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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농콩단/Season 17 (2016) 2018.11.22 11:00

    . 쟝 마리 시립도서관에 앰브로시아가 나타난 것은 그로부터 3개월 후의 일이었다. 앰브로시아는 새로 개발된 자가 대출 반납기의 이름이 아니었다. 그럴 듯한 폴 댄서 이름이라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날을 기억한다. 잊을 수가 없다. 그녀는 커다란 망치를 들고 나타나 자가 대출 반납기 2.0과 자가 대출 반납기 3.0과 자가 대출 반납기 4.0을 때려 부수었다. 쾅, 쾅, 쾅, 소리에 놀란 우리 (나와 로즈, 캔디, 체리)가 멍문으로 달려 나갔을 때는 이미 남아 난 것이 없었다. 


      철저하게 해부된 구형 자가 대출 반납기들의 모습에서 나는 그 동안 품어오던 궁금증 몇 가지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그 안에 로봇 팔이나 로봇 다리가 과연 들어가 있었다는 점. 결국 구형 모델들이 일종의 배아 상태였다고 한다면 그 팔과 다리가 밖으로 나온 신형 모델들은 발생 이후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우문에 대한 뒤상씨의 현답은 상당히 무성의했지만 적어도 한 가지에 있어서는 정확했던 셈이다). 


      그 난장판을 벌인 장본인은 커다란 망치를 든 채로 우리를 등지고 있었는데 그녀가 바로 앰브로시아였다 (물론 그때까지는 이름을 몰랐다). 그녀가 우리를 향해 돌아섰을 때 나는 그녀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캐시 펠티에. 4년 3개월 동안 나와 나란히 대출/반납계에 앉아서 일했던 그 아이, 반납된 책을 만진 손으로 샌드위치를 먹던 그 아이, 뒤상씨의 마음을 돌려보려다 3층에서 추락해 척추와 인생의 지침이 동시에 돌아가버린 그 아이. 그 아이가 멀쩡히 두 다리로 지탱하고 서서 그 특유의 맹한 눈으로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대목에서 몇 가지는 정정해야 할 것 같다. 얼굴은 캐시 펠티에가 맞았다. 하지만 몸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 물론 과거에 내가 그 아이를 유심히 살펴보았더라는 뜻은 아니다. 낯선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과거에 내 시야를 어지럽히며 돌아다니던 몸뚱이가 아님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캐시는 키가 작았다. 그리고 통통했다. 균형이나 미학이라는 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몸이었다. 그녀의 팔은 저렇게 가늘고 길지 않았었다. 그녀의 다리는 꼭 남자 중학생의 다리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더랬다. 하지만 그때 내 눈 앞에 나타난 캐시는 (나중에 앰브로시아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알려진)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에 등장하는 모델들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로즈, 캔디, 체리와 닮았고, 그래서 나는 한 눈에 '그것'이 로봇의 몸임을 인지할 수 있었다. 주책바가지 뻐드렁니 캐시의 얼굴에 고도의 정교함을 갖추었을 로봇의 몸이라…… 실로 상상하기 어려운 조합이 아닐 수 없었다.


    *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캐시의 변신은 최근 난립하는 로봇 제조업체 중의 하나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했다. 그러니까 쟝 마리 시립도서관이 구입했던 자가 대출 반납기 제조사처럼 말이다. 요즘은 다 그런 식이었다. 마트 계산원을 만드는 회사도 있었고 우버 기사를 만드는 회사도 있었으며, 발렛파킹 직원을 만드는 회사도 있었다. 그런 회사들의 맞은 편에 장애를 입은 사람들을 위해 신체를 재생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도 있었다. 과거에는 전자와 후자 사이에 경계가 있었지만 이제는 명확하게 선을 긋기가 어려워졌다. 캐시에게 접근했던 사람들이 그런 회색 영역에 있었던 것 같았다. 병상의 캐시에게는 그게 유일한 희망이었을지 모른다. 평생을 침대 위에서 누워있느냐, 하프 휴먼-하프 로봇 형태로라도 세상 밖으로 나오느냐의 문제였으니까. 내가 그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결정을 탓할 생각은 없었다.


