 캐시를 싫어하는 마음은 더욱 더 견고해졌다. 원래도 싫었지만 더 싫어졌다. 저 아이만 없었어도 '용기없는 바보' 뒤상씨가 조금 더 과감하게 내게 한 걸음 다가올 수 있었을테니 말이다. 나는 생각했다. '하루라도 빨리 저 아이를 내보내야겠어.' 훗날 보다 진보한 버전의 자가 대출 반납기가 등장하여 남은 도서관 직원들 중 누군가 해고 되어야 한다면 명백히 그 아이가 1순위일 것이다. 그때쯤 내가 관리직(말하자면, 일종의)으로 올라서는 것도 좋은 그림일 것이다.


    *


      어느 날 나는 기회를 보아 뒤상씨를 찾아갔다. 나는 뒤상씨와 캐시가 열람실에서, 비품실에서, 때로는 양쪽을 오가며 무슨 짓을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들이 더럽혀 놓은 곳을 쳥소하는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청소 용역 직원들? 천만의 말씀이다. 락스를 뿌리고 수세미질을 해가며 흔적을 지운 사람은 따로 있었다. 이 도서관에서 유일하게 청결에 대한 정상적 관념을 지니고 있는 사람 말이다.

    - 뒤상씨, 캐시에 대해 좀 아세요?

    - 아뇨. 잘 모르겠는데요.

      거짓말. 그는 모니터 위의 스프레드 시트에서 눈도 떼지도 않았다. 찔리는 게 있어 그랬을 것이다. 두 사람이 열람실 책상 위에서 열렬히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내 눈을 똑바로 마주칠 면목이 없을 것이다.

    - 그냥요. 요즘 부쩍 캐시랑 면담하시는 일이 많아진 것 같아서요.

    - 글쎄요. 특별히 잦았던 건 아닌데……. 오히려 소피가 더 잘 알지 않나요? 바로 옆자리 동료 아닌가요?

      난 코웃음을 쳤다. 속으로 생각했다. '치마 속까지 들여다 본 당신보다 더 잘 알겠어요?' 꾸욱 눌러참았다. 

    - 아무리 동료라도 터 놓고 이야기하기 힘든 비밀이 있을 수는 있잖아요. 

    - 물론이에요, 소피. 사적인 사연을 다 털어놓지야 못하겠죠. 사적인 사연이라면.

      능숙한 플라잉 낚시꾼처럼 찌를 살살 움직였더니만 그도 미끼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 맞아요, 뒤상씨. 그게 다에요. 전 그냥 제 짝꿍에게 무슨 일이 있나 궁금했을 뿐이에요.

      '짝꿍'이라니. 우웩. 헛구역질을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 입으로 그런 말을 했단 말야? '짝꿍'이라고?

    - 훌륭하네요. 소피. 동료를 아끼는 마음이 대단해요.  


      나는 빙긋 웃어보였다. 겉으로만 말이다.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했다. 하루 빨리 이 불쌍한 남자를 구원해주어야 한단 생각을. 그게 우리 모두를 위한 최선의 길이었다. 하루 빨리 주제 파악을 하고 그릇에 맞는 인생을 찾아가는 편이 캐시에게도 좋을 것이다. 그 더러운 계집애로부터 하루 빨리 정화되는 편이 당연히 뒤상씨에게도 좋을 것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캐시는, 반납된 책을 만진 손으로 자기 코를 만지고, 발 뒤꿈치도 긁은 다음에, 어쩌면 그 사이에 은밀한 부위도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그 손으로 샌드위치를 먹는 아이다. 충분히 그러고도 남는 아이다. (계속)


    시즌 17, 에피소드 210 (2016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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