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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 리버스 스윕 (2/8)
    낙농콩단/Season 16 (2015) 2019.01.03 11:47

      스트라다 누오바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남자와 무심히 걷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맥도날드로 되돌아가는 길을 계산에 넣고 있었다. 남자의 정신이 혼란스러운 틈에 골목 사이로 유도하여 방향을 틀어버릴 생각이었다.

    - 짧은 시간이었지만 당신 눈동자에 걱정스러움이 맺혀있는 걸 봤어요.

    - 아…….

    - 그래서 차마 발 길이 떨어지지 않았죠. 사실 친구랑 약속도 있는데.

      그녀는 노골적으로 웃음을 흘렸다. 항상 이런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 남자들의 방어막을 해제시키는 데 있어 헤픈 웃음만큼 유용한 것도 없었다. 남자와 같은 타입은 적당한 경계선에서 마치 남녀간의 긴장처럼 몰아가면 훨신 더 쉽게 그물 안으로 들여 보낼 수가 있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아버지라면 이런 방법을 좋아하지 않았겠지. 정공법이 아니니까.' 그녀는 스포츠도 바둑도 잘 몰랐지만 규칙이 무엇이든 최종적으로는 승리를 목적함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리고 승리에 가까워질 수 있다면 때로는 변칙도 유용할 수 있다고 믿었다.  


    - 그래서…… 다시 물을께요. 최근 걱정거리가 있진 않나요?

    - 사실은 그래요. 있죠.

    - 어떤 건가요? 아! 물론 이런 질문이 실례가 안된다면 말이에요.

    - 그건…….

      남자는 실없이 미소를 지었다. 허물어진 옛 신전 같은 느낌을 주는 웃음이었다.


    - 인생을 다 바쳐 이뤄낸 사업이 있는데……

      사업? 그녀는 쾌재를 불렀다.

    - 최근 잘 풀리지 않았어요. 정확히는 망했죠.

      (이런 젠장할!)

    - 저런 안되었네요. 도대체 어쩌다가!

    - 사기를…… 당했어요. 가장 믿었던 친구에게.

      (그럴 법도 해. 댁 같은 사람에게 충분히 있을만한 일이야.)

    - 세상에! 정말 많이 힘드시겠네요.

      (그래도 남은 재산은 좀 있으시겠죠?)

    - 그 모든 시간을 뒤로 하고 앞으로 나가야 하는데 마음이 잘 안 잡히는 거죠.

      그녀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남자의 사연에 가슴 아파해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사업이 망한 건 딱한 일이지만 그래서 어쩌라고? 정말 딱한 사람이면 1,000 유로 짜리 토드백을 들고 600 유로짜리 스니커즈를 신지는 않겠지.

    - 뭐랄까? 좀처럼 다시 시작할 수 있단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할까요?


      남자가 무슨 말을 하든 그녀의 머릿 속에는 한 가지 생각 밖에 없었다. 맥도날드로 데리고 가야해. 그래서 칼라와 합류하여 좌우 협공으로 이 남자의 정신을 쏙 빼놓아야 해. 일단 먹잇감이 맥도날드로 끌려 들어가면 확률은 80%가 되었다. 굳이 아버지 식으로 따지자면 '1사를 깨지 않고 주자를 3루까지 보내는 격'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여러가지 방법으로 스코어를 올릴 수가 있다고 하셨다. 정확히 무슨 소린진 모르겠지만 여하튼 점수를 낼 확률을 높여야 한다는 부분에 있어서는 그녀도 전작으로 동의하는 바였다.

    -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꼭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예요.

    - 정말 그럴까요?

    - 다만 다시 앞으로 나가려면 액운을 떨칠 계기가 필요해요.

    - 계기……라고요?

      그녀는 살짝 긴장했다. 이 부분에서 놓친 먹잇감들이 있었으니까.

    - 안 좋은 일이 반복되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그 이유를 해결해야죠.

    - 그게 뭔가요? 어떻게요?

    -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저는 기의 흐름을 읽을 줄 알아요.

      (웃으면 안돼! 제발 웃지 말아줘!)


      다행히 남자는 웃지 않았다. 오히려 표정이 심각했다. 아까보다 더 심각해졌다. 그녀는 속으로 외쳤다.

      (지금이야, 유니스! 생각할 틈을 주면 안돼! 몰아 붙여!)

    - 당신을 두고 그냥 제 갈 길 가지 못했던 것도 실은…… 안 좋은 기운이 당신을 감싸고 있는 걸 봤기 때문이에요.

    - 기운이 보인다고요? 어떻게요?

    - 색깔. 제게는 그게 색깔로 보이죠. 당신의 주위에는 자홍색 빛깔이 선명하고 짙게 깔려있어요.  

      (웃으면 안돼! 제발! 제발! 제발! 웃지 말아줘!)

    - 그럼…….

    - 의식을 치르면 되요.

      (그리고 의식에는 돈이 들죠. 세상에 공짜는 없으므로.)


      이 대목에서 도망가지 않는 먹잇감은 거진 저녁 식사로 밥상에 올라갈 거리고 봐도 좋았다. 남자는 도망가지 않았다. 도망갈 생각도 없어 보였다. 더욱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남자가 아는지 모르겠지만 이미 그들은 작은 골목을 가로질러 맥도날드로 향하는 중이었고 스트라다 누오바의 맥도날드 창가 자리에서는 칼라 자매님이 날카롭게 칼을 벼려 놓고 대기 중이었다. 아버지라면 3루까지 주자를 안전하게 보냈다고 칭찬하실 것이다. 잘했어! 유니스 로즐린 달튼! 지금까진 아주 훌륭했어. 흠 잡을 곳이 없었어.


      한 블록만 더 가면 맥도날드였다. 그녀와 칼라는 그 곳에서 (해피밀을 먹으며) 남자를 무너뜨려 의식(이라고 그녀들이 부르는 허접한 행위) 치를 돈을 뜯어낼 참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건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우리 자매님들이 이렇게 불철주야 거리로 나서서 땀흘려 일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심지어 이렇게 눈이 내리는 날에도.


      모든 일이 그렇게 끝난 줄 알았다. 그때까지는 말이다. 


    *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


      야구광이자 바둑광이었던 유니스의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인용했던 요기 베라의 명언이다.

      레니 크레비츠의 노래도 있다. 아버지는 아마 모르겠지만.


      유니스의 마지막 기억은 맥도날드의 크고 노란 M자 모양 간판에 멈춰 있었다. 그녀는 남자에게 이런 말을 하려던 참이었다.

    - 그런데 너무 춥지 않아요? 잠깐 들어가서 같이 이야기 해요. 맥카페라도 마시면서.


      그녀에게 이 게임은 거의 다 끝난 것처럼 보였다. 물론 때로는 강력해보이는 한 수가 그저 평범한 한 수에 봉쇄되어 판이 넘어가는 경우가 없진 않았다. 열 명의 두 명 꼴로는 맥도날드까지는 순순히 따라왔으나 그녀들의 손을 뿌리치고 도망갔다. 그래도 그런 놈들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 그러니 지금 이 분기점까지는 아주 유리한 상황이야.


      그러나 다시 이어진 그녀의 기억은 어둡고 축축한 지하실에서 연결되었다. (계속)


    시즌 16, 에피소드 191 (2015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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