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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8. 슈퍼 출장비 대전 (4/4)
    낙농콩단/Season 6 (2005) 2018.10.29 10:00

      다음 날 정오, 가성비 사장은 사내 방송 (언제나 당신 곁에 ECNBS) 통해서 기존의 엄명에 여섯번째와 일곱번째 줄이 추가되게 되었음을,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이 시각부터 유효한 것임을 발표하였다.


    ⑥ 향후 출장자는 비서실 산하 특별출감팀으로부터 '일렉트릭 물산 비지니스트립 카드'를 받아 일련의 출장 비용 결제에 사용하도록 함.

    ⑦ 카드 처리가 불가능한 항목에 대해서는 기존과 같이 일단 자비처리 및 사후 환급을 원칙으로 하지만, 만약 부적절한 행위가 의심되는 경우 엄중히 그 댓가를 물을 것임.


      '일렉트릭 물산 비즈니스트립 카드'는 (출돌이 중의 일부는 그 명칭이 너무 길다고 제멋대로 자르고 줄여 '스트립 카드'라고 부르기도 하여 사내 여직원들을 기겁케 했다) 크게 세 가지 종류로 구분되었다. 임원용은 <가성비 프리미엄>으로 일당 3만원의 일비, 일당 15만원의 숙박비, 일당 4만 5천원의 식비, 그리고 출장지까지의 왕복 고속버스 비용만큼이 입금된 것이었다. 그 아래 차과장용 <지대공 익스트림>, 마지막 대리 이하용 <초대졸 마스타>, 모두 각각의 국내여비정액표에 맞추어 수준에 걸맞는 금액을 품고 발급되었다.


      이 회심의 아이디어에는 한 가지 실수가 있었는데 고지서만으로는 출돌이들의 잔머리를 얼마나 훌륭하게 막았는지를 증명할 길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카드 고지서엔 출발지와 도착지가 나오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내역 또한 '전국고속버스운송사업조합'만 달랑 찍혀서 날아왔기 때문이다. 그 상세를 알기 위해서는 또다시 카드 명의자 (사장, 부사장, 그리고 특별감사팀 실장) 이름으로 영수증이나 티켓을 다시 발행하여 확인하는 번거로움을 거쳐야 했다.

    - 설마 놈들이 그것마저 조작했으려고……. 


      가성비 사장은 이성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으나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좀처럼 불안한 감을 떨치지 못했다. 만약에 자기들 사비를 털어서라도 케이티엑스를 타고 다니겠다고 주장하면 어떻게하지? 어쩌면 출돌이들이 주요 출장지 지역 사회에 인맥을 동원하여 침투하지 않았을까? 자영업을 하는 친지나 친구, 선배와 후배, 선임과 후임을 총동원하여 카드 결제기로 은밀한 장난을 치고 유유히 케이티엑스를 타고 올라오는 것은 아닐까?


      그게 말도 안되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장은 그 생각에 매여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이사 회의도 내팽겨친 채 비서실과 산하 감사팀을 들쑤시며 쥐꼬리만한 흠집이라도 잡아내라 강요했으며 보다 철저한 감시와 감시자가 제대로 업무를 수행하는 지를 감시하기 위한 또다른 감시자의 인원을 충원함으로써 감사팀은 나날이 비대해졌다. 급기야는 미래전략팀보다 더 많은 인원이 근무하는 부서가 되었다. 한편 과거 관리부 아래 경리나 서무들이 맡아보던 일을 사장 직속의 비서실 감사팀으로 흡수 통합됨에 따라 관리부에서는 대폭 감원이 이루어졌다.


      그러는 동안에도 가성비 사장은 마음을 놓지 못했다. 어쩌면 누군가는 은밀하게 케이티엑스를 타고 다닐 것만 같아서였다. 그리하여 급기야는 최후의 수단으로 '눈으로 확인하자'는 주장을 꺼내 들었다. 이름하여 작전명 '칸의 분노'다. 왜 그런 괴상한 부제가 붙었는지는 모르겠지만.


