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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 리버스 스윕 (1/8)
    낙농콩단/Season 16 (2015) 2018.12.24 10:49

      맥도날드는 일종의 베이스 캠프였다. 모든 작전은 스트라다 누오바 점포의 창가 쪽 테이블을 중심으로 하여 진행되었는데, 가장 큰 장점이라면 역시 지정학적 위치라고 할 수 있었다. 우선 인근 상권의 동맥이라고 할 수 있는 누오바 거리를 관찰하며 목표물을 물색하기가 좋았고, 또한 목표물을 인적이 드문 작은 골목으로 유도하여 한 바퀴를 돌린 다음 자연스럽게 다시 맥도날드 앞쪽으로 데리고 돌아오기도 좋았다. 물론 낚시에 실패하고 돌아왔을 때 저렴하지만 따뜻한 맥카페 한 잔으로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것 또한 중요한 이점 중의 하나였다.


      칼라와 유니스는 월요일과 수요일 담당이었다. 그 말은 곧 다른 요일은 다른 자매님들의 몫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월요일과 수요일마다 그녀들은 오후 두 시무렵부터 누오바 거리의 맥도날드에 자리를 잡았다. 행여 창가쪽 자리에 이미 임자가 있어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조금의 인내심만 있다면 어렵지 않게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으니까 (굳이 언급하자면 그건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맥도날드가 무슨 스카이라운지의 고급 레스토랑이 아니고 오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신선 놀음을 하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보통 일의 첫 단계는 관찰이었다. 누오바 거리의 낯선 행인 중 꽤 짭짤해보이는 목표물을 고르는 것이었다. 매일 이 거리에서 눈의 띄는 사람은 제외해야 마땅했다. 두 번째는 미끼를 던지는 것이었다. 보통은 둘 중의 한 사람만 목표물에 접근했다. 세 번째는 당연히 밀고 당기기였다 (그런 면에서는 남녀 사이의 연애와도 비슷한 점이 있다 하겠다). 아무리 손쉬운 목표물도 한 번에 쉽게 끌려오는 법은 없었다. 낚시와 마찬가지로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상대를 무너뜨려야 했다. 인내심의 싸움이었다. 상대가 먹이를 물면! 뒷골목 쪽으로 유인하여 한 바퀴를 돌아 다시 맥도날드쪽으로 데리고 간 다음에 이렇게 묻고는 했다. 

    - 다리도 아픈데 잠깐만 앉았다 가요. 이야기 좀 더 들어보고 싶어요.


      일단 목표물이 맥도날드에 들어가면 일은 거의 50% 정도 성공한 셈이었다. 미리 자리를 잡고 기다리던 나머지 한 사람은 바로 그 순간에 나타나서 합석을 하는 것이다. 칼라는 오른쪽에서 유니스는 왼쪽에서, 혹은 유니스는 오른쪽에서 칼라는 왼쪽에서. 그녀들의 찰떡 호흡은 꽤나 훌륭하여서 어지간한 사람들을 무너뜨리는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그럴 때면 영화에서 형사들이 범인을 취조할 때 2인 1조로 움직이는 이유를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그녀들이 하는 일은 좋은 일은 아니었다. 사기라고 볼 수 있는 부분도 있었다. 아니지,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사기는 사기였다. 하지만 아주 질이 나쁜 범죄는 아니었다. 적어도 칼라와 유니스 모두 자기들이 하는 일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음…… 어쩌면 조금은? 나쁠지도 몰랐다. 하지만 완전히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마 그랬다. 세상에 그렇게 옳고 그름을 쉽게 단정할 수 있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


      남자는 완벽한 목표물이었다. 누오바 거리에서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유순하다 못해 맹한 인상이었고 샌님처럼 두꺼운 뿔테 안경을 썼으며 행동은 조심스럽고 굼떴다. 심지어 옷차림마저도 세련되고 똑똑한 느낌을 주진 않았다 ('아마 패션으로 테러를 할 수 있다면 저런 느낌일 꺼야'라고 그녀들은 생각했다). 하지만 한 손에 든 지저분한 남성용 토드백은 돌체 앤 가바나로 적어도 1,000 유로는 하는 명품이었다. 후줄근한 외투와 낡아빠진 청바지 아래 드러난 다 떨어진 스니커즈는 600 유로는 우습게 넘는 페레가모 제품이니 스니커즈라고 우습게 볼 일도 아니었다. 결국 저렇게 보여도 집에 돈은 꽤 있단 얘기지.


