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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오브 파워 (L'Ivresse Du Pouvoir, 2006)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08.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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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미디 오브 파워’는 자칫 혼동을 줄 수 있는 제목이다. ‘킹 오브 코미디(마틴 스콜세지, 1983)' 혹은 다른 '킹 오브 코미디(주성치, 1999)’ 등을 연상케해서 그런가? ‘Comedy’를 ‘코미디’라 국문 명기하는 작품치고 (당연히!) 코미디아닌 것이 없어 조금 아리까리하지만 그래도 그 외엔 마땅한 번역이 없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겠다.

  샤브롤은 원래 이런 양반이다. 느긋하게 뒷짐지고, 파이프하나 물고, 여유만만, 아주 평범하고 화목하게 보이는 가족의 집에 저벅저벅 걸어 들어간다. 어머, 누구세요? 깜짝 놀란 그 집 사람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는 목장갑을 끼고 뒷주머니에서 쇠망치를 꺼내 든다. 땅땅땅, 벽을 골라 두드리니 와르르 무너진다. 빈틈없고 견고하게만 보이던 이름하여 <중산계급의 가정>이다. 임시로 인정한단 뜻의 '가정'이 아니다. "거기 중국집이죠?" 라는 수화기 너머 물음에 "여기 가정집인데요" 라고 답할 때의 바로 그 가정이다. 아무튼 땅땅땅, 망치로 벽을 무너뜨린다. 어머머, 웬일이니. 내력벽인줄 알았는데 하나도 힘을 받쳐주지 못하잖아! 다시 말해 샤브롤은 콩가루 킬러다. 아기 돼지 삼형제를 맹렬히 쫓는 늑대처럼 콩가루 가족만 골라 아작을 내어 놓는다. 지구 끝까지 집요하게 쫓아간다. 계급과 가정, 이게 샤브롤의 키워드고, 그리하여 장르는 다름아닌 스릴러다.

  샤브롤의 문제 의식은 항상 긍국적으로는 체제를 향한 것이었다. 스위스 퐁듀처럼 깊숙하고 끈끈하게 일상에 녹아든 허위, 허영, 가식, 위선, 자기기만 등의 부조리를 비웃음으로써 그는 스스로가 몸담고 있는 현실 사회의 체제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음을 줄기차게 경고해왔다. 허나 이번만큼은 같으면서도 조금 다르다. 그는 퐁듀가 되어 아래로 흘러내려오기 전 치즈덩어리의 원형을 찾아내 칼을 꽂는다. 후기 대표작 중 하나인 '거짓말의 빛깔(1999)', ‘악의 꽃(2003)’ 등의 은근한 암시를 복기해보면 권력자와 사회 지도층을 직접 저격하는 이번 작품의 태도는 흡사 '붉은 결혼식(1973)'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이번에 그의 메스가 향하는 곳은 허위나 위선이 아닌 부정과 부패다. 거미줄처럼 질기고 조밀하게 연결된 부패의 고리에 단신으로 맞서는 정의롭고 용감한 여판사의 이야기 - 뻔하게 들리지만 뻔해도 샤브롤은 샤브롤. 스릴러로 철학을 한다. 지루해서 흥미롭다. 나른해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느슨한듯 헐렁한듯 조여오는 샤브롤 본연의 긴장감도 여지없으나 너무도 자연스럽게 온 몸으로 샤브롤스러움을 구현하는 이자벨 위폐르의 연기야말로 일품 중의 일품이다. 부연하자면 이 작품의 원제는 'L'Ivresse Du Pouvoir'인데 L'Ivresse가 '취하다' 혹은 '도취되다'라는 의미의 단어라고 한다. 즉 다시 말해서 '권력의 코미디' 혹은 '힘의 코미디'라는 식의 조롱섞인 제목이라고 볼 수 있겠다.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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