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마지막 과외수업: 과외계를 떠나며

쇼트 펀트 포메이션/쇼트 펀트 포메이션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08. 1. 3.

본문

  이제 이 어설픈 과외선생 노릇을 그만 둘 때가 되었다. 더는 신분이 대학생 혹은 대학원생도 아니게 되면서 나의 과외선생 자격이 불충분해졌다는 것이 한 가지 이유요, 녀석이 고3이 되는만큼 더 이상 나같은 얼치기한테 배워서는 희망이 없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다. 무엇보다 근자에 이르러 입시정국이 회오리 안쪽으로 휘말려 들어감에 따라서 "구공년생이야말로 저주받은 세대" 라는 푸념을 매주 들어주어야 하는 것도 자신이 없어졌다. 내가 아는 한 '저주받은 세대'라는 말을 쓰지 않은 고3은 근래에 없었지 싶다. 우리땐 그런 표현은 없었지만 '샌드위치'나 '모르모트' 따위의 표현으로 불운함을 에둘러 표현했었으며, 내가 업계에 뛰어든 이후 팔삼년생들은 '이해찬 일세대', 팔사년생들은 '이해찬 이세대'라는 섬뜩한 표현으로 지들만의 고난을 토해내곤 했다. 이후로도 그랬다. 팔오년생을 괴외하러 갔을 때도, 팔칠년생을 과외하러 갔을 때도, 다 지들이 "진짜 저주받은 세대" 라고 말하더라. 여기가 뭐 '저주받은 도시(존 카펜터, 1995)'도 아니고. 아마 내년이 되면 구일년생들이 "우리야말로 저주받은 세대" 라며 울분을 토할 것이고 후년이 되면 구이년생들이 "우리가 진짜 저주받은 세대" 라고 주장할 차례다. 결국은 다 자기들이 최고 불운했다고 믿고 싶은 것이다. 그래봐야 이들이 할 줄 아는건 몇몇년생 공감집 같은 게시물을 만들어 서로 펌질하거나 연예인 특례입학에 분노하며 '수능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로 시작하는 우스꽝스러운 항의글이나 인터넷에 끄적이는 것일게다. 그리고 뭐 어차피, 대학 들어가면 그 분노 홀랑 까먹는다.

  과외계를 떠도는 동안 합이 일곱명의 아이들을 만났다. 그러니까 지금이 일곱번째다. 새삼 돌이켜보니 남자 선생은 안된다는 이유로 몇몇 여학생 과외자리를 아깝게 놓친 뒤, 어렵게 잡은 녀석의 과외는 지루하고 칙칙했다. 낭만적 과외생활로 도랑도 치고 가재도 잡으려던 나의 꿈은 골방에서 - 골방이라기엔 너무 컸지만 - 칙칙한 사내 놈과 '수학 2'를 붙들고 씨름하는 것으로 산산히 부서지고야 말았다. 녀석은 이제 열아홉임을 믿을 수 없을만치 체격이 좋았고 머리가 굵었으며 놀라울만큼 속물이었다. 속물? 물론 한창 자라나는 꿈나무에게 그런 표현을 써서는 안되겠지만. 녀석은 미스코리아 대회의 심사위원처럼 같은 학급의 여학생들을 노골적으로 점수화시켜 품평했고 그 결과를, 어찌된 일인지, 내게도 들려주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또한 부잣집 아들내미답게 세상에 돈으로 해결 못할 일은 없다는 자신감을 애써 숨기지 않았다. 그런데 또 희한하게 녀석은 별 이유도 없이 세상을 향한 적의로 펄펄 끓어올랐고 (그 적의가 어떻게 작동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특정 정당의 지지자임을 피력하곤 했다. 그래봐야 선거권도 없는 놈이!) 덕분에 몇 번인가 한바탕 논쟁이 벌어질 뻔도 했지만 구공년생이랑 싸워봐야 나만 우스워질테고, 또 녀석의 부모들 귀에 들어가는 경우 괜히 나만 난처해질 것 같아서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역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 더 좋은 과외선생이 되었어야 했고 우리의 과외는 조금 더 유익한 시간이 되었어야 했다. 나에게도 그리고 녀석에게도 보다 의미로운 시간이 되어야 했다. 녀석의 되바라짐에 진저릴를 내며 통탄하는 사이 이냥저냥 의욕 없이 시간만 때운 걸 이제와서 후회해본들 소용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마지막 괴외 학생이라 생각하니 좀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단 아쉬움은 남는다.

(2008년 01월)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