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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즈 유니버시티 (Monsters University, 2013)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13.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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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컴퓨터 애니메이션에 있어 디즈니와 픽사가 이뤄낸 업적이야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앞으로를 장담할 수 있느냐면 그건 모르겠다. 돌이켜 보면 1995년의 '토이 스토리(존 라세터, 1995)'는 독보적인 작품이었다. 디즈니를 제외한 어떤 회사도 애니메이션에 3천만불을 쓸 수가 없었고 픽사가 아닌 어느 스튜디오도 그런 작품을 만들 기술과 역량을 집중시킬 수 없었다. 이후 십 년이 지난 2005년까지도 디즈니의 유일한 대항마로 자리매김했던 드림웍스를 제외하면 1억불대 예산을 책정하며 비슷한 수준의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매년 제작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물론 20세기 폭스도 있기는 했지만 당시만해도 전속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보유하고 지속적으로 제작을 기획할 생각까지는 없었던 듯 싶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메이저 배급사를 끼고 있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다섯 곳이 경쟁 중인 모양새다. 여전히 기술 역량이나 예산 규모에 있어서 디즈니/픽사나 드림웍스에 견주기는 어렵지만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상향 평준화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여, 앞으로 시간과 총알 지원이 충분히 갖춰진다면 어떤 결과가 나오리라 함부로 장담할 수 없는 판국이다. 실제로 최근 메이져 배급사 다섯 곳의 장편 애니메이션 예산 대비 총 수입을 비교하면 생각보다 차이가 크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후발주자 폭스와 소니와 유니버셜의 편당 제작비가 아주 후한 편은 아니다보니 오히려 실속에 있어서는 디즈니/픽사와 드림웍스가 떨어지는 감도 없지 않다. 뿐만 아니라 유럽, 남미, 아시아 등 비영어권의 컴퓨터 애니메이션도 최근 몇 년 사이에 우르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이를 통해 컴퓨터 애니메이션이라는 분야의 진입 장벽 자체가 점점 낮아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고로 결국은 다시 컨텐츠 싸움이고 스토리 싸움이 되었다. 기술에서 대등해지면 이제 남은 카드는 철학 뿐이다. 물론 그런 면에서 디즈니/픽사는 관리를 잘 해왔던 편이고 분명 일관된 정서라는 것을 잘 유지해왔다고 볼 수 있다. 일부는 디즈니의 역사에 녹아있는 것이고 일부는 픽사 시대의 기술적 진보와 함께 싱싱하게 보완된 것이다. 하지만 '카즈 2 (존 라세티, 2011)' 이후 흥행과 평가에 있어 뭔가 꼬여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그 기본적인 철학을 구현하는 방향이 모호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이 작품 '몬스터즈 유니버시티'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12년 전에 비해 기술적인 면에서 충격이 덜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산만하고 느슨한 스토리 전개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소란스럽고 전형적인 대학 생활의 묘사를 고집한 것도 식상하다. 속편으로 전작 '몬스터즈 아이앤씨 (피트 닥터, 데이비드 실버맨 & 리 언크리치)' 이후가 아닌 이전의 이야기를 선택한 것도 기발하고 참신한 전개 가능성을 묶어버리는 한계로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시끄럽고 정신은 없는데 동시에 지루하고 긴장감이 풀린다. 정말이지 이런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전달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마이크와 설리가 어떻게 만났는지 굉장히 궁금하기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 시계를 돌려보는 것이 득보다 실이 더 많은 작업인지는 의문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방향을 모르겠다. 감탄이 나올만한 깨달음이 숨어 있는 것도 아니다. 전작은 물론 근래 최고의 작품이었던 '업 (피트 닥터&밥 피터슨, 2009)'과 비교해보면 메세지의 깊이 차이가 아주 극명하다. 그렇다고 코미디의 지분을 늘렸다고 보기에는 웃을만한 장면이 많은 편도 아니다. 두어 번 피식거릴만한 장면이 있었을 뿐이다. 냉정히 말해 그렇다. 재미만 놓고 보면 같은 시기 개봉한 유니버셜/일루미네이션의 '디스피커블 미 2 (피에르 코팽&크리스 리노드)'에 크게, 완전히, 압도적으로 밀린다. 심지어 평생에 걸쳐 디즈니/픽사에 편파적이고 맹렬한 애정을 쏟아왔던 내가 보기에도 미니언들의 판정승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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