      최고의 먹잇감이었다. 그녀들은 이 일을 아주 오래 해왔다. 5년도 넘는 시간은 그들에게 귀중한 노하우를 체득하게 만들었다. 오늘날 아르마니 정장으로 도배를 하고 다니는 건 보통 사람들의 몫이다. 아주 부자는 아닌데 부자처럼 보이고 싶어 안달이 난 중산계급 사람들. 실제로는 남자처럼 거지에 가깝게 사람들이 더 알짜배기인 경우가 많았다. 더구나 이곳은 다름 아닌 관광 도시 베니스에서 가장 번화한 쇼핑 거리 아닌가! 겉으로 번지르르하게 하고 다니는 놈팽이들은 널리고 널렸다. 중요한 건 껍데기가 아니다. 속이 얼마나 실하게 채워져 있느냐는 것이다.


      잭팟!

      칼라와 유니스는 서로 마주보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서로의 얼굴에는 똑같은 흥분이 서려있었다. 


      가위 바위 보! 가위 바위 보! 칼라는 바위를 냈고 유니스는 가위를 냈다. 이번에는 유니스가 먹잇감을 상대할 차례였다. 코트를 챙겨서 서둘러 맥도날드를 빠져나와 잰 걸음으로 남자에게 접근했다. 남자는 플리마켓을 돌아다니며 상점과 좌판 사이를 우왕좌왕하는 중이었다. 스윙 보틀이나 중고 레코드판, 혹은 도금 타이 클립과 같은 자잘한 악세사리들을 집었다 놓았다 하며 같은 자리를 몇 번이나 돌고 또 돌았다. 같은 좌판으로 다시 돌어가는 일도 있었다. 아마도 뭔가 사고 싶은 눈치인데 쉽게 결정을 못 내리는 모양이었다. 1,000 유로 짜리 토드백을 들고 600 유로짜리 스니커즈를 신은 남자가 길거리 좌판에서 1.70 유로 짜리 스윙보틀이나 3.50 유로 짜리 커프스 단추 하나를 못 사서 저 난리라니. 이윽고 보다 못한 장사꾼이 한 마딜 하는 듯 했다. '거 안 살 거면 다른 데 가쇼!'라고. 남자는 머쓱한 표정으로 (원 스트라이크!)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투 스크라이크!) 쭈삣쭈삣 뒷걸음질을 (삼진 아웃!) 쳤다. 알맞은 먹잇감을 골랐다는 확신은 점점 더 강해졌다.

    - 어멋!

      유니스가 남자와 부딪힌 것은 사고가 아니었다. 남자가 뒷걸음질을 하는 방향을 보고 딱 한 발만 앞서 재빠르게 그 자리에 들어갔을 뿐이다. 그런 가엾은 남자들은 자신의 앞에 덫이 놓여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하겠지. 그들이 알 수 있는 건 오직 자기 때문에 나동그라진 것처럼 보이는 여자가 있다는 사실 뿐이다. 신사가 아니어도 넘어진 여자를 앞에 두고 태연할 남자는 없을 것이었다. 물론 칼라와 유니스가 항상 이런 방법을 쓰진 않았다. 뭐랄까, 너무 고전적이고 진부하지 않은가. 상대를 봐가면서 먹혀 들어가겠다는 확신이 없었으면 절대 쓰지 않았을 방법이었다. 그녀들에게는 여러 가지 전술이 있었고 상대와 상황에 맞게 그것을 변용할 뿐이었다.   

    - 죄송……해요. 괜찮으세요? 혹시…… 어디 다치신 데라도 있으……. 

      남자는 어쩔 줄을 몰라했다. 의심의 눈치조차 없어 보였다. 그녀의 판단은 정확했다. 거기까지는 예상한 그대로였다. 그리고 그녀는 더 좋은 걸 발견했다. 남자가 완전 쑥맥이라는 사실이었다. 얼굴이 귀 밑까지 빨개진 남자는 그녀의 눈을 한 번도 쳐다보지 못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녀는 숙련된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를 체크했다. 남자는 고개를 숙이다 그녀의 아주 잠시 불룩한 가슴에 눈길을 주었고 (괜히 혼자 민망해하며) 더 아래로 시선을 밀어 보냈다. 날씬한 다리를 바라보는 것은 예의가 아니므로 시선은 그녀의 구두까지 내려갔다. 그리고 그 또한 쑥스러웠는지 지저분하지만 비싼 자기 스니커즈로 고개를 돌렸다. 뭐 대단한 일도 아닌데 안절부절을 하지 못했다. 


