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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쇼맨 (The Greatest Showman, 2017)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18.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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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이 작품은 사이 콜먼과 마이클 스튜어트의 1980년 뮤지컬 ‘바넘’과 별개의 작품이다. 물론 세상에는 ‘같은 소재-다른 작품’ 케이스들이 넘쳐나지만 그래도 이 경우는 굉장히 특수한 사례다. 같은 소재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이미 존재함에도 별도의 뮤지컬 영화를 작업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보통은 성공한 극장용 뮤지컬이 뮤지컬 영화로 이식되거나, 성공한 뮤지컬 영화가 극장용 뮤지컬로 확장 제작되거나, 성공한 비 뮤지컬 영화의 줄거리에 뮤지컬 넘버를 더해서 무대에 올라간다고 보면 ‘위대한 쇼맨’의 경우 기이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겠다. 이미 성공한 극장용 뮤지컬이 있음에도 새로운 뮤지컬 영화로 제작하는 수고스러움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휴 잭맨은 바넘을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 영화가 평생 꿈꿔왔던 프로젝트였다고 밝혔다 (註1). 이 작품 역시 9년에 가까운 제작 기간을 거쳤으니 그 사이 뮤지컬 ‘바넘’을 영화화하는 안이 검토되지 않았을 리야 없었을 것이다. 정확한 내막을 알기는 어렵지만 영화사에서 ‘바넘’을 스크린으로 옮기는 것에 부담을 가졌다고 하는데, 완전히 새로 제작하는 편이 오히려 덜 부담스럽단 이야기는 역사상 거의 150편에 이르는 영화들이 성공한 뮤지컬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다소 의아하게 들린다 (그러고보면 더 크게 성공한 뮤지컬을 그저 그런 블록버스터로 옮겨놓고도 잘 먹고 잘 사는 톰 후퍼의 두둑한 배짱은 후일 반드시 재평가 받아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註2). 더구나 장르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신규 제작이 다른 극본만이 아니라 다른 뮤지컬 넘버까지 의미한다는 점에서 백번 곱씹어봐도 참 신기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담감이다.  

 

  하지만 억지로 어려운 길을 돌아간 것 치고 영화는 신기할 정도로 잘 만들어졌다. 이야기 구성도 깔끔하고 뮤지컬 넘버는 깜짝 놀랄 정도로 훌륭하다. 무엇보다 뮤지컬 ‘바넘’이 쇼비지니스 창시자의 원맨쇼에 가까운 전개를 보이는 반면, 영화 ‘위대한 쇼맨’은 바넘을 남들과 다른 꿈을 가진 ‘드리머’처럼 표현하는 한편 주변 인물들의 사연과 보조를 맞춤으로써 훨씬 더 오늘날의 시각과 입맛에 부합하는 결과물을 구현하는데 성공했다. 무엇보다 바넘의 프릭쇼를 소수집단과 다양성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바넘 자신 또한 결국 그 일부였음을 강조하는 구성은 실로 영리한 선택이었다 하겠다. 이러한 부분은 뮤지컬 넘버의 배치에서도 두드러지는데 ‘Join the Circus’의 역할을 ‘The Greatest Show’가, ‘Come Follow the Band’의 역할을 ‘Come Alive’가, 그리고 2막 마지막 ‘The Prince of Humbug’의 역할을 ‘From Now on’이 대신하는 부분은 4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시대적 인식이 그만큼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그저 바넘 앙상블로만 존재했던 서커스 단원 (혹은 프릭)들의 입장과 목소리를 담은 ‘This is Me’가 사실상의 주제가 역할을 한다는 점은 이 작품이 뮤지컬 '바넘'을 두고 새로 만들어져야 했던 충분한 이유가 되고도 남는다. 물론 일각의 지적처럼 19세기 인물들이 댄스 팝을 합창하고 바넘 부부가 디즈니식 러브 테마를 속삭이며 스웨디쉬 나이팅게일이 파워 발라드를 열창하는 것이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느낌이 없지야 않으나, 그렇게 따지면 사이 콜먼의 ‘바넘’ 역시 엄밀히 19세기 음악은 아니었으니 할 말이 없기야 하다.

 

(2018년 1월)

 

(註1) 대표적인 바넘 역할의 배우는 브로드웨이의 짐 데일과 웨스트엔드의 마이클 크로포드였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현재 이 역할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배우는 휴 잭맨이 맞음을 부정할 수가 없을 것 같다.
(註2) 톰 후퍼는 1980년 초연된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2012년 영화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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