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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8. 슈퍼 출장비 대전 (3/4)
    낙농콩단/Season 6 (2005) 2018.10.28 22:00

      허나 일렉트릭 물산의 출돌이들은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신설된 감사팀이 허위 여부를 조사할 수 있는 부분은 보고서 영수증의 진위 조사 아니면 동행자 간의 진술 조사일텐데, 어느 쪽이어도 충분히 맞대응할 자신과 여력이 있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전자의 경우라면 기껏해야 날짜와 시간을 확인하거나 경유한 노정이 최적의 순로인지 아니면 잔머리 굴려 뱅글뱅글 돌아갔는지를 파헤치는 것인데, 가짜 영수증만 잘 얻어오면 감사팀 할아버지라도 손을 쓸 수 없는 부분이다. 후자의 경우라면 서로 입과 입이 맞지 않아 빈틈을 보이는 경우에나 문제가 될텐데, 역시 서로서로 입만 찐하게 잘 맞추면 트집잡히지 않을 수 있는 부분이다. 이에 그들은 회사 앞 사거리 '산유화 숯불갈비'에 모여 사내 비밀조직인 '출장단'을 만들고, 의리의 예를 보이기 위해 서로 팔뚝에서 피를 내어 섞어 마셨다. 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업무와 무관하나 유관한 척 가장한 전화를 걸어 출발 및 도착 시각의 알리바이를 만들어주었으며, 더욱 더 철저하게 더욱 더 전문적으로 터미널의 쓰레기통을 밑바닥까지 뒤짐으로써 일시와 시간까지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고속버스 영수증을 줍거나 구걸하여 의기도 양양하게 돌아왔다. 이에 일렉트릭 물산 비서실은 특별출감팀 (출장감사의 준말. '출장뷔폐'처럼 '출장'이 '뷔폐'를 수식하는 것이 아니라 '출장'이 '감사'의 목적어가 되는 형태다) 초대졸 실장은,

    - 사장님의 승부욕이 우리 회사 직원들을 거지, 부랑자, 홈리스처럼 쓰레기통이나 뒤지도록 만들고 있누나.

    하고 한탄했다고 전해진다.


      그 한숨이 태평양을 건너 허리케인이 되고, 남태펴양에서 윌리윌리가 되고, 인도양을 건너 사이클론이 되는 동안에도 출돌이들은 점빵용 계산기를 가져다 놓고 상부의 눈을 피해가며 가장 환상적이며 가장 독창적인 조합의 일비 계산을 만들고 있었다. 그 조합은 감사팀이 무슨 용을 쓰더라도 실체를 밝혀낼 수 없도록 난해하고 복잡하며 철학적이고 또한 고도로 심오했으며, 일원 단위까지 잘 빠진 연극 대본처럼 섬세하고 우아하게 짜맞추진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보고서 제출 직전에는 서로가 서로의 두루치기 결과를 두루 두루 살펴주며 무의식중에 관습적이고 정형화된 - 매너리즘에 젖은 일비 패턴을 집어넣지는 않았는지 두 번 세 번 확인해주기까지 했다.


      상황이 그러다보니 비서실 특별출감팀이 동원 가능한 인력을 총 동원한들 허위 사항을 밝혀낼 재간이 없었다. 예컨데 현금으로 7,580 원을 지불했다는 택시 영수증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어떻게 확인하란 말인가.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택시를 탔고, 길은 얼마나 막혔으며, 택시기사가 어떤 길을 경유하여 갔는지를 알 길이 없는데 말이다. 또한 장급 여관에서 묵고 모텔이었다고 우기는 것도 그렇다. 호텔이 아닐 바에야 몇 명이 어떤 방에서 얼마를 내고 묵었는지,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풍찬노숙을 하고 영수증을 가라로 그린 것인지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마찬가지로 시외버스를 세 번 탔는지 네 번 탔는지, 그게 얼마짜리 구간인지, 요금에서 백원을 올려 보고했는지 내려 보고했는지, 식당 이름으로 달랑 내역이 적힌 '김해식당', '미회식당', '자연상회', '경상분식', '할머니집', '대포집', '부산대앞', '당고모가 차려주신 밥상'에서 뭘 어떻게 처먹고 왔는지, 거래처의 요구로 불가피하게 '스타벅스'나 '할리스'에서 업무와 유관한 일을 수행했다던지 하는 일은 정도령이나 애기선녀가 아니고서야 앉은 자리에서 진위 여부를 꿰뚫어볼 수가 없는 일이 아닌가. 감사실로부터 그러한 애로사항을 전해들은 가성비 사장은,