    ⑧ 출장자들은 출장지로 떠나는 동안, 그리고 출장지에서 돌아오는 동안, 삼십분 간격으로 비서실 산하 출감팀의 요원들과 화상통화를 하며 위치를 보고할 것.


    *


      바로 그것이 지금 양산박 대리가 화상전화를 들고 있는 이유다. 삼십분 간격으로 그는 비서실에 전화를 하여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어야만 했다. '젠장, 이게 뭐하는 짓이람.' 그는 투덜거리며 최근통화목록에서 일렉트릭 물산 비서실 특별감사팀을 찾아 재발신을 눌렀다. 또르르르, 또르르르, 신호가 가더니만

    - 일렉트릭 물산 비서실, 출장추적 감사팀 전소민 요원입니다.


      요원 좋아하고 자빠졌다. 사장은 감사팀 직원들에게 요원이란 직급을 만들어 붙여 주었다. 평사원보다는 높고 대리보다는 아래라는데, 이런 시스템을 꾸릴 돈이 있으면 그냥 케이티엑스 타도록 내버려 두는 게 더 경제적이겠다.

    - 상품관리부 대리 양산박입니다.

    - 양 대리님. 지금부터 작전명 '칸의 분노'에 따라 대리님과 저희 비서실 사이의 모든 대화는 녹화될 예정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녹화 자료는 법적 강제력을 띠지는 않지만 이후 저희 감사팀 업무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나 일렉트릭 물산의 위상과 안위에 직결되는 중차대한 일이라 판단되는 경우에 한하여 대리님의 동의를 구하지 아니하고도 자의적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이에 이의 있으십니까?


      이의야 있지만 그걸 지금 어떻게 말해? 그는 속으로만 웅얼거렸다.


    - 없습니다.

    - 좋습니다. 시작하겠습니다. 출비감사 파일 넘버 50506. 2006년 3월 25일 화요일. 대상자 상품관리부 양산박. 직급 대리. 맞습니까?

    - 예. 맞습니다.

    - 양산박 대리님,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 아…… 아마도 경부고속도로겠지요. 표지판을 보니 양산 인터체인지 근방이라는 것 같네요.

    - 양산박 대리님, 어떤 교통수단으로 상경하시는 중입니까?

    - 보시다시피…… 고속버스입니다.

      화면 속 요원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 양산박 대리님, 버스 내부를 좀 보여주십시오.

    - 꼭 그렇게까지 해야합니까?

    - 양산박 대리님, 두 번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럼 버스 내부를 좀 보여주십시오.


      미치고 팔짝 뛰겠군.


      그는 조용히 일어서서 전화기를 들고 찬찬히 좌우를 비추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상하게 보였던지 기사가 운전하다말고 룸 미러로 힐끔 그를 돌아보았다. 정말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 됐습니까?

    - 양산박 대리님, 좌석 번호가 어떻게 되십니까?

    - 13번 입니다.

    - 양산박 대리님, 14번 좌석 손님에게 이 전화를 건네어 주십시오.

    - 뭐라고요?

    - 양산박 대리님, 두 번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당장 14번 좌석 손님에게 이 전화를 건네어 주십시오. 정말로 부산을 출발하여 서울 동서울 터미널로 향하는 버스인지, 지금 시각이 동경 135도 표준시 기준 현재 몇 시 몇 분인지, 이해관계가 없는 제 삼자의 증언을 수록해야만 합니다. 거부하실 경우 인사상 불이익을 받으실 수도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생전 초면인 옆 좌석 승객을 쳐다보았다. 별 꼴 다 보겠다는 표정이었다. 도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이 괴상망측한 일을 이해시킬 수 있을까?


      빌어먹을,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이람! (끝)


    시즌 6, 에피소드 68 (2005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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