      (이야! 오늘은 정말 쉬운 게임이 되겠는 걸?) 


    그녀는 속으로 휘파람을 불었다. 이런 타입의 먹잇감은 처음에 적당히만 유혹해 놓으면 일이 훨씬 쉬워지는 경우가 많았다. 감정을 꾸며낼 수 있을만큼의 강한 의도가 존재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하는, 순진해 빠진 부류들이기 때문이었다.

    - 괜찮아요. 저도 그쪽이 오는 걸 못봤으니 제 잘못도 있네요.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우아하게 일어나서 제 갈 길을 가려는 듯 옷을 털고 뒤 돌아섰다. 속으로 셋을 세었다.


      (하나, 둘, 그리고 셋.)


      그녀는 마치 잊은 것이 있었다는 듯 다시 돌아서 (당연히) 아직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는 남자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남자는 아예 하얗게 질린 상태였다. 그녀는 아주 중요한 할 말이 있다는 듯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 초면에 실례지만 이 말을 안 할 수가 없네요. 혹시…… 요즘에 근심거리가 있진 않나요?

      (당연히 있겠지. 세상에 근심 없이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 그게…… 뭐,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만요…….

    - 그럴 줄 알았어요. 보여요.

      (토실토실하게 살이 오른 먹잇감이 보여요!)

    - 뭐가 보인다는…… 건가요?

    - 아니에요. 괜한 말을 했네요.


      그녀는 열두 시의 신데렐라처럼 황급히 돌아서 걸음을 재촉했다. 먹잇감 열 중의 아홉은 궁금증을 이기지 못했다. 따라와 남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호기심이 많은 걸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다). 허나 남자는 열 중의 아홉이 아닌 나머지 하나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궁금하고 찝찝하기는 한데 따라가서 붙잡고 물어볼 생각까지는 없는 쪼다. 휴, 못 살아. 그녀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물론 자신감이 없다는 건 좋은 징조였다. 다만 찌가 유인하는대로 따라올만큼의 자신감도 없단 점은 문제였다. 그녀는 걷는 속도를 늦추었고 행인들의 무리 속에서 완만하고 자연스러운 곡선을 그리며 뒤로 돌아 남자가 있던 자리로 되돌아갔다. 다행히 (당연히?) 남자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 차마 발 걸음이 떨어지지 않네요. 그냥 가려고 했는데…….

      (댁이 적당히 따라와주면 나도 편하잖아!)

    - 그게…….

    - 잠시 걷죠. 시간 괜찮으면.

      (물어라, 물어! 제발 좀!)

    - 음…….

    - 이 이야기는 꼭 해드려야 겠어요.

      (제발 좀 듣겠다고 해줘!)

      남자는 쭈삣거리더니만 이미 고개를 끄덕였다. 휴우, 그래도 큰 고비를 넘겼어. 일단 먹잇감을 따라오도록 만들면 성공 확률은 30%가 되었다. 방금 그 단계를 통과한 것이다. 위험한 순간도 있었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순발력으로 재치있게 상황에 맞는 전술을 고안해냈다. 그리고 상대를 믿게 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뿌듯해진 그녀는 속으로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유니스 로즐린 달튼. 어쩌면 너는 배우가 되었어야 해!"


      돌이켜보면 배우가 되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아버지만 아니었으면 말이다. 파푸아뉴기니 원시부족의 추장 같은 세계관을 가졌던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의 꿈을 절대로 허락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런던 토박이 영국인인 아버지는 어처구니 없게도 야구광이자 바둑광이었다. (그건 확률광이라는 뜻 아닌가!) 아버지는 모든 상황을 야구와 바둑에 빗대기를 좋아했다. 아버지의 표현을 빌자면 '배우로 성공할 확률은 5판 3선승제 시리즈에서 두 판을 내리 내준 다음에 세 판을 뒤집어 승리하는 것과 비슷한 확률'이었다. 그 당시 그녀는 그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고 지금도 야구나 바둑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지만 그 뉘앙스만큼은 대충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는 있었다. (계속)


    시즌 16, 에피소드 191 (2015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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