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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도취: 하지만 난 착하고 겸손한데

쇼트 펀트 포메이션/쇼트 펀트 포메이션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08.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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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7대 불가사의란 - 물론 의견이 분분하기는 하지만 - 일반적으로 쿠푸왕의 대 피라미드, 바빌론의 공중정원, 올림피아의 제우스 상, 에페수스의 아르테미 신전, 마우솔루스 왕 능묘, 로도스의 거상, 알렉산드리아의 피로스의 등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하면 이른바 '세계 8대 불가사의'가 완성되는데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물론 내 입으로 말하긴 조금 쑥스럽지만 - '내가 또래 여자아이들에게 인기가 없는 이유'다. 이건 나머지 일곱가지 불가사의를 합친 것보다 더 불가사의한 '슈퍼 울트라 캡숑 불가사의'라 칭해 마땅할 것이다. 왜? 왜 난 여자아이들에게 인기가 없지? 물론 시각적 스펙타클이 덜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푸른하늘'적으로 말하자면 - 난 착하고 겸손한데. 어디 그 뿐인가. 재치있지. 똑똑하지. 신분 확실하지. 유머감각 넘치지. 가치관 올바르지 어른들한텐 공손하지. 오죽하면 별명이 도덕 교과서 - 그 흔한 범칙금 한 번 떼어 본 적도 없지. 시간 약속은 칸트도 꺼이꺼이 울고 갈 만큼 확실하게 지키지. 매일 똑같은 시각에 하루도 빼놓지 않고 운동할만큼 끈기도 있지. 남들처럼 배도 안 나왔으니까 몸매도 되지. 용감무쌍하기로는 제다이 일개 중대가 와도 못 당하지. 헌혈마저 자주하지. 남의 이야기 들어주는데 너무 뛰어나 국가 공인 자격증까지 받았지. 남의 기분도 잘 읽을 줄 알고 순발력 뛰어나지. 암기력은 떨어져도 중요한 날은 잘 외우지. 소심해서 시도를 못하고 있을 뿐이지 한 번 규제만 풀어주면 '이벤트 황제'의 진면목을 보여줄 수도 있지. 돈은 잘 안 쓰지만 구두쇠가 아니라 검소해서 그런거지. 취미는 진짜로 독서 - 술값은 십원도 안 쓰지만 버는 돈은 형편 닿는대로 다 책값에 쓰지. 여가시간엔 돈 안들어가는 취미로 글을 쓰지. 게다가 매너하면 김매너, 배려하면 김배려. 한 눈을 팔기를 하나 바람을 피기나 하나. 술을 마시나 담배를 피우길 하나. 당구를 치길 하나 오락에 빠져 살길 하나. 이거, 이력이 너무 깨끗해서 걸릴래야 걸릴 것이 하나도 없다. 확 총선에라도 출마할까 보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인기가 없는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모든 경비 아저씨들과 청소 아줌마들은 날 좋아한다. 휘트니스 센터에 가도 아줌마들이 날 가만히 두지 않는다. 이렇듯 나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는 편인데 어째서 모든 연령과 성별 집단 중에 하필 내 또래 여자아이들에게만 무관심의 영역으로 분류되는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솔직히 나만큼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도 겸손한 남자가 어디 있다고! 같은 남자가 보기에 정말 형편없는 바람둥이들이 오히려 사랑받는 까닭 또한 이해하기가 어렵다. 자아도취(自我陶醉)라고? 하지만 난 진짜 착하고 겸손한데?

 (2008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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