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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농콩단/Season 17 (2016) 2018.11.19 11:00

      쟝 마리 시립도서관에 자가 대출 반납기 5.0이 들어온 것은 그로부터 두 달 후의 일이었다. 겨우 두 달만에 신제품이 나온 것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사이에, 마치 자가 대출 반납기 4.0은 깜짝 예고편이었다는 듯이 말이다. 우수 기관 선정으로 가속이 붙은 정부 지원이 예산 집행의 부담을 덜어주었던 듯 했다. 자가 대출 반납기 5.0에는 물론 두드러진 장점이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두 달만에 출시한 신제품이 마주하여야 할 시장의 저항을 감당할 수가 없었을테니!). 하지만 더 눈에 띄는 것은 우선 외양이었다. 상단의 스캔부가 사라졌다. 반납도서 투입부도 없어졌다. 하단의 보관함도 없었다. 대신…… 머리와 몸통과 팔과 다리가 있었다. 누가 봐도 사람과 닮은 구조의, 그러면서도 로봇이라는 사실은 알 수 있을 정도의, 말하자면 C3PO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으므로, 휘파람을 불려던 기분이 싹 사라지고야 말았다. 나는 항상 자가 대출 반납기의 진일보를 환영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그때만큼은, 잘 판단이 서지 않았음을 고백해야겠다.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예감 같은 것이 있었다고 할까.


      자가 대출 반납기 5.0은 반납된 도서를 '오른손'으로 받아들었다. '왼손'으로는 핸디스캐너를 가져다가 바코드를 찍었다. '몸통'에 여닫을 수 있는 작은 챔버가 있어 반납된 도서를 넣고 30초간 자외선 살균을 수행하였다. 마지막으로 소독된 도서를 꺼내어 북 카트에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그 능숙한 움직임이 소름끼칠 정도였다. 도서관 이용객이 한산해지면 자가 대출 반납기 4.0은 튼튼한 '두 다리'로 걸으며 북 카트를 '두 팔로' 밀어 서가를 한 바퀴 돌았다. 반납도서를 제 자리에 꽂고 뒤섞인 장서를 원위치했다. 가끔식 그는 (그는?) 도서관 정문 오른편에 나란히 세워진 자신의 이전 모델들 - 자가 대출 반납기 2.0과 자가 대출 반납기 3.0, 그리고 자가 대출 반납기 4.0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는데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무표정하기로는 2층의 사서들 뺨 쳤으니!). 에메랄드색 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의 (그의?) 마음을 조금 더 들여다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똑바로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두려웠다. 


      자가 대출 반납기 5.0이 가져온 혁신이 결코 싫지는 않았음에도. 그의 합류 이후 도서관은 거의 무균시설이나 다름 없을 청결도를 자랑했다. 장서들은 미개봉 상태의 수술복만큼 깨끗했고 대출 프로세스를 거친 도서의 멸균 과정도 철저하게 관리 되었다. 자가 대출 반납기 5.0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종전 대비 세균은 23.7배 줄어들었고 무작위 표본 추출 검사 단 한 종의 곰팡이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감히 단언하자면 쟝 마리 시립도서관 역사상 이렇게 깨끗했던 시기가 없었다고한들 결코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분명 내가 바랐던 신세계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기쁘지 않았다. 틈나는대로 쓸고 닦는 자가 대출 반납기 5.0는 로봇 버전의 나를 보는 듯 했다. 그럼에도 내가 느낀 건 동질감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가 대출 반납기 5.0은 이전 모델들과 달랐다. 자판기나 냉장고처럼 멀뚱히 세워 놓을 것이 아니었다. 앉을 자리가 필요했다. 사람 직원들처럼 자리를 만들어 줬다는 얘기다. 마치 정말로 새 직원이 채용된 것처럼. 뒤상씨의 지시로 나와 캐시가 앉았던 대출/반납 창구에 파티션이 하나 더 세워졌다. 두 칸에서 세 칸으로. 그 무렵까지도 뒤상씨는 업무 시간 전후로 캐시와 비밀스러운 시간을 보내고는 했다. 두 달이나 한 여자와 관계를 지속해나간 것이 뒤상씨에게 이례적인 일이긴 했다. 한계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가 내게 고백할 시간이 임박했단 확신이 들었다. 그를 떠보고 싶은 마음에, 그리고 자가 대출 반납기 5.0으로 인한 불안감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 마음에 나는 뒤상씨를 다시 찾아갔다. 

     

    - 뒤상씨, 자가 대출 반납기 5.0 말이에 대해서 좀 아세요?

    -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 그냥요. 좀 신기해서요. 팔 다리가 달린 로봇이라니……. SF 영화에서나 나오던 거 아니에요?

