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68. 슈퍼 출장비 대전 (1/4)
    낙농콩단/Season 6 (2005) 2018.10.27 22:00

      양산박 대리는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 안이다. 사실 그는 약간 심통이 난 상태였는데, 당초에 케이티엑스를 타려던 계획과는 달리 하릴없이 고속버스에서 시간을 보내야할 처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것은 본사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 양 대리님, 일렉트릭 물산 비서실인데요. 오늘 서울로 돌아오신다죠?

    - 예, 그렇습니다.

    - 뭘 타고 오실건가요?

      그는 직감적으로 자신이 시험에 들었음을 알아챘다. 그가 일하는 일렉트릭 물산의 사장 가성비씨는 직원들이 출장을 다니며 허투루 쓰는 돈을 제일 싫어했다.


      '모름지기 가정이 만세토록 화목하려면 푼돈을 아껴야 하고 모름지기 회사가 만세토록 번성하려면 역시 푼돈을 아껴야 하나니.'


       운율이 묘하게 엇나간, 이 다소 재미없게 느껴지는 문장이 사장님의 푼돈복음서 1장 1절의 핵심문구임을 모르는 사람은 사내에 없었다. 그런 짠돌이 사장이 어느 날 우연히 직원 출장시 말단 대리들까지도 케이티엑스를 타고 돌아다닌다는 (모든 사람들이 공공연히 알고있던) 사실을 뒤늦게 알게된 것이 사태의 발단이었다. '그게 뭐 대수로운 일이라고'라는 대부분의 생각과는 달리, 격분한 사장은 화를 주체하지 못해 수컷 아프리카 코끼리의 상아로 만들었다는 명패를 충분히 어깨를 사용하여 비서실장에게 집어 던졌고, 그러고도 기운이 남아 고급형 대리석 재떨이의 상단부에 돌보다 단단하다는 제 머리를 두 번 쾅쾅 들이박더니만, 시뻘건 선혈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이마를 조르지오 아르마니 머플러 (색상 : 그레이, 울 : 100%)로 닦아가며 기어코 다음과 같은 엄명을 내렸던 것이다.


    ①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직원 출장시 이동수단은 무조건 고속버스로 통일함.

    ② 국내여비정액표에서 '케이티엑스 기준' 항목을 완전히 삭제하겠음 (추억의 낙서가 너무 많아도 하얗게 지울 것).

    ③ 이에 기준하여 모든 기준 교통비를 삭감하겠음 (직급별 차등지급은 폐지).

    ④ 만약 고속버스 요금을 기준으로 더 싼 이동수단을 이용한 경우 월요조회 시간을 빌어 치하하겠음 (표창과 부상).


      그러나 일렉트릭 물산의 직원들은 담대하기로는 당해업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위인들로,

    - 그까짓 표창과 그까짓 부상, 안 받으면 되지 뭐.

    라는 한없이 자유로운 심정으로 계속 케이티엑스를 타고 다녔다. 아무리 사장의 엄명이라고는 하지만, 사장이 아니라 사장 할아버지라도 자기가 졸졸졸 따라와서 일일이 확인하지야 못할 것이 아닌가. 케이티엑스를 탄 다음에 고속버스였다고 우기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단 한 사람도 얼굴에 심각한 기운을 드리우지 않았다. 그들이 그토록 케이티엑스를 고집하는데는 무엇보다 시간을 경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둘째로는 사장의 긴급 담화문 중에서 '대리까지 케이티엑스를 이용한다는' 이라는 부분이 이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과장급 이상의 97 퍼센트가 자가용을 가지고 있으며, 출장시에도 당연히 자가용을 이용하며, 다녀와서는 주유비에 감가상각까지 계상하여 출장비로 받아내는 마당에 전체의 고작 5 퍼센트만이 자가용을 가진 뚜벅이 대리 및 평사원들이 낭비의 원흉인 양 문제로 삼는 것은 엄연한 멸시요 차별라는 것이었다. 엄명을 남몰래 거부하고 여전히 케이티엑스를 애용하는 생산관리부 역세권 대리(3호봉)는 이에 울분을 느낀 나머지, 대나무 숲 깊숙한 곳에 들어가 이렇게 외치기도 했다.

    - 만 몇 천원을 더 들여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비즈니스가 아니겠습니까! 니들 시간은 시간이고 우리 시간은 시간장난(소꿉장난의 방언)입니까! 그리고……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그 속시원한 외침은 궂은 날 대나무 숲이 바람에 흔들리면 어김없이 리벌스, 플레이, 앤 스톱을 반복함으로써 생생하고 현장감있는 서라운드로 재생되어 흘러 나왔는데, 말 장난을 좋아하는 품질관리부 초성체 대리(2호봉) 또한 장난기가 동해 그 대나무 숲을 찾아들어갔다. 자기도 그런 유행어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었단다.

    - 고위직 허리는 허리고 우리 허리는 허리 아니랍니까? 맨날 빨리 일하라고 '허리 업, 허리 업'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 허리도 좀 존중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대나무 숲은 그 말까지 녹음해주진 않았다. (계속)


    시즌 6, 에피소드 68 (2005년 09월)

    '낙농콩단 > Season 6 (2005)' 카테고리의 다른 글

    68. 슈퍼 출장비 대전 (3/4)  (0) 2018.10.28
    68. 슈퍼 출장비 대전 (2/4)  (0) 2018.10.28
    68. 슈퍼 출장비 대전 (1/4)  (0) 2018.10.27
    71. 엄마의 펜던트 (3/3)  (0) 2018.10.08
    71. 엄마의 펜던트 (2/3)  (0) 2018.10.08
    71. 엄마의 펜던트 (1/3)  (0) 2018.10.08

    TAG

    댓글 0

Designed by Tistory.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