      문제는 두 가지였던 것 같다. 첫째는 캐시에게 접근했던 사람들이 장애를 입은 사람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선물하는 것보다 다른 쪽에 관심이 더 많았다는 점이었다. 다시 말해서 앰브로시아의 스펙은 '무리없는 일상생활'이라는 목표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들은 캐시가 척추에 손상을 입었기 때문에 머리 (뇌를 포함하여)를 제외하고는 다 로봇화하여야 했다고 주장했지만, 분당 10 킬로미터를 주파하거나 5층 높이를 뛰어 올라가거나 500 킬로그램짜리 망치를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것은 한때 시립 도서관의 평범한 라이브러리 어시스턴트였던 여자에게 그다지 필요한 능력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둘째는 뒤상씨를 향한 캐시의 병적인 집착이다. 그녀 역시 일상의 회복을 염두에 두고 이런 모험을 감수한 것이 아니었다. 순전히 사랑의 쟁취를 위해 개조에 동의했다. 그리고 자신의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는데 제조사의 은밀한 의도하에 이루어진 오버 스펙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했다. 5백 킬로그램짜리 망치를 휘드러면서 말이다. 박살난 구형 자가 대출 반납기 앞에서 과거 그 아이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기계들이 우리 일자리를 빼앗고 있잖아요.' 그 말의 진짜 의미는 이것이었고 말이다. '기계들에게 뒤상씨를 빼앗길 수는 없어요.'    


       그래서 자가 대출 반납기 2.0과 자가 대출 반납기 3.0과 자가 대출 반납기 4.0을 이미 파괴한 앰브로시아의 다음 목표는 로즈, 캔디, 그리고 체리였다. 망치를 휘두르면서 우리쪽으로 걸어왔다. 하지만 이들 신행 모델들은 냉장고처럼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500 킬로그램짜리 날아오는 망치를 좌우로 날렵하게 잘도 피했다. 쾅, 쾅, 쾅, 바닥이 움푹 패였다. 놀라운 반사신경이었다. 휘두르는 앰브로시아나 피하는 로즈, 캔디, 체리나 힘과 속도가 놀라웠다. 마치 무슨 슈퍼히어로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뒷통수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에 나는 살짝 뒤를 돌아보았는데 도서관 2층의 휴게실에서 표정 없는 사서들이 차분하게 이 난장판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도 아무런 감흥이 없어하는 듯 싶어 순간 소름이 끼쳤다. 옛날에 그런 생각을 했었지. 저들이야 말로 로봇이 아닐까 하는 생각.    


      그제서 뒤상씨가 뛰어 나왔다. 그에게는 참 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장면이었을 것 같다. 자신의 여성 편력 역사가 한 자리에 모여 대치하고 있었으니까. (그 중의 하나가 하프 휴먼-하프 로봇인 것은 보너스이고!) 나는 쟝 마리 시립도서관 50주년 기념비 뒤에 숨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뒤상씨는 정중앙으로 들어가 두 팔을 벌리고 양측을 막아섰다. 깜짝 놀라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앰브로시아가 휘두르는 500 킬로그램 망치에 맞았다간 뒤상씨가 곤죽이 되고도 남을 것이었다. 뒤상씨의 용기 덕분에 잠시 상황은 소강 상태로 이루어졌지만 그가 겁이 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 싶었다. 갈색 벨루티 구두를 타고 누런 액체가 흘러나와 바닥을 적시고 있었으니까. 

      캐시(아니 이제는 앰브로시아)가 입을 열어 숨막히는 침묵을 깨었다. 

    - 뒤상씨, 날 해고한 이유가 뭐였나요?

      캐시의 목소리는 그대로였다.

    - 도서관 재정상 어쩔 수가 없었어요, 캐시.