    - 그럼 직원 출장시 직원 한 명에 감사팀 한 명을 딸려보내!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도록 하면 되겠구만……. 지깟 것들이 뭐 별 수 있겠어?

    하고 궁시렁거렸다고 한다. 


      이에 왕회장이 자신을 일렉트릭 물산 부사장 자리에 앉혀놓은 이유를 문득 깨달은 지대공 부사장은 급히,

    - 하지만 사장님. 감시자를 딸려보내는 비용이 모든 직원을 케이티엑스 특실에 태우는 비용보다 더 들어갑니다만…….

    - 부사장님, 정말입니까?

    - 예. 그렇습니다.


      천하에 두려울 것 없다는 가성비 사장도 이때만큼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단다. 물론 그렇다고 순순히 물러날 위인은 아니었다. 이쯤해서 적당히 물러나도 '고무줄 출장비'의 폐단 대부분이 사라졌으니 체면도 차리면서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일텐데, 그의 머리 속에는 오직, 타지 말라는 케이티엑스를 기어코 탄 놈들에 대한 분노만이 가득했다. 크게 회사 경비를 떼어먹는 소도둑들보다는 허용된 경비 내에서 케이티엑스를 타고 다니는 거짓말장이들이 더 미웠다.


      '이것들이 도대체 나를 뭘로 보고…….'


      일렉타워 달 밝은 밤에 스카이라운지에 홀라 앉아 얼음 채운 양주통을 옆에 차고 깊은 시름 속에 밤을 보낸 그는 아침이 밝기가 무섭게 다시 부사장을 만났다.

    - 부사장님. 내일 정오를 기해 모든 출장비용은 카드로만 결제하도록 엄명을 추가하겠습니다.

    - 신용카드요?

    - 그래요. 카드로 사용하면 모두 기록이 남으니까. 출장비 내역이 투명해질 겁니다. 회사에서 출장용 체크 카드를 발급해 주는 겁니다. 미리 예상 출장비를 넣어주는 거고요. 남은 돈 중에서 증명 가능한 비용은 처리해 주는 겁니다. 내역이 모두 남을 거고요. 고지서는 관리부로 날아오게 되겠지요. 사후 환급보다 훨씬 더 직원들에게도 부담이 적을테고 말입니다.

    - 법인 카드로 만들자는 뜻이십니까?

    - 아니요. 법인 카드가 아닙니다. 그렇게는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저랑 부사장님이랑 강실장이랑 몇몇 임원진 명의로 카드를 새로 만들 겁니다.

    - 쉽지는 않을텐데요. 카드를 사용할 수 없는 지출은 어차피 자비 처리를 증명해야 하잖습니까.

    - 부사장님, 그런게 어딨습니까? 포차에서도 카드를 받는 시대에요. 초실장 불러서 물어봤더니만 고속버스도 카드 결제가 된답디다.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도 할 수 있고요.

    - 택시도 해당됩니까?

    - 감히 나도 안 타고 다니는 택시를 타는 양반들이 있답니까?

    - 아닙니다. 그렇지는…… 단지 예를 들어보인 것 뿐입니다.

    - 거 왜 있잖습니까? 택시도 카드 받는 택시있어요. 지난번에 초실장이 뭐라고 얘기 하더만.

    - 시외버스는요?

    - 시외버스에서 카드를 안 받습니까?

    - 예, 그게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 난생 처음 듣는 소린데…… 초실장한테 한 번 물어봐야겠습니다. (계속)


    시즌 6, 에피소드 68 (2005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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