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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기 아까운 그녀 (Made of Honor, 2008)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10.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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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눈에 띄는 것은 상상력의 부재다.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P.J. 호건, 1997)'의 성공 이후 이런 구성으로 만들어진 영화만 모아도 아이팟 클래식 160G를 가득 채울 수 있을 정도다. 남녀관계를 뒤집어 본들 얄팍하기는 매한가지라 크게 인상적이지는 않고, 문화 충돌을 포함한 다국적 삼각관계도 십년 가까이 '워킹 타이틀' 신드롬 속에 우려졌던 것이라 더 이상은 새롭다 말하기가 어렵다. 그럼 어필 포인트랄만한 게 딱 하나 남는다. 사랑하는 여자의 '신부 들러리(Maid of Honor)'로 나서는 남자가 다름 아닌 패트릭 뎀시라는 사실이다. 여기에 용의 눈알을 그려넣는 결연함으로 쐐기를 박은 것은 국내 수입 배급사다. 'Made of Honor'라는, 그나마 재치 넘치는 타이틀까지도 '남주기 아까운 그녀'라는 기구 절창할 제목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이건 '맥드리미 (Mcdreamy, 맥도날드 햄버거 아님)'를 '꿈나라 선생님'이라 완곡하게 옮겨낸 오지랖을 압도하고도 남을 역대급 삽질이다. 장담하건데 초등학교 고학년 소녀들을 모아놓고 고르라고 하더라도 이보단 좋은 제목이 나올 것이다. 이를테면…… '신부를 사랑한 들러리'는 어떤가. 포스터 도안에 어울리는 고전적인 맛이라도 기대할 수 있지 않았을까?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

  패트릭 뎀시에게는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을 가지고 있다. 프라푸치노 민트 모카에 시나몬 가루를 듬뿍 뿌리고 카라멜 시럽까지 세 번 펌핑한 느낌을 주는 이 남자는 '그레이스 아나토미(ABC, 숀다 라임즈, 2005~ )'의 첫 시즌까지만 하더라도 별로 호감가는 타입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변덕이 죽 끓듯 하는 '나사 풀린 여자' 메러디스 그레이의 비위를 맞춰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다소 연민마저 들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예사 남자라면 진작에 총 구멍을 입 구멍에 밀어넣고 방아쇠를 당겼을지도 모르는 일. 여러모로 딱해 보이던 근래의 모습은 이 작품까지 고스란히 이어진다. '바람둥이로 오해를 사지만 실은 알차게 속이 꽉찬 남자'라는 여성 관객들의 환타지를 충족시키기 위해 기꺼이 스스로를 낮추는 이 남자. 미셀 모나한과 나란히 서 있으면 유난히 더 작아보이는 이 남자. 가끔은 불쌍하단 생각마저 들 정도다. 퀼트 차림으로 스코틀랜드 촌부들과 통나무 던지기 시합을 하는 장면에선 눈물까지 찔끔 흘린 뻔 했다. 영화는 그가 던진 통나무처럼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그러나 충분히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날아간다. 러닝 타임 내내 쌓아 온 좋은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이런 유형 영화의 전형적 한계이기에 아쉬움이 더하다. 흡사 납량특집 '하퍼스 아일랜드(CBS, 아리 스콜스버그, 2009)'의 로맨틱 코미디 버전 같은 느낌의 결말이다.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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