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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와 개구리 (The Princess And The Frog, 2009)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10.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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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바로 디즈니 에니메이션이다. 3D도 좋고 4D도 좋지만, 이런 스타일 몸살 나게 그리웠다. 론 클레멘츠와 존 머스커, 이 전설적 다이나믹 듀오의 귀환은 무려 7년만이다. '보물성(Treasure Planet, 2002)'을 열외로 치자면 12년만의 신작이다. 게다가 오! 랜디 뉴먼! 이쯤되면 게임 끝이다. 뮤지컬 애니메이션 포맷을 갈아 엎자는 아이디어는 도대체 디즈니 고위층 누구 머리에서 나왔던 생각인지 모르겠다. 그것은 초현실적 흑자 장사를 이어가기 위한 방법도, 고착 상태의 이미지 갈음을 위한 방법도 아니었다. 애초에 디즈니 헤이터들의 관심사는 디즈니의 배급력이고 세계관이고 나아가 상징성이었지 포맷과는 하등의 연관이 없는 문제였다. 디즈니 헤이터들을 부추기는데 가장 열심이었던 20세기 FOX조차 90년대 후반부터 얼마나 열심히 디즈니스러운 뮤지컬 애니메이션을 따라 만들었는지를 기억해보면 확실히 그렇다. 그러니 금세기 초 대차대조가 썩 유쾌하진 않았을 때 2D 셀 에니메이션 라인업은 곧바로 이런 작품으로 바로 넘어갔어야 한다고 본다. 공격받을 소지를 줄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이미 갖고 있는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자 때문에 후자까지 흐지부지되면 제 3의 디즈니 흑역사 서막을 장쾌하게 열었던 '아틀란티스(Atlantis, 게리 트러스데일, 2000)' 꼴 밖에 나지 않는다. 정면으로 돌파한들 아무렴 뭐 어떤가. 한때 안티-디즈니의 선봉장을 자처하던 초록 괴물 슈렉놈은 디즈니가 삽으로 돈을 퍼담던 시절보다도 더 해쳐먹고 있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과거의 영광을 답습하고만 있다는 뜻은 아니다. 플롯 및 구성에서 데쟈뷰를 일으키는 순간이 최소 세 번은 있지만 그 나머지 무수한 자기 파괴에서 주는 재미가 훨씬 더 크다. 재즈 에이지의 뉴올리언즈에서 변주하는 '개구리 왕자'라는 똘똘한 설정 하나만으로도 이미 낡은 텍스트의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한 것으로 보인다. 무대를 1920년대 미국으로 옮겨온만큼 역대 어느 작품보다도 가장 미국적인 정신을 (좋은 쪽으로) 이식하는 데 성공했으며, 뉴올리언즈의 풍부한 흥취를 십분 활용해 디즈니 뮤지컬 시대의 새로운 시작을 선언한는 데도 성공했다. 그 사이 왕자는 히스패닉이 되었고 공주는 아프로-아메리칸이 되었다. '공주'를 선천 신분이 아니라 획득 형질이자 명예 감투 정도로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도 어느 때보다 확실해 보인다. 새로운 시대에 발맞춰 이 생활력 만점의 아가씨는 모든 문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며 끝끝내 철없는 놀먹거지 왕자님을 길들이기까지 성공하는 저력을 보여준다. 그 강렬한 에너지의 발산과 넘실거리는 긍정 희망의 메세지를 보자면, 확실히 어느새 초심에서 겁나 멀어져 버린 (Far Far Away) 초록 괴물 슈렉은 정말 뿔 잡고 반성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 작품의 성공을 가능하게 한 마지막 한 사람은 주인공 티아나 역을 연기한 애니카 노니 로즈. 이제까지는 '새처럼 노래한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라면 젊은 시절의 쥴리 앤드류스, 젊은 시절의 주디 갈렌드, 젊은 시절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그리고 조디 벤슨, 이렇게 네 명을 꼽았다. 이제 드디어 이 기억의 목록에 한 사람을 더 업데이트 해야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한다. 역사상 디즈니의 프린세스들은 모두 당연히 노래를 잘했다. 그건 말해 입아픈 사실이지만 이렇게까지 마음을 흔들어놓는 경우는 '인어공주(The Little Mermaid, 론 클레멘츠 & 존 머스커, 1989)'의 아리엘 이후 21년만이다. 

 

(201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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