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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렌스 앤 더 머신 <High as Hope> B평

불규칙 바운드/음악과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18.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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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2010년대의 대중음악계에는 세기말보다도 더 세기말적인 음악이 양적으로 (또 물론 질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시대인지도 모른다. 과거의 세기말적 음악은 문명과 사회에 대한 염세와 회의가 주를 이루었던 반면에 오늘의 세기말적 음악은 권태와 허무에 관한 보다 개인화되고 파편화된 경험을 다룬다. 따라서 전에 없이 넓은 범위의 대중 음악으로 파고들었고, 실상 현존하는 거의 모든 장르에 이런 경향의 음악이 일정 분율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단지 분율의 문제인가?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 하다. 종말 삼촌 톰 요크, 종말 여친 라나 델 레이, 종말 여동생 빌리 아일리시, 종말 당숙 본 이베어, 그리고 종말 처제 플로렌스 웰츠, 기타 등등. 과거 절망과 무기력을 노래하던 이들은 모두 하나의 카테고리로 정리될 수 있었는데 이들은 장르도 제각각이고 메세지도 제각각이다. 어쩌면 과거 세기말적이라고 불리던 속성은 이번 새로운 세기 대중음악의 성격을 정의하는 하나의 요소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 중에서도 플로렌스 앤 더 머신은 유별난 위치를 점유한다. 리드 보컬 플로렌스 웰츠와 키보디스트 아자밸러 서머스 외 일곱 멤버들로 구성된 이 런던 출신의 록밴드는 어둡고 우울하면서도 묘하게 로맨틱한 음악을 구현한다. 2009년 데뷔 앨범 <Lungs>에 쏟아진 뜨거운 호평 이후 이들은 느리지만 천천히 세 장의 앨범을 발표함으로써 하나의 독특하고 대체할 수 없는 세계를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네 번째 앨범 <High as Hope>는 앞서 세 장의 앨범과 일관된 맥락 위에서 이미 그들의 음악에 내재되어 있던 특정 요소들을 부각한다. 가령 이미 부분적으로 용해되어 있던 이국적 색채나 중세적 요소의 전위적 연출은 이제 특이점에 임박하여 주술적이고 제의적인 성격마저 발산한다. 절망같은 우울과 희망같은 고독. 세기말적이지 않은 순간에조차 세기말적 기억을 불러 일으킨다. 한편 트랙간의 연계성은 점점 더 조밀하여져 여러 장과 막으로 구성된 한 편의 연극처럼 느껴지는데 이 놀라운 성취에 있어 프론트 워먼이자 송라이터로 거의 제작, 감독, 각본, 주연을 도맡았다고 할 수 있는 플로랜스 웰츠의 역할이 대단하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2018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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