    - 그렇군요. 신기하긴 하더군요.

      뒤상씨는 모니터 위의 스프레드 시트에서 눈을 때지 않고 대답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말이다. 얼마나 날 쳐다보기가 힘들면.

    - 도대체 어떻게 움직이는 걸까요? 

    - 예전에 소피가 그랬잖아요. 자가 대출 반납기 안에 로봇 팔이 있을 거라고요. 또 로봇 다리가 있을 수도 있다고 했죠. 

    - 맞아요. 그랬었죠. 자가 대출 반납기 3.0이 들어왔을 때의 일이었어요.

      뒤상씨는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 그럼 소피가 예상했던 그대로 아닌가요? 다만 로봇 팔과 로봇 다리가 바깥에 나와 있을 뿐이죠.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 그건 그렇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잘 모르겠어요.

      뒤상씨는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고개를 들어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선글래스에 햇빛이 반사되어 번쩍거렸다. 

    - 그래서 나한테 물어보러 온 건가요?

    - 맞아요. 뒤상씨라면 잘 아실 것 같아서.

    - 굳이 왜요? 소피는 기계의 원리를 이해하는데 천부적인 능력이 있잖아요.

      퉁명스러운 목소리. 그 말이 진담인지, 아니면 비꼬는 것인지 잘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모니터 위의 스프레드 시트를 작업하는데 열중하기 시작했다. 나는 생각했다. '마음을 들킬까봐 부러 정을 떼려고 무뚝뚝하게 저러는 거야' 라고. 


     *


      다음 날 저녁이었다. 어쩌면 그 다음 날이었을지도 모른다. 날짜가 언제였는지는 상관없다. 퇴근하던 뒤상씨가 대출/반납계를 들렸다. 딱딱딱 소리가 먼저, 그리고 깨끗하게 세탁한 면직물 냄새가 뒤이어 그의 등장을 알렸다. 나와 캐시는 제각기 다른 이유로 그를 반겼다. 하지만 뒤상씨의 눈길이 향한 곳은 자가 대출 반납기 5.0이었다. 그는 특유의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 시간 좀 있어요? 로즈?


      순간 누군가 프라이팬을 들어 내 뒷통수를 후려갈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로즈? 로즈라고? 캐시의 놀란 표정 또한 가관이었다. 원래 덜 떨어지게 생긴 표정을 하고 다니는 아이인데 입을 떡 하니 벌리고 못생긴 이를 드러내니 한층 더 멍청하게 보였다. 아무튼 뒤상씨의 그러한 돌발 행동을 그 계집애 또한 예측하지 못했던 것만은 틀림없었다. 로즈…… 로즈라니……. 


      나는 그제야 자가 대출 반납기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전 모델들과 달리 얼굴과 몸통과 팔과 다리가 달려있다는 사실 때문에 미처 신경쓰지 못했던 사실들이 눈에 들어왔다. 자외선 살균기가 내장된 몸통의 윗 부분, 그러니까 가슴이 있을 부분이 볼록하게 나와 있었고, 허리가 있을 부분과 엉덩이가 있을 부분은 분명한 곡선을 그리고 있었으며, 튼튼하다고만 생각했던 두 다리는 사실 가늘고 매끈했다. 오! 하나님! 그는 (아니, 그녀는) 뒤상씨를 향해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서야 얼결에 바라본 그의 (이니, 그녀의) 얼굴은 작고 갸름했다. 도발적인 콧날과 아담한 입술의 대조가 묘하게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에메랄드색 눈동자. 과연 그랬다. 크롬과 티타늄 소재의 번쩍거리는 민머리가 아니었다면 누구라도 당연히 여성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뒤상씨는 손을 내밀어 그를 (아니, 그녀를!) 일으켜 세웠고 옷걸이에 걸려있던 외투를 가져와 손수 입혀주었다. 뒤상씨와 자가 대출 반납기 5.0 (아니 '로즈')는 손을 잡고 도서관 정문으로 사라졌다. 


      나는 나도 모르게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물이 끓기 직전의 주전자 같은 표정을 했던 캐시는 이내 울음을 터뜨리더니만 눈물 콧물을 질질 짰다. 조금 전 반납된 책을 만졌던 손으로 코를 닦고 눈을 비볐다. 맙소사! 저 손을 씻지도 않고 나중에 샌드위치를 먹겠지? 하지만 이제 문제는 그 계집애 입으로 들어갈 오염된 샌드위치 따위가 아니었다. 설명할 수 없었던 묘한 예감이 결국엔 현실을 침공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계속)


    시즌 17, 에피소드 210 (2016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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