      벌벌 떠는 뒤상씨의 모습은, 그야말로 구차하게 변명 중이라는 사실을 온 몸으로 드러내는 것처럼 보였다.

    - 도서관 재정이 좋지 않은데 어떻게 자가 대출 반납기는 계속 사들이는 거죠?

    - 이걸 알아야 해요, 캐시…….

    - 이제 내 이름은 앰브로시아에요.


      그제야 우리 모두 그녀의 새 이름을 알게 되었다. 이 이름도 폴 댄서들에게 나쁘지 않은 스테이지 네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좋아요. 앰브로시아. 이걸 알아야 해요. 구형 자가 대출 반납기 한 대를 들이면 사람 직원 두세 명 몫을 해요. 심지어 신형 자가 대출 반납기 한 명이 들어오면 사람 직원 열 명 몫을 하죠. 이런 마당에 관리직에 있는 입장에선 선택의 여지가 없는 거예요.

      뒤상씨는 슬쩍 신형 자가 대출 반납기들을 (로즈, 캔디, 체리를) 힐끔거렸는데 내가 보기엔 자기 명을 재촉하는 멍청한 짓처럼 보였다. 저런 긴박한 순간에도 본능을 억제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 그 남자의 매력이기도 했다.

    - 거짓말.

    - 자동화로 인한 인력절감이 진정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면 파트-타임 페이지들이 해고되었을때도 똑같이 나섰어야죠. 지금에 와서 이러는 것은 순전히 본인이 해고 당한 것에 대한 화풀이 아닌가요? 


      얼굴이 벌개진 앰브로시아는 망치를 치켜들었다. 뒤상씨는 눈을 감았고 나도 차마 볼 수가 없어 눈을 감았다. 로즈가 번개처럼 움직여 뒤상씨의 몸을 밀었고 500 킬로그램짜리 망치는 아슬아슬하게 뒤상씨의 머리통을 비껴나갔다. 그것을 신호로 캔디와 체리가 재빨리 앰브로시아에게 달려들며 로봇 전쟁 제 2막이 올랐다. 나는 숨을 죽이고 조용히 그들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마치 코트 중간에서 손을 떠난 공을 놓고 서로 엉겨있는 농구 선수들처럼 보였다. 뒤상씨를 빼았았다가 다시 빼앗기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앰브로시아의 망치가 캔디의 머리를 살짝 스치면서 부터다. 정통으로 맞지는 않았지만 충격이 없지는 않아 보였다. 무슨 논리 회로 이상 같은 것이 생겼나 싶더니만 갑자기 캔디가 뒤상씨를 혼자 소유하려는 듯 로즈와 체리까지 공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다시 한 번 난리통이 벌어졌다. 새로운 구도는 로즈와 체리의 전략도 변화시켰다. 그들 역시 뒤상씨의 보호가 아닌 뒤상씨의 쟁취를 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제 형세는 뒤상씨 한 사람을 두고 네 여자가 (세 로봇 여자와 한 하프 로봇 여자가) 뒤엉킨 꼴이 되었다. 뒤상씨는 그물에 걸린 고기처럼 발버둥쳤다. 가장 먼저 뒤상씨에게 입을 맞춘 것은 살짝 맛이 간 버전의 캔디였다. 그러자 화가 난 앰브로시아가 캔디를 밀치고 대신 입을 맞췃다. 로즈와 체리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네 여자는 서로 영역 표시라도 하듯이 혀를 내밀어 뒤상씨의 몸 곳곳을 햝았고 침을 발랐다. 머리와 머리가 충돌했고 로봇 팔과 로봇 다리가 서로 엉겼다. 뒤상씨의 일부라도 분할 소유하겠단 생각을 먼저 한 것은 상대적으로 열세에 있던 금발의 로즈였다. 그녀는 뒤상씨의 팔을 있는 힘껏 잡아 당겨서 자신의 품으로 끌어가려고 했다. 붉은 머리 캔디의 눈에서 불꽃이 튀더니 뒤상씨의 한쪽 다리를 잡았다. 앰브로시아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듯 경쟁적으로 다른쪽 다리를 잡았다. 남은 한쪽 팔은 갈색 머리는 체리가 재빨리 잡았다. 서로 자기쪽으로 당겼다. 뒤상씨가 비명을 질렀다. 순간 나는 중세시대의 거열형을 떠올렸다.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입을 양손으로 틀어막았다. 뒤상씨의 팔과 다리가 점점 더 길어졌다. 고무줄처럼.  


    - 뒤상씨, 앰브로시아에 대해 좀 아세요?

      그이의 사무실로 찾아가 이런 질문을 하면 어떻게 답해주려나. 모니터 위의 스프레드 시트에서 눈을 떼지도 않고 성의없이 대꾸하겠지. '잘 모르겠는데요, 소피.', '훌륭하군요, 소피. 새 기계의 원리를 밝혀냈네요.' 아마도 이런 식으로. 그이와 만났던 7개월이 영화 필름처럼 눈 앞을 스쳐갔다. 비록 로즈가 등장하며 기록이 깨졌지만 나는 여전히 사람 중에는 가장 뒤상씨와 오래 사귀었던 여자다. 그리고 아직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이의 유일하고도 영원한 사랑은 나일 뿐이라고. 그 많았던 파트-타임 페이지들을 비롯하여 저기 그이의 몸뚱이를 붙잡고 무지막지한 힘으로 당겨대고 있는 아이들도 다 흔하디 흔한 리바운드 걸에 불과하다고. 고무줄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뒤상씨의 비명이 귓가에 맴돌았다. 영혼 깊숙히에 영원토록 새겨질 것만 같은 그런 끔찍한 비명이었다. 그리고,


      딱, 하는 소리와 함께 고무줄이 끊어졌다. 비명도 끝났다.


      차마 볼 수가 없어 몸을 뒤로 돌렸다. 눈을 뜨는데 고여있는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2층 휴게실의 표정 없는 사서들과 눈이 마주쳤는데 그들은 여전히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듯 했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쟝 마리 시립도서관에 남은 사람은 이제 나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제, 나는, 어쩌면 좋을까. 내가 저들과 맞서 싸울 수 있을까. 아니다. 절대 아니다.         


    *


      쟝 마리 시립도서관에 사람 도우미 자리가 생긴 것은 두 달 후의 일이다. 그게 나다. 종일 도서관 정문 앞에 서서 대기한다. 과거 구형 자가 대출 반납기들이 줄줄이 세워져 있던 바로 그 자리다. 도서관 근무 시간 이전이나 이후에 대출 도서를 반납하러 온 사람들은 내게 책을 맡기고 간다. 나는 그들에게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살펴가세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반납 도서를 소독하여 카트에 실어 놓는다. 위생이 여전히 이 도서관의 프라이어티 넘버 원이라고 나는 믿는다. 


      대출/반납계에는 여전히 파티션 세 개로 나누어진 네 자리가 있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내가 앉아 일했던 바로 그 자리에 이제는 로즈, 캔디, 체리, 앰브로시아가 나란히 나누어 앉는다. 그들은 싸움을 멈췄다. 뒤상씨의 몸이 산산 조각 나서 흩어진 이후로. 흥미를 잃은 표정이랄까. 흡사 취미로 사냥하는 동물들처럼 (전성기의 알랭 들롱을 닮았던 그 남자를 기억하는 것은 오직 나뿐이다. 가끔 눈물이 난다). 로즈 캔디, 체리, 앰브로시아는 종종 일하다 말고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자기들끼리 무슨 말인가를 속삭이지만 그 내용을 전혀 알 수가 없다.  


      내가 그들 중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은 소피라는 이름이 폴 댄서의 스테이지 네임으로 적당치 않아서만은 아닌 듯 하다. (끝)


    시즌 17, 에피소드 210 (2016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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